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하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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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9412c><colcolor=#ece5b6> 서하 제10대 황제
말제 | 末帝 |
|
묘호 | 없음 |
시호 | 없음 |
작위 | 남평왕(南平王) |
제호 | 말제(末帝) |
연호 | 보의(寶義, 1226년 ~ 1227년) |
성씨 | 이(李) |
휘 | 현(晛) |
부친 | 청평군왕(淸平郡王) |
생몰기간 | ????년 ~ 1227년 8월 28일 |
재위기간 | 1226년 ~ 1227년 8월 28일 (1년) |
[clearfix]
1. 소개
서하의 제10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 정식으로 추숭된 묘호와 시호가 없다. 헌종의 조카이며, 헌종의 동생 청평군왕(淸平郡王)[1]의 아들이었다.2. 생애
헌종이 황제로 재위할 때, 이현은 남평왕(南平王)으로 책봉되었다.1226년, 몽골의 제6차 침공 와중에 헌종이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서 이현이 황제로 즉위했다.
1227년 6월, 몽골군이 서하의 수도 중흥부를 공격하자[2], 중신들과 서하군은 끝까지 저항했으나 도성안에 물이 마르고 식량이 바닥나자 상황이 악화되었다. 결국 중과부적의 수세에 몰린 이현은 나중에 황실이 끝장날 것을 두려워해 도성의 문을 열고 몽골에 항복하여 멸족은 면했다.[3][4]
그러나 칭기즈 칸이 1227년 7월 12일에 육반산에서 세상을 떠나자 몽골의 장수들은 서하의 반격을 우려했고, 결국 1227년 8월 28일, 이현은 몽골군에 의해 암살당했으며, 서하는 북송으로부터 독립한 지 10대만에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다. 당시 몽골의 임시 군주였던 툴루이는 이현에게 어떠한 시호나 묘호도 내리지 않았다.
서하의 멸망 이후, 이현의 처첩은 길거리에서 몽골군에게 붙잡혀 강간당했다.
[1]
이름은 실전되었다.
[2]
당시 칭기즈 칸은 낙마의 영향으로 투병중에 있었다.
[3]
이현이
칭기즈 칸에게 항복을 요청했을 때 받아들여지지 않고,
툴루이에게 참수당했다고 아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4]
이현을 충동질해서 몽골과의 적대감을 조성하던 서하의 중신들은 대부분 잡혀 죽었지만 이현은 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