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단장에 취임하기 위해
마르세유에서 로드스 섬으로 출발하였지만, 니스 앞바다에서 배 1척이 불타거나 기함인
성모 마리아 호가 번개에 맞아 9명이 죽는 사고를 당했다. 또한 폭풍으로 배가 파손되어
시라쿠사로 향했다가
투르크족
해적인 쿠르트울루가 해역을 휘젓고 다니자 밤에 항구를 빠져나와 고생을 하면서 로도스 섬에 도착하여 1521년에 기사단장에 취임하였다.
1521년 9월 10일에
오스만 제국의 술탄인
쉴레이만 1세가 협박 편지를 보내자 오스만에 대한 대비를 하였으며, 1522년 4월에는 밀을 수확하거나 도시 외곽의 차폐물을 제거하여 불을 놓으면서 항구 어귀에 쇠사슬을 설치했다. 6월 10일에 쉴레이만 1세의 협박 편지를 다시 받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준비하였으며, 6월 16일에 오스만 군대가 진군하기 시작하여 7월 28일에 로도스 섬이 공격받자 오스만을 상대로 맞서 싸웠다.
오스만 군을 상대로 싸우면서 지연 작전을 하기 위해 2주간 협상을 시도했지만, 12월 20일에 항복하면서 로도스 섬을 떠나
지중해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여
유럽의 군주들을 찾아가 "성전을 계속할 수 있는 근거지를 마련해달라"는 청원을 하였으며, 그 와중에
헨리 8세에게 지원을 받아 대포를 제공받았지만 근거지를 마련하지 못했다. 결국 1530년에
카를 5세에게 바르바리 해안가에 있는 트리폴리의 요새를 방어해주면서 1년마다
모든성인대축일에 매 1마리를 바치는 것을 조건으로 몰타 섬, 고초 섬, 코미노 섬을 제공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