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4 18:58:36

한국 칸트 학계 번역어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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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1. 개요

한국 칸트 학계의 번역어 논쟁을 정리한 문서.

2. 상세

칸트 철학서의 한국어 번역에 관한 논란은 20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쟁점으로는 다음과 같은 개념어들을 들 수 있다:
  • a priori: "a priori한 판단(Urteile)", "a priori한 인식(Erkenntnisse)" 같은 용법으로 쓰인다. "경험 이전 또는 그 참이 경험에 의존하지 않는(a priori)"이라는 의미. 즉 경험과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는 판단, 인식 등을 뜻하며, 칸트에 따르면 이는 오직 순수 지성(Verstand) 혹은 이성(Vernunft)에서 유래한 것이다 (IV 266). 수학이 대표적으로 a priori한 학제다.
  • transzendental: 칸트 철학의 핵심적인 떡밥이며, 칸트가 스스로의 철학을 "transzendental 철학"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유. transzendent와는 명시적으로 구분된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칸트가 다음과 같이 비교적 명료한 정의를 제시한 바 있다.
[내 정의에 따르면] 용어 transzendental은 [...] 모든 경험을 넘어서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경험에 앞서되 (a priori) 오직 경험적 인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으로 규정된 것일 뿐이다. 이들 개념이 경험을 넘어설 경우, 그런 쓰임은 transzendent한 것이라고 불리며, 이는 내재적인 것, 즉 경험으로 제한된 쓰임과 구분된다.[1][2]
『형이상학 서설』, IV 373, 저자 주 (역자 강조)

이처럼 위 개념들은 칸트 자신이 비교적 그 의미를 명료하게 제시한 것이며, 칸트 학계에서도 그 의미에 대한 이해 자체는 그리 이견이 없다. 다만 한국의 칸트 철학사 연구자들 간에는 이들 개념어를 어떻게 한국어로 번역할 것이냐에 관한 첨예한 의견 대립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 이 논쟁의 배경과 맥락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3] 토마스 아퀴나스 등으로 대표되는 중세 기독교 철학(스콜라 철학)으로부터 내려온 transzendent(al) 개념을 여타 독일 근대 철학자들과 칸트가 지들 멋대로(...) 재정의한 개념변천사[4]부터 훑고 오는 것이 이롭다. 아래는 이를 위해 참고할 만한 몇몇 논문들이다.
  • 김승욱, <칸트 선험철학의 스콜라적 수용의 맥락에서 인간의 초월 문제>(2021)
  • 김율, <중세 스콜라철학의 초월주(超越疇) 이론과 미>(2005)
  • 김창원[5], <볼프[6]의 '트란스첸덴탈' 개념>(2006)
  • 박진, <독일 관념론에 전해진 중세 스콜라철학의 유산>(2000)
  • (추가 바람, 저자 기준 가나다순)

좌우간 표현들에 대한 한국어 번역은 세 가지 정도의 판본에서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a priori transzendental transzendent[7]
최재희 역[8] 선천(적) 선험(적) 초험(적)
백종현 역 선험(적) 초월(적) 초험(적)
칸트학회 역 아프리오리(한) 선험(적) 초험(적)
※참고: 현대 일본 칸트학계 역[9][10][11] 아프리오리(한) 초월론(적) 초월(적)

참고로 이외 주요 경쟁역어를 포함하면 다음과 같다.

파일:국내칸트철학용어주요경쟁역어비교대조표최종.png

이러한 번역어 논쟁이 벌어지는 이유는 칸트의 의미 구분과 한국어 표현의 가짓수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칸트는 세 가지 다른 표현을 중요하게 사용한다. 위에 설명했듯이, 일단 칸트는 transzendental / transzendent라는 독일어 형태상 비슷해 보이는 용어를, transzendental은 경험 일반이 가능하게끔 해 주는 틀, 조건이라는 자신의 고유한 기술 용어로 사용하는 한편, transzendent는 초월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하여 구분한다. 여기에 더하여 또 이 둘과는 다시 구분되는, 칸트의 시대에는 경험 독립적으로 그 참이 보증된다는 의미로 쓰이는 a priori라는 라틴어 용어 역시 다른 의미를 가지고 곳곳에서 사용된다. 따라서 칸트가 의미를 구분하여 사용하는 표현은 세 가지가 된다.

그런데 한국어에서 위의 세 표현들을 번역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선험/선천/초험/초월인데, 앞의 두 단어와 뒤의 두 단어가 형태상 유사하므로, 의미가 완전히 다른 세 표현을 위해서 우리가 딱 잘라서 쓸 수 있는 표현이 두 개인 상황이 된다. 따라서 의미상 필요한 표현은 세 가지이나 형태상 가능한 차이가 두 개가 되며, 이에 역자가 transzendental / transzendent 간의 차이에 주목하여 둘을 다른 형태를 가진 한글 용어를 사용하고자 할 때와 a priori와 transzendental 간의 차이에 방점을 두어 번역하고자 할 때에 차이가 생기게 된다. 이렇게 볼 때 백종현의 번역은 a priori와 나머지 용어 간의 차이를 강조하여 번역한 것으로, 최재희 역은 transzendental과 transzendent 간의 차이를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칸트학회의 경우는 a priori를 아예 원문 그대로 '아프리오리'로 표현함으로서, 한국어에는 사용하지 않는 음차 표현을 동원하여 고육지책으로나마 세 의미를 전부 나누어 번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각기 다른 번역 전통이 섞이는데, 일반적으로 'a priori'라는 용어는 칸트 이전의 근대철학에서는(데카르트/라이프니츠/흄 등) '선험'이라는 한국어 표현으로 번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12] 반면 후설 하이데거 등의 독일 후기 철학에서는 transzendental을 선험 혹은 그 유사어로 번역하는 경우가 있다. 즉 위에 나온 의미상의 논쟁을 제외하더라도 한국어 선험이라는 표현을 어디에 줄지에 대해서도 한국에 있는 학회들 간의 번역 전통이 이미 다르다는 것(...) 게다가 칸트는 근대의 완성자이자 독일 철학, 특히 독일어로 이루어지는 철학 전통의 (라이프니츠는 불어와 라틴어로 글을 썼으므로)시발점이기도 하기 때문에 각자는 각자에게 편한 용어가 있기 마련인 것이다. 다만 현재 가장 최근에 출간되었고 거의 모든 책이 번역되어 있는 판본은 백종현 본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 영향이 강한 상태이다.

각 번역의 단점을 보자면, 백종현 역을 따를 경우, 초월적인 것이 우리의 안에 있는 인식의 틀을 연구하는 것이 된다는 점에서 다소 기이한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는 점이 큰 단점으로 지적된다. 또한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선험'이라는 용어의 사용에 있어서 후기 독일철학에서 사용되는 번역어와 일관적이지 못하게 된다. 동전의 양면과 같이, 최재희 역과 칸트학회 역은 '선험'의 사용에 있어 근대철학자들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번역어와 어긋난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최재희 역은 '선천'이라는 표현을 a priori에 대응하였는데, 이는 원어의 의미를 축소시키는 번역으로 여겨질 수 있다. 칸트학회의 역은 a priori를 음차로 아프리오리라고 남겨 두는 길을 선택하였는데, 이로 인해서 '아프리오리한 종합 판단'이라는 한국어에서는 잘 보지 못하는 기이한 조어를 받아들여야 하게 된다.[13] (해당 표현은 다른 판본에서는 음차가 드러나지 않는, '선험적 종합 판단'(백종현), 혹은 '선천적 종합 판단'(최재희)로 번역된다.) 또한 최재희 역에는 또 다른 단점이 있는데[14], 그것은 대부분의 도서관에 있는 판본의 단어들이 (제목부터!) 한자로 표기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최재희 역본이 출간된 박영사판은 2017년도에는 <<판단력비판>>을, 2018년도에는 <<실천이성비판>>의 보정판을 출간하였는데, 이 '보정판'들은 국한문혼용을 한글 전용으로 변경하였다는 크나큰 변경점이 있지만, 문체 자체를 근본적으로 수정하지는 않았다. 요새의 젊은 인문학도가 이 책을 읽으면 현대 한국어 글쓰기 어법에 없다시피 한, '강조 목적으로 글자 위에 방점 찍기' 등의 생소한 표기에 맞닥뜨리게 된다.[15] 게다가 '보정판'은 역으로 문제가 늘어난 측면이 있는데, 역자가 사망한 상태에서 검수 없는'보정'을 하다 보니 자구를 함부로 건드려 역자의 원뜻을 정반대로 바꿔 훼손한 부분 등이 있기도 하고, 오만가지 추가적 오타가 난무한다. 때문에 '보정판'은 학술적 가치가 많이 떨어진다.

백종현 역과 칸트학회 역의 장점을 보자면, 일단 백종현 역은 대부분 완성되어 있으면서도, 세세한 단어에 있어서까지 일관적인 단어를 선택하여 동일한 문체로 번역하였다는 점이 확실한 장점이다. 이를테면 'Hang'이라는 마이너한 단어는 윤리 형이상학 정초에 단 한번 등장하는 반면 후기 저서인 칸트의 인간학이나 종교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백종현 역에서는 해당 단어는 일관적으로 '성벽'으로 번역되었다.[16] 역자가 다른 영어판 칸트 전집에서도 자주 쓰이지 않는 단어에서는 번역이 갈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히 큰 장점이다. 또한 칸트의 더러운 문체가 상당히 일관적으로 번역되어, 하나의 번역본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다른 저서 또한 어느 정도 읽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더러운 문체를 일관적으로 살렸다는 점은 그 책이 사실 한국어 문장이라기 보다는 독일어 원문 문장에 가깝다는 얘기가 되기도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칸트학회의 번역은 칸트의 더러운 원문을 보다 읽기 쉽게 윤문을 많이 가하였다. 원문에 얼마나 가깝고 먼지는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이렇게 볼 때, 백종현 역과 칸트학회 역은 각자가 가지는 개성이 확실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으며, 단어 선택에 있어서도 동일한 정신이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백종현 역은 독일어를 같이 펴놓고 읽기에 좋으며, 이는 역자가 곳곳에서 밝히고 있는 자신의 번역의 의의이다. 반면 칸트학회의 번역은 근대철학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이 없는 사람이 보다 일반적으로 읽기에는 보다 나은 번역이다. 이제 다시 번역 논쟁으로 돌아가서, a priori / transzendental / transzendent 의 형태를 보면, 의미가 아니라 독일어 단어의 형태에 집중해서 볼 경우, transzendental / transzendent를 유사한 한국어 단어로 번역하고 a priori를 다른 단어들과 구분되는 표현을 적용해야 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17] 이 경우 독자는 transzendental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한 상태에서 독서를 해야 할 것이다. 반면 칸트 철학의 핵심 용어인 transzendental의 고유한 의미를 강조하고 싶다면, 해당 용어를 형태는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는 transzendent 와 구분하는 부분을 강조해서 번역어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에 독일어 형태를 보다 잘 반영하여 (형태상으로) 원어에 가깝게 만든 번역은 백종현 번역으로, 그리고 transzendental의 차이를 강조한, 읽기에 보다 편하고 오해를 원천적으로 방지하는 번역이 칸트학회 번역이 된다는 것은 번역에 대한 각각의 정신이 나름의 일관되게 작용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겠다. 따라서, 해당 논쟁에 있어서 아래의[18] 논쟁을 참조하되 어떤 번역도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배경 지식과 필요에 따라서 자신에게 맞는 번역을 선택하면 될 것이다.

그 외의 점을 부연 설명 식으로 나열하자면, 백종현 칸트 번역서의 경우 일반적인 책 구조인 '짧은 서문->본문' 이 아니라, 그 책에 대한 '해제'라는 명목으로 본문에 대한 해설, 책의 역사, 관련 논저 등을 매우 길게 나열한다. 가령 백종현 역 <<순수이성비판>>의 경우, 이 '해제'를 한 130페이지 이상 넘겨야 겨우 본문으로 넘어간다. 학술서 번역의 경우 번역자가 해설을 다는 것은 일반적이지만, 백종현의 경우 그게 과잉 친절로 여겨져 칸트를 교양으로 보거나 전문 연구자들에게 불필요한 부분이 과다 삽입되어[19] 불편하게 여기는 경우가 있다. 차라리 해제를 책의 맨 뒤로 옮기거나, 해제를 뺀 간편한 판본을 따로 출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길사 칸트전집의 경우 단순히 '백종현 번역에 불만을 가져 대항 번역'을 출간하는 것을 넘어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비판기 이전 저작의 번역도 천명하였다는 의의가 있다. 가령 한길사 칸트전집 2권(비판기 이전 저작 2)의 경우, 이 저술들은 칸트의 모국어인 '독일어'가 아니라 라틴어로 저술된 것을 번역한 것이며, 이는 김상봉의 한겨레 투고문에 따르면 영역본과 일역본에 이은 세계 3번째로 나온 번역이다.

특히 2018년에 한국 칸트학회에서 칸트 전집 출판을 선언한 이후로 한겨레신문에서 이해 당사자들 간의 지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참고로 한겨레신문에 칼럼기고의 형식으로 먼저 포문을 연 것은 백종현이다. 또한 기사 내용에 따르면 백종현의 번역에 대한 입장은 학회에서 전혀 논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고 문전박대당한 것으로 보이므로, 신문 기고 이전부터 다양한 물밑 암투(...)가 있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상 한국적 혹은 동아시아적 번역 조류에 대한 전체적인 정리와 중립적(칸트학계 외부적) 평가는 부산대학교 이영철 교수[20]의 논문 <'선험', '선천', '초월'>(2020)을 참고할 만하다.

2022년 경북대 문성학 교수가 낸 <<칸트 윤리학의 균열>>이라는 책의 부록에 백종현 번역에 대한 보다 자세한 비판이 실렸다.

[1] das Wort transscendental (...) bedeutet nicht etwas, das über alle Erfahrung hinausgeht, sondern was vor ihr (a priori) zwar vorhergeht, aber doch zu nichts mehrerem bestimmt ist, als lediglich Erfahrungserkenntniß möglich zu machen. Wenn diese Begriffe die Erfahrung überschreiten, dann heißt ihr Gebrauch transscendent, welcher von dem immanenten, d.i. auf Erfahrung eingeschränkten Gebrauch unterschieden wird. [2] 다만 이러한 깔끔한 구분이 무색하도록 칸트 본인도 생각보다 여러 부분에서 transzendental과 transzendent를 착각한다(...) 이러한 착각은 대부분의 경우 transzendental을 transzendent의 의미로 잘못 사용되는 경우이다. [3] 보통 플라톤과 칸트가 자주 비교되나, <<순수이성비판>>의 논리학적 체제를 보아도 그렇거니와 아리스토텔레스적 개념과 문제의식이 칸트에게 플라톤 이상의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것이 칸트철학 이해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줄 수 있다. [4] 매우 거칠게 요약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하는 것(존재자)들의 존재방식 및 그 분석에 있어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최고 유(類) 개념들로 양, 질, 관계, ... 등을 제시하고 이를 범주라 불렀는데, 중세 기독교 철학에서는 그런 범주들은 존재하는 것들 내부를 분별ㅡ양, 질, 관계 등은 어떤 것을 부분적으로 논하므로ㅡ할 뿐이고, 이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들 자체를 규정하는 초월범주(초월주, 초월자)들이 있으며, 존재(임/함), 완전함, 참됨, 선함, ... 등이 그것ㅡ존재 등은 어떤 것을 전체적으로 규정하므로ㅡ이고, 이것들은 결국 (존재하는 것들을 존재하게 한) 기독교적 창조신의 성격과 결부된다고 보았다. 나중에 독일 근대 철학계가 이 개념들을 오해했든 정밀화했든 재규정했든 간에 어쨌든 수용하였는데, 특히 칸트가 이 개념들을 건드린 이후ㅡ특히 칸트는 transzendent(<-> immanent)와 transzendental을 분리하였다ㅡ개념들의 독특성과 파급력이 너무 대단해졌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이 칸트화한 이 개념들이 선대 철학들과의 연속성에서 파악되어야 더욱 적절한가, 아니면 칸트적 고유성에서 파악되어야 더욱 적절한가이다. 전자를 지지한다면 초월 계열이 보다 적절한 번역일 것이고, 후자를 지지한다면 칸트적 고유성을 드러내는 다른 번역어가 보다 적절한 번역어일 것이다. 이것이 한국어 번역 논쟁의 '외면적인' 주요 쟁점이다. [5] 칸트 철학 및 문헌학의 대가로 알려진 노르베르트 힌스케 교수의 제자이다. 뒤 논문은 그 영향하의 것. 한길사 칸트전집 가운데 <<논리학/교육론>>의 공동 역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참고로 기출간된 <<논리학/교육론>>에는 역자 스스로 인정한 오역과 난역이 다수 있다. 역자 블로그에서 '논리학' 파트의 수정표를 확인할 수 있다. [6] 크리스티안 볼프는 합리론(이성주의)의 거두 고트프리트 빌헬름 폰 라이프니츠의 제자로 독일철학사상 라이프니츠-볼프학파의 학맥을 만들었으며, 칸트의 학문적 할아버지(즉 칸트의 스승의 스승)이다. [7] transzendent의 대립어는 immanent인데 주로 '내재(적)'이라고 번역된다. 이 번역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8] 경성제국대학 출신인 최재희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의 번역은 근대 일본의 번역 전통을 거의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예컨대 a priori를 선천, a posteriori를 후천으로 번역한 것은 니시 아마네(1829-1897)로부터 비롯된 전통이다. 참고로 constitution 헌법(憲法), science 과학(科學), technology 기술(技術), art 예술(藝術), psychology 심리학(心理學), instinct 본능(本能), faculty 능력(能力), impulse 충동(衝動), sentiment 정서(情緖), impression 인상(印象), consciousness 의식(意識), space 공간(空間), time 시간(時間), reason 이성(理性), moral 도덕(道德), principle 원리(原理), notion 개념(槪念), idea 관념(觀念), ideal 이상(理想), phenomenon 현상(現象), abstract 추상(抽象), concrete 구체(具體), definition 정의(定義), extension 외연(外延), comprehension 내포(內包), deduction 연역(演繹), induction 귀납(歸納), affirmative 긍정(肯定), negative 부정(否定), universal 전칭(全稱), particular 특칭(特稱), proposition 명제(命題), reduction 환원(還元), generalization 개괄(槪括), subsumption 포섭(包攝) 등을 비롯한 무진장 다수의 서양어-한자어 번역이 니시 아마네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 결과를 오늘날 한자 문화권이 공유하고 있다. 특히 칸트 철학의 또다른 핵심어들 중 subjekt를 주관, objekt를 객관으로 번역한 이도 니시 아마네인데, 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그 스스로 중간에 바꿔서 정착한 번역으로, 당초에는 전자를 차관(此觀), 후자를 피관(彼觀)이라 번역했다. 此는 '이(것) 차' 자이며, 彼는 '저(것) 피' 자이다. (김성근, 2014.03 참조) [9] 교토제국대학 철학 교수였던 구키 슈조(1888-1941)의 영향하에서 확장되고 오늘날 일본 및 적지 않은 한국 학계에서 통용되는 번역이다. 구키 슈조는 후설의 현상학에서 transzendental이 a priori한 측면으로도 경험적인 측면으로도 언급된다 보았고, 하이데거를 직접 만나 하이데거 특유의 transzendental 개념도 접하였다. 이에 '선험'은 transzendental의 전체 철학사적 맥락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고 판단, 지금과 같은 번역 조류를 제안한 것이다.(仲原 孝, 2007 참조) 백종현이 최재희 번역을 일부 일신하게 된 것도 (하이데거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현대 일본 학계의 동향에 영향 받은 탓이 크다. 그래서인지 반백종현파에서는 종종 백종현의 번역은 하이데거의 냄새ㅡ하이데거는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라는 문제작에서 그 특유의 문제적 칸트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로 백종현은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박사를 받았는데, 하이데거의 모교인 동시에 그가 교수와 총장을 지낸 곳이다.ㅡ가 난다는 투의 지적을 하곤 한다. 덧붙여 한국 내에서 transzendental은 사실 칸트학계의 틀을 벗어나면 일본 학계를 본받아 '초월론'으로 번역하는 축이 비교적 강세인데, 특히 헤겔학계, 현상학계, 하이데거학계 등에서 자주 보인다. 이외에도 Verstand를 '지성'이라 하지 않고 '오성'이라 하고, Einbildungskraft를 '상상력'이라 하지 않고 '구상력'이라 하는 등등의 경우가 있다면 역시 근현대 일본적 번역을 따른 것이다. 다만 이들 학계에서도 백종현 번역을 의식하여 a priori는 '선험', transzendent는 '초험'이라고 해주곤 한다. [10] 현대 일본 칸트학계식 번역어를 파악하려면, 사카베 메구미 등 저, 이신철 역, <<칸트사전>>을 보라. 이 책은 1997년 일본 칸트학계가 낸 칸트사전의 국역판이다. 참고로 백종현식 번역어는 2019년 그 스스로가 낸 <<한국 칸트사전>>으로 집약되었다. [11] 참고로 현대 일본 학계의 경우도 현재 번역 원칙에 불만의 목소리가 아예 없는 건 아니라서 transzendental을 초월로 하고 transzendent는 초절(超絶)이라고 하자는 등의 의견도 있다. 앞서 언급된 나카하라 다카시(仲原 孝)부터가 그러하다. [12] '선천'이라는 표현은 때로는 생득적을 뜻하고 또 때로는 경험 독립적임을 뜻할 수도 있는 a priori의 원 의미를 살리지 못하고 전자만을 지칭하는 좁은 의미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에 이제 근대철학 일반적에서는 번역어로 사용하지 않는다. [13] 아래의 기사를 잘 뜯어보면, 이는 칸트학회 내에서 해당 번역여에 합의를 보지 못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14] 순수이성비판이란 단어는 순수한 한글이 아니라, 본래 한자로 되어 있는 단어를 한국어로 음차한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純粹理性批判이란 단어는 원래 일본의 번역본에서 먼저 사용된 단어이다. 따라서 이것이 잘못이라면 이렇게 번역된 단어자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15] 그리고 이 번역자들이 21세기적 문체로 재번역하지 않은 것을 탓할 수도 없는데, 박영사판 <<판단력비판>>의 번역자 이석윤 교수는 2018년에 사망하였고, 최재희 교수도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그들의 번역을 더 이상 수정할 수도 없다. [16] 칸트학회 번역본 역시 대부분의 단어를 통일하여 번역[21]하고 있으나, 해당 단어는 칸트학회 번역어 사전에서 제외되었으며, 아직 해당 단어가 들어가는 저서들이 번역되지 않아 어떻게 번역될지 아직 확실하지는 않다. [17] transzendental의 의미를 비슷한 형태인 transzendent(초월)과 유사한 것으로, 그러니까 뭔가 초능력 비슷한 것으로 잘못 이해하는 것이 이 번역의 대표적 단점인데, 이러한 오해는 칸트 생전부터 원어민인 독일인에게도 종종 있었다. 오죽 오해가 많았으면 순수이성비판을 쓴 다음에 쓴 형이상학 서설에서 그렇게 읽지 좀 말라고 친절하게 (위에 나타나는) 해설을 써줬겠는가. [18] 감정 싸움이 상당히 개입된... [19] 단순 교양으로 볼 사람이면 당연하지만, 전문 연구자의 경우에는 칸트 저술과 연관된 역사와 연구 사항을 직접 국내외의 여러 논문을 읽어가면서 확인하므로, 백종현의 해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20] 비트겐슈타인 연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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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그런데 사실 한국칸트학회 홈페이지 번역용어집을 보면 약 20여개 역어만 필수적 통일 대상(그나마도 개중 절반 가량은 장, 부, 절 등 서지 용어의 통일로 칸트 철학 자체와는 무관하다)으로 지정해놓아, 대부분이라는 표현에는 어폐가 있다. 나머지는 사실상 학회 전집 참여자 개개인의 자유 번역이다. 실제로 핵심 개념인 Ding an sich만 해도 번역자 누구는 '사물 자체'라 하고 누구는 '물자체'라고 하여 통일이 안 되고 있다. 다른 용어들에서는 더욱 더 괴리가 심하다. 누구의 '경험적'이 다른 누구의 '감각경험적'이 되고 '역사적'이 '정보기록적'이 되는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