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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憲宗嘉禮陳賀圖 屛風. 조선 헌종 10년인 1844년에 헌종과 효정왕후(孝定皇后)의 혼인 모습을 그린 병풍 그림. 현재 경기도 용인시의 경기도박물관과 부산광역시 서구의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동아 대학교 박물관본이 대한민국 보물 제733-1호, 경기도 박물관 본이 대한민국 보물 제733-2호로 지정되어 있다.2. 내용
조선 제24대 국왕인 헌종이 1844년 효정왕후 홍씨와 가례를 치르는 모습을 기록한 궁중 기록화로, 창덕궁 인정전에서 치러진 진하례 장면을 6폭의 병풍에 담은 것이다.
병풍에는 그림과 함께 당시 예문관 제학 조승구(趙秉龜)가 지은 반교문인 가례후진하교시반교문(嘉禮後陳賀敎是時頒敎文)이 수록되어 있다.
조선의 다른 궁중 기록화와 비교해보면 전체적인 완성도는 약간 떨어지는 편이지만 가례와 관련된 그림 자체가 귀하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고, 왕실 혼례의 양상을 어느 정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3. 외부 링크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 헌종가례진하도 병풍
- 두산 백과 : 헌종가례진하도 병풍(733-1호)
- 두산 백과 : 헌종가례진하도 병풍(733-2호)
- 향토 문화 전자 대전 : 헌종가례진하도 병풍
- 한국어 위키 백과 : 헌종가례진하도 병풍 (보물 제733-1호)
- 한국어 위키 백과 : 헌종가례진하도 병풍 (보물 제733-2호)
4. 보물 제733-1호
<헌종가례진하도 병풍(憲宗嘉禮陳賀圖 屛風)>은 헌종(재위 1834∼1849)이 효정왕후와 혼인할 때의 모습을 그린 병풍으로 크기는 각 폭 가로 115㎝, 세로 51㎝이며 비단에 채색 되었다.
헌종의 첫 왕비인 효현 왕후 김씨가 헌종 9년(1843년)에 죽고 이듬해 10월 효정 왕후와 가례를 올렸는데 이 때 그려진 것으로 모두 8폭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폭은 예식을 맡아보던 예문제장 조병구가 쓴 축하의 글이 실려 있고 제8폭에는 선전관청에 있는 사람들의 관등·성명·본관 등을 기록한 글이 있다. 그리고 제3폭 ∼ 7폭까지는 혼례를 치르는 장면과 함께 창덕궁 인정전을 비롯한 궁궐 내의 모습이 질서정연하면서도 화려하게 그려져 있다.
140여년 전 궁중 혼례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어 회화로서 뿐만 아니라 역사 자료로서도 가치가 있으며 보관 상태도 매우 양호하다.
헌종의 첫 왕비인 효현 왕후 김씨가 헌종 9년(1843년)에 죽고 이듬해 10월 효정 왕후와 가례를 올렸는데 이 때 그려진 것으로 모두 8폭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폭은 예식을 맡아보던 예문제장 조병구가 쓴 축하의 글이 실려 있고 제8폭에는 선전관청에 있는 사람들의 관등·성명·본관 등을 기록한 글이 있다. 그리고 제3폭 ∼ 7폭까지는 혼례를 치르는 장면과 함께 창덕궁 인정전을 비롯한 궁궐 내의 모습이 질서정연하면서도 화려하게 그려져 있다.
140여년 전 궁중 혼례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어 회화로서 뿐만 아니라 역사 자료로서도 가치가 있으며 보관 상태도 매우 양호하다.
5. 보물 제733-2호
<헌종가례진하도 병풍(憲宗嘉禮陳賀圖 屛風)>은 8폭 병풍 으로서 1844년(헌종 10년)조선조 제24대 왕인 憲宗(1827년 ~ 1849년, 재위 1834년 ~ 1849년)이 孝定王后와 嘉禮를 치른 후 진하 장면을 그린 궁중 기록화이다. 8세에 즉위한 헌종은 정비였던 孝顯王后金氏(1828년 ~ 1843년)가 죽자 이듬해 10월 18일 홍재룡의 딸을 계비 효정 왕후로 책봉하였으며, 21일 親迎禮와 同牢宴을 거행하였다.
<헌종가례진하도병풍>은 총 8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첩에는 藝文館提學趙秉龜(1801년 ~ 1845년)가 지어올린 ‘嘉禮後陳賀敎是時頒敎文’이 쓰여 있다.
제2첩에서 7첩까지 여섯 폭에는 창덕궁 인정전을 배경을 하여 진하례가 그려져 있다. 효정 왕후의 책봉, 가례, 진하는 실제로는 모두 慶熙宮에서 치러졌으므로, 이 그림은 사실과 부합되지 않지만, 19세기 진하도병에서는 실제 장소와 상관없이 항상 창덕궁 인정전을 배경으로 진하례를 그렸다. 따라서 이 병풍에서도 창덕궁 인정전을 비롯한 크고 작은 전각이 산수, 수목, 인마들과 함께 질서정연하면서도 호화롭게 묘사된 가운데, 문무백관들이 질서정연하게 집결되어 있다. 평행사선부감의 형식으로 표현된 궁궐 장면은 입체적인 공간을 마련해주고 있으며, 국왕과 국체를 상징하는 의장이 총동원된 진하 장면은 조선 왕실 문화의 위엄과 화려한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해 주고 있다.
제8첩에는 선전관청의 관원으로 이루어진 선전관좌목이 보인다. 折衝將軍宣傳官尹明儉(1779년 ~ ?), 李熙庚(1790년 ~ ?)을 비롯하여 모두 25명 관원들의 품계, 관직명, 생년, 과거 급제년, 본관 등이 기록되어 있다. 좌목으로 보아 이 병풍은 선전관들이 주도하여 헌종 가례 및 진하를 기념하여 제작된 선전관청의 계병이라 할 수 있으며, 관행상 좌목에 들어 있는 선전관원 전원에게 모두 분급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극세필에다 진채로 이루어진 대폭의 가례도는 회화사 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167년 전의 궁중 혼례 모습을 생생하게 엿 볼 수 있는 귀중한 역사 자료라고 말할 수 있다.
<헌종가례진하도병풍>과 같은 내용의 그림이 동아 대학교박물관(1982년 보물 제733호로 지정)과 국립 중앙 박물관에도 각각 1점씩 소장되어 있다. 이들 세 병풍은 밑그림에서 약간 씩 차이를 보이며, 각종 의장물이나 인물의 복식과 포치, 그리고 등장 인물들의 수효도 상이하다. 그러나 전체적인 표현 양식은 거의 같아서 제작 시기는 거의 같은 무렵으로 생각된다.
경기도 박물관 소장 <헌종가례계진하도병풍>은 조선 후기의 왕실의 주요 행사인 가례와 관련된 귀중한 자료이다. 동시기에 제작된 궁중행사도 계병들과 비교하면 예술적 완성도 면에서 약간 뒤지지만, 기 지정된 보물 제733호에 비교해 볼 때 같은 필치와 화풍을 보여주며, 상태는 오히려 보다 양호한 편이다.
<헌종가례진하도병풍>은 총 8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첩에는 藝文館提學趙秉龜(1801년 ~ 1845년)가 지어올린 ‘嘉禮後陳賀敎是時頒敎文’이 쓰여 있다.
제2첩에서 7첩까지 여섯 폭에는 창덕궁 인정전을 배경을 하여 진하례가 그려져 있다. 효정 왕후의 책봉, 가례, 진하는 실제로는 모두 慶熙宮에서 치러졌으므로, 이 그림은 사실과 부합되지 않지만, 19세기 진하도병에서는 실제 장소와 상관없이 항상 창덕궁 인정전을 배경으로 진하례를 그렸다. 따라서 이 병풍에서도 창덕궁 인정전을 비롯한 크고 작은 전각이 산수, 수목, 인마들과 함께 질서정연하면서도 호화롭게 묘사된 가운데, 문무백관들이 질서정연하게 집결되어 있다. 평행사선부감의 형식으로 표현된 궁궐 장면은 입체적인 공간을 마련해주고 있으며, 국왕과 국체를 상징하는 의장이 총동원된 진하 장면은 조선 왕실 문화의 위엄과 화려한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해 주고 있다.
제8첩에는 선전관청의 관원으로 이루어진 선전관좌목이 보인다. 折衝將軍宣傳官尹明儉(1779년 ~ ?), 李熙庚(1790년 ~ ?)을 비롯하여 모두 25명 관원들의 품계, 관직명, 생년, 과거 급제년, 본관 등이 기록되어 있다. 좌목으로 보아 이 병풍은 선전관들이 주도하여 헌종 가례 및 진하를 기념하여 제작된 선전관청의 계병이라 할 수 있으며, 관행상 좌목에 들어 있는 선전관원 전원에게 모두 분급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극세필에다 진채로 이루어진 대폭의 가례도는 회화사 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167년 전의 궁중 혼례 모습을 생생하게 엿 볼 수 있는 귀중한 역사 자료라고 말할 수 있다.
<헌종가례진하도병풍>과 같은 내용의 그림이 동아 대학교박물관(1982년 보물 제733호로 지정)과 국립 중앙 박물관에도 각각 1점씩 소장되어 있다. 이들 세 병풍은 밑그림에서 약간 씩 차이를 보이며, 각종 의장물이나 인물의 복식과 포치, 그리고 등장 인물들의 수효도 상이하다. 그러나 전체적인 표현 양식은 거의 같아서 제작 시기는 거의 같은 무렵으로 생각된다.
경기도 박물관 소장 <헌종가례계진하도병풍>은 조선 후기의 왕실의 주요 행사인 가례와 관련된 귀중한 자료이다. 동시기에 제작된 궁중행사도 계병들과 비교하면 예술적 완성도 면에서 약간 뒤지지만, 기 지정된 보물 제733호에 비교해 볼 때 같은 필치와 화풍을 보여주며, 상태는 오히려 보다 양호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