최근 수정 시각 : 2024-01-05 00:02:26

후지와라노 야스스케

藤原保輔
?~영연(永延) 2년 6월 17일( 988년 8월 7일)

1. 개요2. 세계(世系)3. 생애

1. 개요

일본 헤이안 시대의 귀족이자 무관이자 도적.[1] 후지와라아소미(藤原朝臣) 11세손이자 남가(南家)의 파조(派祖)인 무치마로(武智麻呂)의 운손자(雲孫子)로 할복의 원조다.

2. 세계(世系)

시조부터 본인까지의 세계는 이러하다.
후지와라노 카마타리 후지와라노 후히토→무치마로(武智麻呂)→코세마로(巨勢麻呂)→쿠로마로(黑麻呂)→하루츠구(春繼)→요시히사(良尙)→스가네(菅根)[2]→모토카타(元方)[3]→무네타다(致忠)[4]→야스스케(保輔)

3. 생애

무관으로 출사해서 미기노츠와모노노토네리노죠([ruby(右,ruby=みぎノ)][ruby(兵衛,ruby=つはものノとねりノ)][ruby(尉,ruby=じょう)])를 지내고 미기노우마노스케([ruby(右,ruby=みぎノ)][ruby(馬,ruby=うまノ)][ruby(助,ruby=すけ)])를 지내다가 미기노미사토노스케([ruby(右,ruby=みぎノ)][ruby(京,ruby=みさとノ)][ruby(亮,ruby=すけ)])를 지냈는데 경력이 오른쪽하고 줄줄이 이어진다. 『신편찬도본조존비분맥계보잡류요집(新編纂圖本朝尊卑分脈系譜雜類要集)』[5]에 따르면 강도의 두목이고 당대 일본에서 무략이 뛰어나 토벌하라는 선지(宣旨)만 열 다섯 번이 내려질만큼 악명이 자자했다고 한다.

알려진 범죄를 살피자면 관화(寬和) 원년(985년) 미나모토노마사노부([ruby(源,ruby=みなもとノ)][ruby(雅,ruby=まさ)][ruby(信,ruby=のぶ)])가 집에서 잔치를 벌이자 쳐들어가서 21촌 족증손(族曾孫)인 스에타카([ruby(季孝,ruby=すゑたか)])를 다치게 했다. 검비위사 미나모토노 타다요시([ruby(源,ruby=みなもとノ)][ruby(忠,ruby=ただ)][ruby(良,ruby=よし)])가 자신의 형 나리미츠([ruby(齊光,ruby=なりみつ)])를 체포하자 뭔 혐의길래? 미나모토노 타다요시에게 화살을 쐈다. 영연(永延) 2년 5월에 18촌 형제 후지와라노 카게나리([ruby(藤,ruby=ふぢ)][ruby(原,ruby=はらノ)][ruby(景,ruby=かげ)][ruby(齊,ruby=なり)])의 집에서 강도짓을 벌이고 또 아카네노 코레시게([ruby(茜,ruby=あかねノ)][ruby(是,ruby=これ)][ruby(茂,ruby=しげ)])[6]의 집에서 강도짓을 벌였다. 이래서 조정에서 추토령(追討令)을 내리고 현상수배를 하고 야스스케의 아비 무네타다가 검비위사에게 구속된다. 야스스케는 이에 북원화사(北花園寺)로 출가해서 숨었으나 범죄자가 죄를 짓고 절에 숨는 것도 역사가 깊다. 같이 강도짓을 벌였던 벗이자 겨레붙이인 후지와라노 타다노부([ruby(藤,ruby=ふぢ)][ruby(原,ruby=はらノ)][ruby(忠,ruby=ただ)][ruby(延,ruby=のぶ)])[7]의 밀고로 걸려서 옛날의 부하였던[8] 아스와노 타다노부([ruby(足,ruby=あす)][ruby(羽,ruby=はノ)][ruby(忠,ruby=ただ)][ruby(信,ruby=のぶ)])[9]에게 체포되어 구속되자 구치소 안에서 날붙이로 배를 째고 배알을 끄집어내고 다음날 옥사했다. 이것도 보면 깡패가 벌이는 자해 쇼에 가깝다. 뒷날 미나모토노 타메토모가 배를 째서 죽고 더 지나서 할복이 무사의 법도가 되면서 할복의 원조로 여겨진다. 배를 째고도 바로 못 죽은 점은 미시마 사건과 비슷하다.


[1] 장교가 어떻게 도적질을 저지르고 다닐 수 있는 지는 표철주 참고. 그나마 표철주는 천수를 누렸다. [2]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참소했는데 그 뒤 벼락을 맞아 죽어 음주(陰誅)되었단 소문이 돈다. [3] 15촌 조카이자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할아비인 모로스케(師輔)가 외손자를 황태자로 책봉받게 하는데 성공하자 이에 홧병으로 죽었는데 원귀가 되었다는 소문이 돈다. [4]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고 타치바나노 코레요리([ruby(橘,ruby=たちばなノ)][ruby(惟賴,ruby=これより)])와 그의 가신들을 죽인 혐의로 타치바나노 코레요리의 아비 스케마사(輔政)의 고발을 받아 사도노쿠니([ruby(佐渡國,ruby=さどノくに)])로 유배를 갔다. [5] 줄여서 존비분맥이라고 한다. [6] 시대가 아직 평안시대 중기임을 감안하면 아카네는 우지 같지만 기록이 없어서 뿌리를 알 수 없다. [7] 후지와라노 야스스케와 같은 겨레인 건 확실하나 寸數(동안)을 알 수 없다. [8] 그렇다면 후지와라노 야스스케처럼 무관일 가능성이 크다. [9] 아스와도 우지로 추정되지만 마찬가지로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있는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