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arfix]
1. 개요
Friedrich Wilhelm Freiherr von Bülow, Graf von Dennewitz(1755년 2월 16일 ~ 1816년 2월 25일)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로이센 장성. 나폴레옹의 베를린 진군을 막았고, 라이프치히 전투와 워털루 전투에 참전했다.
2. 일생
2.1. 초기 경력
그의 가문인 뷔로 가문은 메클렌부르크 일대의 융커였다. 뷔로는 1755년에 팔켄베르크에서 태어났다. 그의 동생은 디트리히 하인리히 폰 뷔로 남작이었다.1768년 프로이센군에 입대한 그는 1772년 소위가 되었고, 1778년 바이에른 계승 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예술적으로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어서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에게 알려졌고, 베를린의 가장 뛰어난 사교모임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가 군사훈련을 게을리 한 건 아니었다.
2.2. 프랑스 혁명 전쟁과 나폴레옹 전쟁까지
그는 프랑스 혁명 초창기인 1792년 라인강 전역에 참전했다. 마인츠 공성전에서 두각을 드러낸 그는 1802년 아우어 대령의 딸과 결혼하여 자식을 보았으나 곧 자식들과 아내를 모두 떠나보내는 슬픔을 겪었다.1806년 예나 전투가 벌어진 해, 그의 연대는 나폴레옹을 공격하는 부대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전쟁 후반부 그는 다시 기용되었으며, 안톤 빌헬름 폰 레스토크 백작의 휘하에서 맹활약했다.
이후 게브하르트 레베레히트 폰 블뤼허 원수의 눈에 띄어 그의 여단장으로 복무하게 되었다. 프로이센의 재건을 두고 블뤼허와 마찰이 생겨 잠시 군직을 떠났으나, 다시 기용되었다.
2.3. 나폴레옹의 몰락
나폴레옹의 몰락이 시작되고, 1813년에 뷔로는 중장으로 승진했다.제6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당시 나폴레옹이 베를린으로 진격할 때 뷔로는 그로스베렌 전투에서 그를 저지했으며, 2차로 데네비츠 전투에서 완승을 거두며 나폴레옹을 좌절시켰다.
이 전투 후 그는 베를린을 지켜낸 프로이센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당시 스웨덴 국왕인 칼 14세 요한은 스웨덴 대십자훈장을 수여했으며, 프로이센 국왕에 의해 데네비츠 백작으로 임명되었다.
뷔로의 군단은 이후 라이프치히 전투에 참전해 나폴레옹을 격파하는 데 중요한 공훈을 세웠다. 이 공으로 나중에 대프랑스 동맹군 지휘관들이 영국에 방문할 때 같이 따라갈 수 있었다.
이후 워털루 전투 때는 블뤼허 원수의 4군단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나폴레옹의 측면을 무너뜨렸다.
이후 그는 프랑스 침공에 참가했지만 쾨니히스베르크 사령부로 돌아온 뒤 얼마 안 가 사망했다.
3. 여담
2019년에 이 문서가 새로 생성된 이래 2년동안 마리아 테레지아 휘하 오스트리아의 장군으로 서술된 흑역사가 있다(...) 사실 프로이센 출신에 프리드리히 대왕 시기 군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마리아 테레지아에겐 적 그 자체다.본 문서는 영문위키와 독일어 위키백과를 참조해 수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