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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돗물 사태를 담은 2016년 1월 21일자 TIME지 표지 |
미국 플린트시 지도 |
공공비 지출을 삭감하면 반드시 어딘가에서 대가가 나타난다.(Public cuts bring price to pay somewhere.)
— 제레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 언론 인터뷰
Flint water crisis— 제레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 언론 인터뷰
1. 개요
2014년 미국 미시간주 플린트(Flint)시가 한화 약 57억 원 남짓을 아끼기 위해 상수도 공급원을 바꿨다가 수돗물에 납이 섞여 납 중독 피해자가 10만 명 남짓 생긴 환경재난.2. 발단
2.1. 경제 불황으로 인한 재정 감소
원래 미시간주는 자동차 공업의 메카였으나 미국 자동차 산업이 망하고 GM이 공장을 폐쇄하자 직격타를 맞고 주 전체의 경제가 폭삭 망했다. 이런 경제불황을 겪는 대표적인 도시가 원래 자동차 공장이 있던 디트로이트시와 그 옆의 공업도시 플린트시였다.[1] 이 도시들의 경제상황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슬럼가 처리를 들 수 있다. 사람들이 경제사정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고 집을 버리고 떠나는 일이 잇따라 거리가 슬럼화되자 범죄에 악용되는 등 온갖 문제가 발생하였으나 복구는 엄두도 못 내고 유지비용을 줄여 타 지역에 제공하는 필수 서비스라도 유지하려고 세금을 들여서 문제가 된 거리를 아예 밀어버렸다.2.2. 릭 스나이더 주지사 취임
원래 미시건주는 1990년 재정위기관리 제도(financial emergency procedure)의 근거가 되는 법을 제정하고 하부 지자체에 재정위기가 닥쳤을 경우에 주 정부가 비상재정관리인(emergency financial manager)을 파견할 수 있도록 하였다.2011년 헬게이트가 열린 미시간주에 공화당 소속이자 전직 회계사인 릭 스나이더(Rick Snyder)가 주지사로 취임했다. 스나이더는 더 이상 디트로이트처럼 파산하는 도시가 나오게 할 순 없으므로 방만하게 재정을 운용하는 지방자치단체를 단속하겠다고 하면서 기존 재정위기관리제도를 더욱 강화한 새 법을 입법하였다. 새 법은 비상재정관리인에게 부여한 권한이 매우 강력해서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지방자치를 중시하는 미국의 정치 풍토상 비상재정관리인의 권한이 지나쳤기에 반발이 심하여[2] 결국 주민투표까지 시행해서 2012년에 법을 무효화시켰다. 그러나 스나이더 주지사는 디트로이트시를 겨냥해서 동년에 세 번째 법을 입법하고 주민투표 대상이 안 되도록 조치하여 끝내 관철시켰다.
2012년 제정한 법률에 따라 선임된 비상재정관리인들이 플린트시에서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다.
3. 전개
3.1. 디트로이트의 수도료 인상
비상재정관리인들이 플린트시의 방만한 재정을 관리하겠다고 손 댄 것 중에 상수도가 있었다. 플린트시는 원래 디트로이트시와 30년 계약을 맺고 디트로이트가 휴런 호에서 취수한 상수도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디트로이트시가 돈이 곤궁하다고 사용료를 올려 버리자 마찬가지로 재정적자 상태인 플린트시에 심각한 부담이 되었다.이에 플린트시는 비싼 사용료 내고 쓰느니 어차피 휴런 호가 멀지 않으니 어떻게든 없는 돈이라도 쥐어짜서 자신들이 직접 휴런 호에 파이프를 연결하여 자체취수하기로 결정했다. 혹 때려다 혹 붙인 격이 된 디트로이트시는 어떻게든 이를 막아보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플린트시는 결국 2015년 말에서 2016년 초부터 자체취수를 하기로 하고 파이프 건설을 시작했다. 할 수 없이 디트로이트시는 30년 계약 이후 투자한 돈을 요구하고 앞으로 1년 동안만 물을 공급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따라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플린트시가 자체 취수를 시작하는 시점은 디트로이트시가 상수도 공급을 끝내고도 1-2년 뒤였다. 그 사이 기간 동안 물을 끌어쓰려면 5백만 달러가 필요하다고 추정하였다. 돈 아끼기 위해 하는 짓인데 하고 나니 생돈 나가게 생기자 비상재정관리인은 어차피 한두 해만 버티면 되니 그냥 임시정수장을 만들어서 시내에 있는 플린트 강에서 물을 끌어다 쓰자고 제안했다.
3.2. 문제의 시작
그런데 문제는 플린트 강이 상수원으로 쓰기에 적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14년 4월 플린트 시가 디트로이트에서 플린트 강으로 상수원을 전환하자마자 각종 문제가 터졌다. 물에서 악취가 나는 정도는 기본이고 물이 변색되거나, 집단 레지오넬라균 중독 사태가 일어나거나, 대학/병원/공장에서 기기가 부식되고 고장나는 사례가 급증했다. 플린트강은 수질도 수질이지만 산성도가 높아서 상수원으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으며 이는 상수원 전환 이전부터 지적받은 사항이었다.여기서 잘 알려지지 않은 충공깽한 사실이 있는데 GM[3]은 플린트 강이 상수원으로 바뀐 후 공장에서 생산된 자동차에서 엔진 부식이 계속 발견되자 플린트 강 물을 공업용수로 사용하는 걸 중단하고 휴런 호의 물을 받아서 사용했다. 문제는 이걸 공론화하지 않고 그대로 냅둔 것. 결국 '공업용수로도 못 쓰는 물'을 플린트 시민들은 마신 것이다.
플린트시도 수질이 이렇다 보니 염소를 더 첨가해서 살균하였으나 이 와중에 염소 관련 부산물로 발암물질 트리할로메탄이 발생해 연방환경청(EPA)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하지만 미시간 주에서는 문제가 있었으나 해결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또 연방환경청은 산성 물을 쓰면 철 상수도관과 납 상수도관이 부식되고[4] 집 안 상수도관 이음매에 사용하는 납이 수돗물에 용출될 수 있으니 물의 산성도를 낮추기 위해 부식방지제를 넣으라고 권고했지만 미시간 환경청에서는 아직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고 부식방지제를 넣으면 하루에 100달러씩 추가 비용이 발생하니 비싼 돈을 들여서 넣을 필요가 없다고 이 권고를 무시했다.
연방환경청에서는 납 성분이 검출된 것[5]을 근거로 재차 부식방지제를 투입하라고 권고했지만 미시간 주 환경청은 자체 조사결과에서 납 수치가 기준치 미만이라는 점[6], 정확한 부식방지제 투입량을 산출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 주 정부의 독립성을 이유로 들며 이를 거부했다.
3.3. 미시간 주의 꼼수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있던 것이 미시간 주의 검사 결과 자체에는 큰 결함이 있었다. 미시간 주의 검사결과는 규칙상 제외한 두 샘플을 제외하면 납 수치가 기준치 미만이었다. 두 샘플을 제외한 이유는 '수도꼭지에 필터가 붙어 있어서', '가정이 아닌 식당 주방의 수도여서'였다.문제는 필터를 장착했기에 제외한 샘플이 수도관을 가장 오래 통과해서 최악의 상황을 가정(worst-case scenario)한 샘플이라는 것이다. 필터를 장착하면 실제보다 오염치가 낮게 나와 검사 결과를 왜곡시킬 수 있기에 집계에서 제외시킴이 규정이었지만 해당 샘플의 실제 검사 결과는 필터로 오염치가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기준치를 훌쩍 넘었다. 즉, 상황을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해 만들어준 규칙을 상황을 왜곡하기 위해 사용한 것.
게다가 나중에 조사로 드러난 사실은 해당 샘플조차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미시간 주 환경청은 어디에 납 수도관이 매설되었는지도 모르면서 검사대상을 선정하였다.
3.4. 미시간 주 정부의 막장 대응
이런 식으로 미시간주와 EPA가 핑퐁 게임으로 아웅다웅하는 사이 수돗물에 대한 주민의 불만이 급증하고 큰 기관(대학/병원/공장)에서는 수돗물을 안 쓰고 디트로이트로부터 직접 용수를 공급해 사용하였다. 그러나 미시간주 정부는 검사결과를 근거로 수돗물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물을 끓어먹으라는 답변만 앵무새처럼 반복하였다. 심지어 이 기간에 주지사가 쓴 이메일을 보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주민들이 생트집을 잡는다는 식이었다.플린트 시장도 지역방송사의 아침 뉴스에 나와서 직접 물을 시음(...)하셨다. 주민들이 화가 나자 플린트 시의회에서 다시 디트로이트시에서 물을 사오자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으나 비상재정관리인이 재정 절감이 더 중요하다면서 결의안을 거부해 버렸다.
3.5. 드러난 문제점
단순히 짐작으로만 알려진 문제점은 현장에서 일하던 의사들의 손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현장에서 일하던 의사들이 유아들에게 발진 등 피부 질환이 급증하자 수상하게 생각하여 개인적으로 데이터를 조사한 결과[7] 상수원 교체 전후 대비 아이들 혈중 납 수치가 2~3배 증가했음을 확인하였다. 역설적으로 연방정부 차원에서 납 중독을 염려하여 기초생활수급 가정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납 검사를 의무화했기 때문에 데이터를 산출할 수 있었다.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민간 전문가들이 수질검사를 다시 하였는데 결과는 상상을 초월했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미시간 주의 주장과 달리 수돗물 샘플들의 납 수치는 기준치를 1000배 이상 초과했다. 민간 전문가는 이를 토대로 다시 미시간 환경청에 문의했지만 미시간 환경청은 끓여 마시면 문제 없다고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답변을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었다. 당연하지만 납은 물을 끓이는 정도로 제거할 수 있는 물질이 아니다. 이런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처사에 분노하여 주민들이 몇 달 동안 재차 수질검사를 하고 정보공개청구 운동을 하자[8] 그제서야 마지못해 수돗물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했다.
4. 결과
2015년 12월 16일 플린트시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2016년 1월 5일에는 미시간주 전체로 비상사태가 확대되었다. 아이들 3천 명이 납 중독 판정을 받았는데 당시 납 중독으로 의심되는 환자만 10만 명, 그 중 영유아는 1-2만 명이었다. 아직 현대 의학기술로는 납 때문에 망가진 신경을 다시 복구할 수 없다.주지사 릭 스나이더는 2016년 9월에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미시간의 카트리나"라면서 책임회피를 시전했지만 " 부시는 최소한 카트리나를 만들어내지는 않았다"면서 온갖 욕을 다 먹었다. 게다가 주지사의 이메일이 공개됨에 따라 가난한 흑인이 피해자라 문제 해결을 회피하지 않았느냐는 정치 쟁점으로까지 번졌다.
결국 더 이상 미적거릴 수 없어진 플린트 시가 플린트강 취수를 중단하고 다시 디트로이트시에서 용수를 받게 되었지만 수돗물에 포함된 납 수치가 낮아지지 않았다. 몇십 년간 부식방지제(미네랄 성분)와 알칼리성 물을 사용해 수도관을 스케일로 코팅했기에 문제가 없었던 건데 그 스케일링이 플린트 강물에 몽땅 녹아 버렸으므로 이제 와서 평범한 물을 쓴다고 해결될 단계를 넘어가 버린 것.
플린트시는 사태 해결을 위해 주정부에 지원금 5천만 달러를 요청했고 이 중 4500만 달러를 들여 문제가 된 납 수도관 1만 5천여 개를 대체하는 공사를 할 계획을 세웠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8천만 달러[9]를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게다가 납 중독 판정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치료비와 피해 배상비에 공사가 끝날 때까지 거주불능 상황에 빠질 플린트시까지 생각하면... 그야말로 헬게이트.
이 사태의 원인 제공자인 미시간주 주지사를 상대로 주민투표가 발의되었다. #
스나이더 주지사는 자신이 한 달간 필터로 정화한 플린트시 수돗물을 마셔서 필터 정수가 안전함을 증명하겠다며 어그로를 끌었다. #
미시간주 검찰이 관련자들을 기소했다. 먼저 관련자 3명을 기소했다. # 향후 기소될 관련자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생겼다.
그런데 플린트시에 위문차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도 필터로 거른 물은 안전하다면서 본인이 시음하는 모습을 공개하였다. #
하지만 이는 영상( 1, 2)들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입술에 겨우 가져다 대는 수준으로 사실상 정치쇼였다. 마이클 무어는 자신의 다큐 화씨 11/9에서 해당 사건이 미시간주의 히스패닉들이 민주당에 등을 돌리게 해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며 오바마의 행동을 비판했다.
연방정부가 납 성분을 거른다고 공인한 수도꼭지에 직접 연결하는 직수형 필터를 각 가정마다 공급하고 필터 교환을 못 하는 저소득층을 위해서 필터도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수돗물 거부가 너무 강해서 세탁하는 물마저도 생수를 사서 할 정도였다. 플린트시 전역의 납 수도관을 PVC관으로 교체하는 사업을 연방 및 주정부 예산으로 진행했지만 예산과 인원이 한정되어 2017년 상반기 기준으로 전체 납 수도관을 PVC관으로 교체하기엔 몇 년이 더 소요될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2019년 6월 13일 미시간 주 검찰이 기존에 기소한 8명의 기소를 취하했다. 기존 수사부가 입수 가능한 모든 증거를 활용하지 않았다며 수사를 원점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사건으로 기소당한 사람 중 가장 고위직인 미시간주 보건부 장관도 이 취하 대상에 포함되었다. #
2020년 8월에 주민들에게 합의금 6억 달러를 지불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
2021년 1월 미시간 주 검찰이 그 동안의 재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릭 스나이더 당시 주지사를 기소할 방침이라고 보도되었다. 기사
수십만명이 환경재난에 노출되고 합의금 포함 7억달러의 재정을 손실시킨 이 난리가 전부 고작 57억 원(500만 달러)을 아끼기 위해서 벌어진 일이다.
5. 같이 보기
[1]
디트로이트가 '자동차 산업의 메카'라고 불릴 만큼 더 크고 유명한 도시인 만큼 악명도 높지만 사실은 이 동네의 치안이 더욱 끔찍하다. 오죽하면
네이비 씰이 이 곳에서 훈련을 하는데, 도시의 이미지가 전쟁 후의 폐허가 된 지역과 딱 맞아서라고 한다.
[2]
이 경우 비상재정관리인이 지자체에서 개판을 쳐도 주지사가 임명했기에 주민소환이나 투표 같은 견제책을 쓸 수 없으므로 주민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3]
릭 스나이더에게 미시간 주지사 선거 때 가장 많은 선거자금을 대준 기업이다.
[4]
오래된 상수도관 중 각 가정으로 들어가는 서비스 라인은 납 수도관을 사용했는데 이것을 바꾸자니 비싸고 놔두자니 문제가 되기 때문에 납 중독을 피하고자 상수도관 내부를 부식방지제로 코팅했다. 하지만 산성 물이 통과하여 코팅이 벗겨지면서 철 상수도관에서는 녹물이, 납 상수도관에서는 납이 용출되기 시작했는데 여기다 물을 살균하겠다고 염소 등을 추가로 첨가하면서 부식 속도가 빨라졌다.
[5]
물론 이미 이 상황까지 온 시점에서는 의미가 없지만 노출이 더 심해지는 것을 막아야 하니까.
[6]
이게 말도 안되는게
EPA의 납 기준치는 0ppm, 즉 아에 검출되지 않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자체 기준을 만족한다고 얼렁뚱땅 넘겨버린거다.
[7]
이 문제를 처음 발견하고 자체조사 후 전미를 발칵 뒤집은 플린트시 Hurley Children's Hospital의
이라크계 미국인 의사 Mona Hanna-Attisha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출처 미시간주의 막장 대응을
사담 후세인의 막장성과 비교하는 부분이 압권이다.
[8]
이 과정에서 대략 18만 달러가 소요되었다.
[9]
2017년 6월 기준 한화로 907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