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오도넬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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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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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92 · 1993-94 | |||
베스트팀 | ||||
스코틀랜드의 前 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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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 이름 |
<colbgcolor=#ffffff,#191919> 필 오도넬 Phil O'Donne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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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필립 오도넬 Philip O'Donne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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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2년 3월 25일 | |
스코틀랜드 벨실 | ||
사망 | 2007년 12월 29일 (향년 35세) | |
스코틀랜드 위쇼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스코틀랜드|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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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조건 | 178cm | |
포지션 | 중앙 미드필더 | |
소속팀 |
머더웰 FC (1990~1994) 셀틱 FC (1994~1999) 셰필드 웬즈데이 FC (1999~2003) 머더웰 FC (2004~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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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 1경기 ( 스코틀랜드 / 19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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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코틀랜드 국적의 전 축구선수. 2007년 12월 29일, 던디 유나이티드 FC와의 리그 경기 도중 심장마비로 쓰러져 사망했다.2. 클럽 경력
2.1. 머더웰 FC 1기
1972년 3월 25일, 벨실에서 태어난 오도넬은 머더웰의 홈구장인 퍼 파크와 몇 마일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태어났다. 그는 지역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1990-91 시즌 세인트 미렌과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곧 팀의 주전 멤버가 되었다. 그는 해당 시즌 말에 열린 던디 유나이티드와의 스코티시컵 결승에서 헤더로 골을 넣었다. 팀은 이날 4:3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레인저스의 간판 공격수였던 앨리 맥코이스트는 오도넬에게 "마치 사자와 같았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맹활약했다. 이 우승으로 다음 시즌에 머더웰은 유럽대항전에 진출했고, 오도넬은 당시 구단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유럽대항전에 출전한 선수가 되었다.그는 1992년과 1994년에 PFA 스코틀랜드가 선정하는 올해의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했고, 1993년 9월 8일에 열린 스코틀랜드와 스위스와의 친선경기에서 교체출전해 15분간 그라운드를 누비며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르기도 했다. 그리고 1994년 9월, 셀틱이 오도넬의 영입을 위해 175만 파운드를 제시했고, 오도넬은 셀틱 선수가 되었다. 이 금액은 당시 머더웰 역사상 가장 비싼 금액으로 매각된 선수였고, 2020년에 데이비드 턴불이 셀틱으로 이적하면서 이 기록이 깨졌다.
2.2. 셀틱 FC
오도넬은 셀틱 이적 후 치른 파틱 시슬과의 데뷔전에서 두 골을 기록하며 센세이션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해당 시즌에 스코티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1997-98 시즌에는 그의 커리어 유일한 리그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러나 부상으로 인해 기량이 하락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한정된 기회를 받게 되었다. 또한 재계약에 실패하며 팀을 떠나게 되었다.2.3. 셰필드 웬즈데이 FC
셀틱에서 방출된 후 자유계약 신분이 된 오도넬은 셰필드 웬즈데이에 입단했다. 그리고 얼마 뒤인 1999년 9월 11일, 에버튼과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나 계속된 부상이 그의 커리어를 발목잡게 되었고, 이적한 첫 시즌에 단 한 경기 밖에 치르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소속팀은 2부 리그로 강등되고 말았다. 그는 셰필드 웬즈데이에 있던 4시즌 동안 고작 25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고 1골 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유계약 신분이 된 마지막 시즌에 팀은 3부 리그까지 강등되고 말았다.2.4. 머더웰 FC 2기
한동안 소속팀이 없던 오도넬은 다시 한 번 재기를 하기 위해 2004년 1월에 그의 친정팀이었던 머더웰로 다시 돌아왔다. 이적 후 많은 기회를 받았던 오도넬은 그의 조카인 데이비드 클락슨과 함께 많은 경기에 나왔고, "엉클 필(Uncle Phil)"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또한 또 다른 조카였던 브라이언 뎀프시라는 선수도 당시에 함께 머더웰에서 활약했다. 머더웰 복귀 후 두번째 시즌에는 스코티시 리그컵 결승에 오르는 성과를 올렸다. 팀은 아쉽게도 레인저스에게 1:5로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물었다. 그리고 다음 시즌인 2006-07 시즌에는 팀의 주장직을 수행하게 되었다.3. 사망
2007년 12월 29일, 던디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오도넬은 교체출전했다. 그는 투입 후 5분 가량은 문제 없이 그라운드를 누볐다. 하지만 갑자기 오도넬은 그라운드에 쓰러졌고, 양팀의 의료진이 모두 오도넬에게 향했다. 이후 엠뷸런스를 타고 위쇼 제너럴 병원에 도착했지만 17시 18분에 사망 선고를 받고 말았다. 당시 그의 나이는 고작 35세였다.그가 사망한 후 얼마 뒤인 2008년 1월 1일, 부검 결과 좌심실부전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의 장례식은 1월 4일, 해밀턴에 위치한 세인트 메리스 교회에서 진행되었고, 벤트 공동묘지에 안치되었다.
그는 당시 와이프와 12살, 10살, 6살, 4살인 자식들이 있었다.
또한 오도넬 사망 몇 개월 전인 8월 28일에 세비야의 안토니오 푸에르타 역시 심장마비로 사망했기 때문에 당시 축구계는 큰 충격을 받았다.
4. 수상
4.1. 대회 기록
- 셀틱 FC (1994~1999)
- 스코티시 프리미어 디비전: 1997-98
- 스코티시컵: 1994-95
4.2. 개인 수상
- PFA 스코틀랜드 올해의 영플레이어: 1991-92, 199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