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 1876년 10월 1일 |
전라도
무주도호부 풍남면 석항리 (현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무풍면 증산리 석항마을 584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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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08년 3월 23일[1] (향년 31세) |
전라북도
무주군 풍동면 지산리 (현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무풍면 지성리 지산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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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1-1묘역-514호 |
본관 | 창원 황씨[2] |
호 | 석정(石亭) |
가족 |
배우자
김녕 김씨 아들 황영수, 장손자 황인성 |
서훈 |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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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황인성 문민정부 초대 국무총리는 장손자이다.
2. 생애
1876년 10월 1일 전라도 무주도호부 풍남면 석항리(현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무풍면 증산리 석항마을 584번지)에서 아버지 황종률(黃鍾律, 1838. 1. 10. ~ 1892. 2. 10.)과 어머니 평산 신씨(1838. 1. 9. ~ 1886. 6. 21.) 사이에서 두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사재를 털고 여러 집을 다니며 돈을 빌려 총기 및 군량미를 구입하였으며, 의병을 모집한 뒤 풍동면·풍남면 일대에서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수년간 일본 제국 육군과 항전하였다.
1908년 2월, 전라북도 무주군 덕유산 일대에서 활동하던 유종환(劉鍾煥) 의병장 휘하에 들어가 포대장(砲大將)에 선임되었다. 이후 전라북도 무주군· 장수군,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군 등지에서 일본 제국 육군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1908년 3월 23일 전라북도 무주군 풍동면 지산리[3]에서 일본 제국 육군과 교전하던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 순국하였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유해는 당초 무주군 무풍면 증산리 사동마을에 안장되었다가 2013년 11월 23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1-1묘역에 이장되었다.
3. 여담
- 의병 활동을 하던 당시에 군량미를 구하기 위하여 여러 집을 다니며 돈을 빌린 뒤 차용증을 써주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전사한 뒤 후손들이 쌀을 갚느라 가산을 탕진했고, 빈한한 생활을 영위해야 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