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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슬러 잡지 대 제리 팔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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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대법원 판결
사건명칭 허슬러 잡지 대 제리 팔웰
Hustler Magazine and Larry C. Flynt, Petitioners v. Jerry Falwell
문서번호 86-1278
판례번호 485 U.S. 46
선고일 1988년 2월 28일
재판관 연방 대법원장 윌리엄 렌퀴스트 및 7인[1]
판결 수정헌법 1조에 의거, 공인에 대한 패러디는 고통을 주기 위한 목적이라도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된다.
다수의견 렌퀴스트, 브레넌, 화이트, 마샬, 블랙먼, 스티븐스, 오코너, 스컬리아 (만장일치)
보충의견 화이트

1. 개요2. 배경3. 결정4. 후일담5. 같이 보기

1. 개요

미국 수정헌법 제1조의 표현의 자유에 관한 미국 대법원의 유명한 판결. 포르노 잡지 허슬러 발행자인 래리 플린트(1942~2021)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복음전도사이자 기독교 근본주의자였던 제리 팔웰(Jerry Falwell, 1933~2007) 목사 간의 사건이다. 이 사건은 개인간의 소송으로 시작되었으나 미국 사회에 상대방 취향에 대한 관용 논란, 표현의 자유 논란, 사상의 자유 논란으로 확대되었다.

2. 배경

래리 플린트는 허슬러라는 잡지에서 기독교를 비롯한 각종 종교의 비난글을 개재해왔다. 특히 기독교 근본주의의 상징격인 제리 팔웰이 자주 놀림거리가 되었다. 더 나아가서는 팔웰 목사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게이 파티에서 애널 섹스를 하는 삽화라든지, '대법원장과 팔웰 목사 간의 XXX' 등등을 다루기도 했다.

그러다 1983년에는 기어코 팔웰 목사가 화장실에서 문란한 어머니와 근친상간을 했다는 내용의 패러디 광고를 실었다. 광고 제목은 '제리 폴웰이 첫경험에 대해 말하다(Jerry Falwell Talks About His First Time)'로, 당시에 있었던 캄파리 광고의 패러디다. 캄파리는 술 브랜드로, 당시 유명한 여성 모델이나 배우를 광고 모델로 하여 인터뷰 형식으로 캄파리를 처음 마신 경험[2]에 대한 1페이지짜리 광고를 여러 잡지에 냈는데 플린트는 이것을 팔웰 목사로 바꾸고 인터뷰에 온갖 섹드립을 넣은 것으로 바꿨다. 물론 그 광고 아래에 '패러디니깐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십시오'라고 써놓긴 했다. 보험 광고 약관 설명 마냥 눈에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작게.

팔웰 목사와 기자 사이의 인터뷰 형식인 이 광고의 대사는 다음과 같다.
파일:external/vinepair.com/wp-content/uploads/2020/03/campari_internal.jpg
원문
Falwell: My first time was in an outhouse outside Lynchburg, Virginia.
Interviewer: Wasn’t it a little cramped?
Falwell: Not after I kicked the goat out.
Interviewer: I see. You must tell me all about it.
Falwell: I never really expected to make it with Mom, but then after she showed all the other guys in town such a good time, I figured, "What the hell!"
Interviewer: But your Mom? Isn’t that a little odd?
Falwell: I don’t think so. Looks don’t mean that much to me in a woman.
Interviewer: Go on.
Falwell: Well, we were drunk off our God-fearing asses on Campari, ginger ale and soda—that’s called a Fire and Brimstone—at the time. And Mom looked better than a Baptist whore with a $100 donation.
Interviewer: Campari in the crapper with Mom. How interesting. Well, how was it?
Falwell: The Campari was great but Mom passed out before I could come.
Interviewer: Did you ever try it again?
Falwell: Sure. Lots of times. But not in the outhouse. Between Mom and the shit, the flies were too much to bear.
Interviewer: We meant the Campari.
Falwell: Oh, yeah, I always get sloshed before I go to the pulpit. You don’t think I could lay down all that bullshit sober do you?
CAMPARI - You'll never forget your first time.
AD PARODY - NOT TO BE TAKEN SERIOUSLY
번역
팔웰: 내 첫 경험은 버지니아[3] 린치버그 교외의 한 옥외 화장실에서였습니다.
기자: 좁아서 좀 불편하지 않았나요?
팔웰: 그 놈의 염소를 차서 쫓아낸 뒤엔 그렇지도 않았지요.[4]
기자: 그렇군요, 한 번 자세히 얘기해 주시죠.
팔웰: 사실 저는 엄마와 그 짓을 하리라곤 전혀 생각도 못 했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마을의 모든 남자들과 놀아나는 꼴을 보고는"까짓거 뭐 어때!"라고 생각했죠.
기자: 하지만 엄마랑? 그거 좀 이상하지 않나요?
팔웰: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저한테 여자의 외모는 크게 중요하지 않거든요.[5]
기자: 계속하시죠.
팔웰: 그게, 우린 그 때 캄파리와 진저 에일, 그리고 소다를 섞은 거-그걸 지옥의 고통이라 부르죠-를 마시고 완전히 취해 있었죠.
그러고 나니까 엄마가 100달러 기부하는 침례교 창년보다 더 나아 보이더라구요.[6]
기자: 엄마랑 같이 변소에서 캄파리를... 흥미롭네요. 그래서 어땠나요?
팔웰: 캄파리는 죽여줬죠. 그런데 엄마는 제가 싸기도 전에 뻗어버렸더라구요.
기자: 다시 시도해 보셨나요?
팔웰: 물론이죠... 수없이 많이요. 변소에서는 말고요. 엄마랑 똥 때문에 파리가 엄청나게 많았거든요.
기자: 저희는 지금 캄파리 얘기를 하고 있는데요.
팔웰: 아, 그렇군요. 전 항상 설교하기 전에 왕창 들이붓죠. 제가 그 지랄을 맨정신으로 늘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캄파리 - 당신은 첫경험을 절대 잊지 못할 것입니다.
광고 패러디 -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 것

3. 결정

당연히 미국 사회는 난리가 났고 더 이상 참지 못한 팔웰 목사는 명예훼손을 원인으로 하여 허슬러 잡지사 및 그 소유주인 플린트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치열한 법정 공방 끝에 무려 연방대법원까지 간 이 재판에서 피고 래리 플린트는 이 문제를 미국 수정헌법 제1조, 및 제14조를 근거로 하여 공인에 대한 '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의 문제로 확대시킨다. 그런데 당시 미국에서는 종종 풍자나 정당한 비판을 당한 공인들이 명예훼손이나 정신적 피해를 원인으로 상대방으로부터 배상을 받아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여기서 풍자 및 비판의 주체가 언론이라고 하여도 예외는 아니었다. 점점 더 일반의 관심을 받아 가던 이 재판에서 플린트가 패소하면 이후 언론의 공인에 대한 풍자와 비판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될 수 있다고 판단한 미국 언론사들은 플린트를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대법원이 내놓은 판결은... 원고 패소, 즉 래리의 손을 들어줬다.[7]

이 판결을 내린 사람은 당시 대법원장이었던 윌리엄 렌퀴스트인데 유명한 보수주의자라 판결 전에는 누구나 팔웰의 승소를 예견했지만 렌퀴스트는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림으로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대통령을 포함해 자신을 대법원장에 임명했던 권력층을 경악케 했다.

렌퀴스트의 판결문 요지는 다음과 같다: 미국 시민의 특권 중 하나는 공적인 인물이나 정책을 비판할 권리이다. 이런 비판은 그 대상에 대한 증오나 악의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허용돼야 한다. 비판의 동기를 문제삼아 불이익을 준다면 공적인 문제에 대한 토론이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며, 격분해서 한 말일지라도 그 또한 ‘생각의 교환’이고 진실을 찾아가는데 기여한다. 표현의 영역에서 ‘극악무도함’은 너무 주관적인 잣대이며, 무엇보다 이 패러디 광고는 사실이 아님을 미리 밝히기도 했다.

'공무원과 공적 인물을 풍자하는 것이 불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공인이 입는 정신적 피해보다 표현의 자유가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4. 후일담

이 판결 과정은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영화화되기도 했다. 보면 알겠지만 사실 래리가 거창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총대를 맸다기보다는 그냥 성질 더러운 인간이 법정싸움에서 자기에게 유리할 방법을 찾다가 표현의 자유 문제로 확대시켰더니 얼떨결에 대표가 되고 이긴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진의가 어떻든 간에 결국에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서 기념비적인 사건이 되었다. 언론사상을 배우는 대학 수업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사건이다.[8]

놀랍게도 팔웰과 플린트는 이 사건으로부터 한참 후 영화 래리 플랜트가 개봉했을 때 이 사건이 다시 회자되자 함께 래리 킹의 토크쇼에 초청을 받은 것을 계기로 사적으로 자주 만나게 되었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이가 좋아졌다고 한다. 어찌보면 이 사건에서 판결 다음으로 최대의 반전이다. 이 토크쇼 이후 팔웰이 플린트를 찾아와서 자신과 함께 대학생들 앞에서 공개토론을 여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고 플린트가 이에 응하면서 연이 닿아 가치관이 정반대인 두 사람은 이래저래 자주 붙어다니게 되면서 친분을 쌓아가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시작된 인연은 팔웰이 플린트네 집에 자주 놀러오고 크리스마스 카드를 서로 교환하는 등 발전하여 폴웰이 사망할 때까지 계속 둘의 친분이 유지됐다. 팔웰 사후 플린트가 그에 대한 기억과 회한을 담은 글을 신문사에 기고했는데 여전히 팔웰의 사상이나 도덕관에 공감하지는 못하겠고 팔웰이 대체 무슨 의도로 자신과 친구가 되고자 한 건진 여전히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대중도, 나 자신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의 궁극적인 결말은 바로 우리 두사람이 친구가 되었다는 것."이란 글을 통해 팔웰을 기렸다.

5.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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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앤서니 케네디는 참여하지 않음 [2] 사실 광고 표제어부터 섹드립이 들어가 있는데 원래 광고 표제어는 "OOO Talks About Her First Time"이다. 표제어만 봐서는 캄파리를 마신 경험보다는 첫 경험을 떠올릴 가능성이 높은데 미국에서도 'first time'은 첫 성관계를 의미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3] 폴웰의 고향이다. [4] 화장실에 가축이 있을 만큼 촌동네라는 뜻이다. [5] 폴웰의 어머니가 못생겼다는 뜻이며, 또 기자는 근친상간이 이상하지 않냐는 뜻으로 물은건데 그건 생각조차 안하고 외모 타령이나 하고 있다. [6] 기독교 원리주의자인 폴웰의 입으로 기독교 원리주의를 시작한 침례교를 비하하게 만드는 부분이 포인트. [7] 대상이 공인이 전혀 아닌 경우엔 예나 지금이나 명예훼손이다. [8] 사실 의외로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