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코피예프의 협주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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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로코피예프의 첫번째 피아노 협주곡이며 1912년 모스크바에서 초연되었다.작곡가 자신은 이 초연에 대해 매우 만족스러워했다고.
2. 작곡과정 및 초연
프로코피예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학생시절인 1911년에 이 곡을 작곡했고 이듬해 7월 프로코피예프 본인의 피아노와 콘스탄틴 사라졔프(Konstantin Saradzhev)의 지휘로 초연했다. 초연 후 악보를 일부 보완해서 자신의 음악원 스승이었던 니콜라이 체레프닌(Nikolai Tcherepnin)에게 헌정했다.프로코피예프는 1914년에 이 곡을 연주해서 안톤 루빈스타인 상을 탔다. 그는 기존의 협주곡을 연주해서는 상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예 새 협주곡을 만들면 심사위원들이 난이도를 판가름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 것. 프로코피예프는 심사 규정을 충족시키기 위해 악보를 20보 출판하기도 했으며 이런 노력 끝에 결국 상을 타내고 만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글라주노프는 이 곡과 프로코피예프를 탐탁지 않아 했지만, 결국 상을 수여했다고 한다.[1]
3. 곡의 형태
전체 연주시간이 대략 14~15분 정도 되고 피아노 소나타 1번처럼 단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크게 3개의 섹션으로 나눌 수 있다. 그래서 현재는 짧은 3개의 악장으로 구분해서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첫 섹션(알레그로 브리오소)은 Db장조로 오케스트라가 웅장하고 힘차게 주제를 제시하면서 시작하고 이어 피아노가 주제를 이어받는다. 주제는 섹션 전체를 통해 반복되는데, 프로코피예프 본인의 설명에 따르면 나름 인상적인 이 주제는 13세에 작곡한 습작 피아노곡에서 취했다고 한다. 현과 금관악기가 강하게 주제를 제시한 후 본격적으로 토카타 스타일의 피아노 연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중간에 메노 모소 지시 부호가 붙어 있는 부분부터 느리고 서정적인 분위기로 바뀌고 현과 피아노가 조용하게 연주하다가 30초 가량 피아노의 카덴차가 이어진 후 다시 빠르고 활기찬 분위기로 전환된다.
두번째 섹션(안단테 아사이)은 강렬한 첫번째 섹션과 달리 g# 단조의 우아한 녹턴풍의 주제를 갖고 있으며 제1바이올린과 클라리넷이 주제의 선율을 연주하고 4마디 차이로 피아노가 이 선율을 받아서 연주를 시작한다. 이 선율이 처음에는 고음부에서 등장하고 두 번째는 중음부에서 등장하며 마지막으로 파곳, 트롬본등의 저음역 악기들이 이 선율을 모방해 나간다. 이어서 바이올린과 비올라로 선율을 이어받고, 피아노가 이어받고 다시 플루트와 클라리넷, 파곳이 고음부에서 선율을 연주한다. 오케스트라의 반주는 점점 약해지고 피아노가 아르페지오로 선율을 연주하면서 조용히 끝낸다.
세 번째 섹션(알레그로 스케르잔도)은 피아노 외에도 금관악기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호른과 튜바가 조용하게 스타카토 화음을 내기 시작하며 이어 피아노가 연습곡 풍의 반음계적인 선율을 연주한다. 이어서 트롬본과 호른이 제2주제를 서로 계속 연주하다가 독주 피아노의 연주로 옮겨진다. 피아노의 카덴차를 거친 후에 다시 Db장조의 힘찬 멜로디로 돌아오고, 마지막에는 첫 섹션의 주제가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에서 동시에 힘차게 재현되면서 끝난다.
4. 평가 및 연주
현재 이 1번 협주곡은 왼손을 위한 협주곡인 4번과 더불어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는 그리 자주 연주되지 않는 편에 속하지만 작곡가 본인에게는 매우 중요한 곡인데, 이 협주곡 덕분에 작곡가 프로코피예프가 본격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프로코피예프 스스로도 이 곡에 상당한 자부심을 드러냈으며 훗날 자신의 회고록에서는 이 곡에 대해 '악상과 표현이 모두 성숙의 경지에 오른 첫번째 곡'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그의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 가장 규모가 작으며 복잡한 전개를 가진 작품은 아니지만, 나름 아기자기한 구성을 갖고 있으며 프로코피예프 특유의 토카타 풍의 피아노 주법이 제대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들어볼만한 가치가 있다.초연 당시에는 대담한 화성, 불협화음, 반음계적 성향 등 그 당시 기준으로 진보적인 수법을 많이 차용했기 때문에 당연히 찬반이 엇갈렸다. 젊은 음악가의 패기와 열정이 돋보이는 문제작이라는 평가가 있었던 반면 '조잡한 작법과 거슬리는 소리가 청중들을 피곤하게 할 것'이라는 악평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논란은 결과적으로 신예 작곡가의 프로코피예프의 인지도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프로코피예프 본인도 이미 예상했던 듯 악평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으며 오히려 2번 협주곡에서는 한층 더 도발적이고 대담한 수법을 사용하면서 자신의 반골성향을 제대로 입증했다.
당시에는 논란이 있었지만 현재 관점에서 보면 젊은 시절 프로코피예프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오히려 무난한 편인데, 아무래도 음악원에서 주는 상을 받기 위해 쓴 작품이기 때문에 무작정 똘끼 넘치는 곡을 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협주곡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피아노 파트의 난이도 문제인데, 이 1번 협주곡은 극악의 난이도로 악명 높은 2번과 3번에 비해서는 그나마 무난한 편에 속한다. 카덴차에 까다로운 부분이 몇군데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관점에서 어렵지 않다는 것이지 아마추어급 연주자도 쉽게 칠 수 있는 곡은 당연히 아니다.
[1]
글라주노프 항목에 있듯이 그는 매우 보수적인 성향의 음악가였다. 때문에 당시 기준으로 꽤 급진적이었던 프로코피예프의 작풍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