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5 19:40:46

신종(서하)

파일:백고대하.png
서하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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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호 신종(神宗)
시호 영문황제(英文皇帝)
연호 광정(光定, 1211년 8월 ~ 1223년)
성씨 이(李)
준욱(遵頊)
생몰기간 1163년 ~ 1226년 (63세)
재위기간 1211년 8월 12일 ~ 1223년 2월 (12년)

1. 개요2. 생애
2.1. 즉위 이전 황족 시절2.2. 환영받지 못한 황제
3. 그의 사후

1. 개요

서하의 제8대 황제. 묘호는 신종(神宗), 시호는 영문황제(英文皇帝). 휘는 이준욱(李遵頊). 연호는 광정(光定)이다. 가족관계로는 할아버지가 월왕(越王) 이인우(李仁友)였고, 부친이 제국충무왕(齊國忠武王) 이언종(李彥宗)이었다. 숙부가 양종이긴 한데. 이준욱 자신이 조카임에도 불구하고 숙부인 양종 이안전보다 나이가 7살 더 많았다.

2. 생애

2.1. 즉위 이전 황족 시절

1163년에 태어났다. 그 동안 평범한 서하의 황족이었으나, 1203년에 부친으로부터 제국충무왕(齊國忠武王)의 작위를 물려받았다.

신종은 특이한 면이 있는데, 중국 역대 왕조들의 황제들 중 유일하게 과거에 급제한 인물이었다. 1203년 본 과거에서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다.

1210년 쯤, 당시 황제였던 숙부 양종이 금나라에 대해 강경한 외교정책을 펼치고, 몽골 제국에게는 패배하여 복속당한 뒤 황녀[1]와 공물을 넘긴 것에 대하여 큰 불만을 갖고, 황제에게 언성을 몇 차례 높였다. 결국 1211년, 그 불만을 더 이상 참지 못하여 쿠데타를 일으켰다.

2.2. 환영받지 못한 황제

1211년, 금나라와의 전쟁을 도모하고 있었던 양종을 폐위시키고 황제로 즉위했다. 그리고 양종은 폐위된지 한 달 만에 죽었다.

호라즘 원정에 앞서 몽골은 서하에게 병력 제공을 요구했으나, 서하의 재상 야사 감푸는 당시 황제이던 신종에게 "저들이 혼자 호라즘을 상대할 여력이 없으니 병력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간언했고 신종 자신이 무엇보다 몽골과 서하의 굴욕적인 관계를 청산하고 싶어했다.

서하는 견디다 못해 출병을 거절했다. 그러자 몽골은 1217년 군사를 일으켜 서하를 공격했다(제4차 몽골의 서하 침공). 1218년 1월, 신종은 포위된 중흥부를 빠져나와 서량으로 도주했다. 이에 몽골군이 회군했다.

1223년, 신종은 여러 신하들의 반대로 물러나면서 제위를 둘째 아들 이덕왕(李德旺)에게 물려주었는데 그가 바로 헌종이었다.

1226년, 신종이 64세의 나이로 붕어했다.

3. 그의 사후

오래 가지 않아 서하는 멸망했고, 탕구트인들도 대학살을 당하는 수모를 겪고 말았다. 몽골에 대한 지나친 강경책으로 인해, 국가의 멸망과 탕구트인들의 멸족을 불러 일으킨 가장 큰 원흉으로 지목된다. 양종도 실정을 했으나, 국가와 민족의 안녕을 위하여 나름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신종은 그걸 굴욕으로 받아들이는 현명하지 못한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국 잔혹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1] 몽골로 끌려간 양종의 딸인 황녀는 신종과는 사촌남매 지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