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헤 로블레도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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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52 |
이름 |
호르헤 로블레도 올리베르 (Jorge Robledo Oliver) |
생년월일 | 1926년 4월 14일 |
사망년월일 | 1989년 4월 1일 (향년 62세) |
국적 | 칠레 |
출신지 | 이키케 |
포지션 | 센터 포워드 |
신체조건 | 174cm | 75kg |
소속팀 |
반즐리 FC (1946-1949)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1949-1953) 콜로-콜로 (1953-1958) 오이긴스 FC (1960) |
국가대표 | 28경기 7골 (1950-1957) |
가족 | 동생 에두아르도 로블레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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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칠레의 전 축구 선수.2. 생애[1]
2.1. 어린 시절
로블레도는 아버지는 칠레인, 어머니는 영국인인 혼혈이었고 5살 때 가족들을 따라 영국으로 이민을 가서 영국 국적을 취득했다.어린 시절의 로블레도는 허더즈필드 타운 AFC에서 파트 타임 축구 선수로 뛰면서 탄광에서 일을 하다 반즐리 FC의 유스팀에서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2.2. 선수 생활
2.2.1. 클럽
1946년에 반즐리에서 잉글리시 풋볼 리그에 데뷔한 로블레도는 1949년, 뉴캐슬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하게 되었고 이 이적에는 그의 동생 에두아르도의 이적도 포함되었다. 원래 뉴캐슬은 호르헤에게만 관심이 있었지만 호르헤의 강력한 요청으로 인해 형제가 모두 뉴캐슬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로블레도의 뉴캐슬 데뷔전은 1949년 2월 5일에 있었던 찰턴 애슬레틱 FC전이었고 뉴캐슬은 2:0 승리를 챙겼다. 그리고 그는 한달 후에 있었던 선덜랜드 AFC와의 타인위어 더비에서 뉴캐슬 유니폼을 입고 첫 골을 넣어 뉴캐슬의 선택이 틀리지 않을 것이라는 걸 보여주었다. 그렇게 로블레도는 첫 시즌의 12경기에서 5골을 넣었다.
1950-51 시즌, 뉴캐슬이 FA컵 결승전에 진출했고 재키 밀번의 대활약 속에 블랙풀 FC를 2:0으로 제압했다. 이렇게 로블레도는 남미 출신 선수 중 최초로 FA컵 우승 선수가 되는 영광을 누렸다. FA컵 우승 이후 몇몇 선수들이 팀을 떠나 뉴캐슬은 전력이 약해졌고 뉴캐슬은 1951-52 시즌 초에 반짝했지만 끝까지 그 기세를 유지하지 못했다. 뉴캐슬은 리그 8위로 시즌을 마쳤지만 이는 로블레도의 공헌이 매우 컸다. 로블레도는 이 시즌에 33경기 출전, 32골이라는 엄청난 활약을 보여줬고 결과는 리그 역사상 최초의 비영국인 득점왕이었다. 뉴캐슬은 FA컵 결승전에서 로블레도의 후반 39분 결승골로 아스날 FC를 1:0으로 이겨 FA컵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로블레도는 1952-53 시즌이 끝나고 에두아르도와 함께 칠레에 돌아가게 되었다. 로블레도는 뉴캐슬에서 총 91골을 넣었고 그의 행선지는 콜로-콜로였다. 로블레도는 칠레 리그에 복귀하자마자 잉글랜드 리그 득점왕의 위용을 보여줬고 1953, 1954 시즌에 칠레 리그에서도 득점왕에 올랐다.
1958년까지 로블레도는 콜로-콜로에서 팀의 리그 우승 2회, 코파 칠레 우승 1회에 기여했지만 콜로-콜로와 로블레도의 이별은 아름답지 못했다. 로블레도는 콜로-콜로의 제안을 거부하며 팀을 떠났고 1년간 무적 선수로 지냈다. 로블레도는 1960년 오이긴스 FC에서 1시즌을 보내고 축구화를 벗었다.
2.2.2. 국가대표
로블레도는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에서 뛰던 때인 1950년 월드컵에서 칠레 대표팀에 데뷔했다. 로블레도는 칠레의 모든 경기에 출전했고 마지막 경기였던 미국전에서 칠레의 대회 첫 골이자 선제골을 기록했다. 칠레는 미국을 5:2로 눌렀다.로블레도는 1953년 7월에 콜로-콜로에 돌아온 후에 국가대표팀의 주축 선수가 되었고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FIFA 월드컵 지역예선에 출전했다. 1955년 남아메리카 챔피언십에서 칠레는 준우승을 거뒀다.
2.3. 이후
로블레도는 선수 은퇴 후 엘테니엔테(El Teniente) 광산에서 토목 기술자로 일했다. 후에 로블레도는 비냐 델마르에서 성베드로 학교의 스포츠 디렉터로 재직하다 1989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로블레도는 강하고, 타고난 공격수였으며 공을 쳐내기가 힘들고, 공중에서 뛰어나며 수비를 통과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는
재키 밀번의 빠른 스피드를 완벽하게 보완하는 것처럼 보였다. 강력하고 정확한 슛과 어디서든지 그의 행운을 시험하려는 의지를 사냥꾼의 눈에 던져라. 그리고 뉴캐슬 팬들은 로블레도가 점유하고 있을 때 기대를 절대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Robledo was strong, naturally fit,, hard to knock off the ball, superb in the air and with the ability to pass his way through a defence; he seemed to complement Milburn's fast running game perfectly. Throw in a poacher's eye for goal, a powerful accurate shot and a willingness to try his luck from anywhere, and United fans never quite what to expect when Robledo was in possession.)
뉴캐슬 컬트 히어로
(Robledo was strong, naturally fit,, hard to knock off the ball, superb in the air and with the ability to pass his way through a defence; he seemed to complement Milburn's fast running game perfectly. Throw in a poacher's eye for goal, a powerful accurate shot and a willingness to try his luck from anywhere, and United fans never quite what to expect when Robledo was in possession.)
뉴캐슬 컬트 히어로
4. 사생활
로블레도는 축구계를 떠나 있던 1959년에 결혼했다.5. 뒷이야기
- 2002년 9월 11일,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의 홈구장인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구장 정문에 걸릴 로블레도의 기념패가 공개되었다.
- 산티아고 데 칠레에는 로블레도의 이름을 딴 거리가 2곳이 있다.
- 존 레논은 어린 시절 뉴캐슬과 로블레도의 열렬한 팬이었다. 레논은 1951-52 FA컵 결승전에서 로블레도가 아스날 FC를 상대로 넣은 선제 결승골 장면을 그림으로 그린 적이 있었는데 그가 1974년에 발매한 앨범 Walls and Bridges의 표지에 그 그림을 넣었다.
- 2021-22 FA컵 결승전 하프타임 때 트로피를 차지한 역사적 인물 15인이 공개되었는데 로블레도도 그 중 한명이었다. 이 자리에는 로블레도의 딸 엘리자베스가 참석했다.
- 2022년 5월, 엘리자베스는 로블레도의 물품 일부를 경매에 부쳤고 1951-52 FA컵 결승전 때 입었던 로블레도의 실착 유니폼은 7,500 파운드에 팔렸다.
6. 수상
6.1. 클럽
- 칠레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2회: 1953, 1956( 콜로-콜로)
- FA컵 우승 2회: 1950-51, 1951-52(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 코파 칠레 우승 1회: 1958(콜로-콜로)
- 칠레 프리메라 디비시온 준우승 3회: 1954, 1955, 1958(콜로-콜로)
6.2. 국가대표
-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준우승 1회: 1955
6.3. 개인
- 잉글리시 풋볼 리그 득점왕 1회: 1951-52(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 칠레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 2회: 1953, 1954( 콜로-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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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