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한용국(韓用國) |
생몰 | 1886년 7월 10일 ~ 1959년 11월 25일 |
출생지 | 경상북도 문경군 동로면 노원리[1] |
사망지 | 경상북도 문경군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한용국은 1886년 7월 10일 경상북도 문경군 동로면 노원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 발발에 반발하여 1896년 초 이강년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하여 참모관을 역임해 군자금을 제공하고 여러 전투에 참여했다. 이후 이강년이 1896년 7월 의병을 해산하자 단양 산중에 은거했다. 1907년 정미7조약이 체결되면서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해산되자, 그는 이강년에게 다시 가담해 좌종사부(坐從事部)에 소속되어 1908년 6월 이강년 의병장이 체포될 때 까지 1년여간 충청, 강원, 경상도 일대에서 일군과 격전을 벌였다.1908년 9월 이강년이 순국한 뒤 의병을 다시 일으켜 일본군 14연대 및 51연대 등과 교전 중 체포되었지만 탈출한 뒤 문경군에서 은거했다. 1959년 11월 25일에 문경군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한용국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청주 한씨 집성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