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4 22:04:36

화령

1. 和寧
1.1. 개요1.2. 같이보기
2. 化寧

1. 和寧

1.1. 개요

함경남도 영흥군(永興郡)의 옛 이름이다. 1369년 공민왕은 화주목을 화령부(和寧府)로 바꾸었는데, 해당 이름은 1393년까지 쓰였다가 태조(조선) 때 영흥부로 바뀌게 된다.

조선 태조 이성계(太祖 李成桂)가 고려 왕조를 멸망시킨 이후 새로운 나라 이름을 명나라(明)에 선택해달라고 제시한 국명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이 때 명나라는 화령이 아닌 조선을 선택했다.

화령은 몽골제국의 2번째 수도였던 카라코룸과 발음이 비슷했다. 현대 중국어 발음으로도 그런데, 카라코룸의 중국식 표기가 和林(Hélín), 화령은 Héníng이다. 게다가 이미 원나라 때 카라코룸을 중심으로 하는 행정구역이 화림행성 화림로총관부에서 아예 화령로총관부로 바뀌었다. 발음이고 뭐고 떠나서 그냥 당시에는 화령=화림(카라코룸)인 것.

이러니 명나라의 황제 주원장(朱元璋)은 둘 중 조선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즉 국호를 이미 정해버리고 황제에게는 통보한다는 분위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일종의 결재용 서류에 끼워넣는 2안 내지는 버리는 카드였던 셈이다. 명나라가 이상한 국호를 선택하지 않도록 원나라의 수도와 비슷한 발음을 2안으로 끼워넣어 반강제적으로 '조선'을 공인하도록 유도한 것. 특히 이성계가 공양왕 옹립공신, 즉 '흥국사 9공신'으로서 고려 조정에서 받은 최종 작위가 '화령군 개국충의백(和寧郡開國忠義伯)'이었으며, 전조의 공신이 선양(=찬탈)을 통해 새 왕조를 세울 때 전조에서 받은 봉국명을 왕조명으로 삼는 것은 중국사에서 으레 있던 일이기에[1] 홍무제가 설령 조선측의 의도를 알았어도 대놓고 트집을 잡기는 어려웠던 점도 주효했다. '우리가 일부러 님 성질 건드리는 이름을 가져온 게 아니라, 그냥 전통을 따르다보니 원나라 대도시 이름과 비슷해진 것뿐임'이라고 핑계를 대기 좋았다는 얘기.

이후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이후 경무대라는 명칭이 가지는 부정적인 어감을 쇄신하고자 새 이름을 정하게 되는 과정에서 선별된 2개의 안건이 화령대와 청와대였다. 결과는 청와대의 낙점. 일각에서는 의미도 불분명하고 대통령의 집무 공관의 이름으로는 어색한 화령대라는 명칭을 두고 이 또한 청와대라는 이름으로 유도하는 버리는 카드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도 있다. 만약 이러한 말이 사실이라면 '화령'은 2번이나 버리는 카드로 쓰였다는 말이 된다.

이후 조선 후기 영조의 왕녀 화령옹주의 봉작명으로 쓰이기도 했다.

그 외에, 화령이 발해의 다른 이름이란 주장도 존재한다. # 2022년 기사

1.2. 같이보기

2. 化寧

경상북도 상주시 서부 지역(화서면, 화동면, 화남면, 화북면 등)의 옛 지명이다.

본래 신라의 답달비군(荅達匕郡)이었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 화령군으로 개칭되었다. 1018년( 현종 9년)에 상주의 영현이 되었다.

중모 지역(모동면, 모서면)과 합쳐서 중화(中化)라고도 한다. 실제로 이들 6개 면에 있는 농협은 중화농협이다.


[1] 가장 유명한 사례로 한나라 위국공(魏國公) 조조의 아들이 세운 위나라와 그 위나라 진국공(晉國公) 사마소의 아들이 세운 진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