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프로이센의 장성.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7년 전쟁에서 활동했다.2. 일생
게슬러는 1688년 6월 24일 동프로이센의 슈웨게로우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본래 스위스 태생으로, 아버지는 프로이센 기병대 대령인 콘라트 에른스트 폰 게슬러이며, 어머니는 에우프로시나 폰 로셀나우이다. 게슬러는 1703년 15세의 나이로 프로이센군에 입대하여 홀슈타인 보병 연대 소속으로서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처음 복무했다. 이후 게슬러는 오스트리아군에 입대하여 약 10년간 복무했고 1713년 프로이센으로 돌아와서 판네위츠 연대의 대위가 되었다. 1714년 1월 21일, 게슬러는 포르타유 연대 소령으로 진급했고, 1720년 5월 1일엔 중령으로 승진했으며, 1721년 8월 12일에는 슐렌베르크의 근위 연대 대령으로 진급했다. 1733년, 게슬러는 블란켄지 흉갑기병 연대 지휘관으로 임명되었고 1735년 10월 26일에 성 요한 기사단에 입대했으며, 1739년 7월 14일에 소령으로 진급했다.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이 발발한 1742년 5월 17일, 게슬러는 코투지츠 전투에 참가해 프로이센군의 승리에 기여했고, 일주일 후인 5월 24일 중장으로 승진했으며 붉은 독수리 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또한 게슬러는 1745년 6월 4일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에서 바이로이트 드래곤 부대를 이끌고 오스트리아군 20개 대대를 격파하고 67개의 깃발과 일보 대포를 나포했으며 2,500명의 적 병사들을 포로로 잡는 대성과를 거두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그의 대활약에 찬사를 보내며 그를 백작으로 봉하고 특별히 고유의 문장을 가지도록 허락했다. 이후 게슬러는 도주하는 작센군을 추격해 루사티아 국경까지 진군했다. 이후 그는 할레 근방에 있는 모리츠 폰 안할트-데사우의 군대와 합세했고, 11월에 라이프치히와 메이센을 향해 행진하는 군대의 선봉 부대를 지휘했다.
1745년 12월 15일, 게슬러는 케셀스도르프 전투에서 우익 기병대를 지휘하여 작센군을 격파하는 데 크게 기여했고, 작센은 이 여파로 프로이센와 평화 협약을 체결하고 전쟁에서 이탈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역시 작센의 이탈로 더이상 전쟁을 이어가봐야 무익하다고 판단해 프리드리히 대왕이 슐레지엔을 점유하는 것을 허용했다. 이후 게슬러는 1747년 5월 26일 기병대 대장으로 진급했으며, 1751년 12월 21일에는 1,000탈러의 특별 급료를 받으며 야전군 원수로 승진했다.
1756년 7년 전쟁이 발발하자, 게슬러는 프로이센군의 작센 침공 작전에 참가했다. 10월 1일 로보지츠 전투에서 프로이센 기병대를 지휘한 그는 기병 공격에 적합하지 않은 지형 때문에 고전했지만 가까스로 오스트리아 기병대를 물리쳤다. 이후 1757년에 고령의 나이 때문에 현역에서 은퇴한 그는 1758년 1월 10일부터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 연금을 수령했다. 이후 게슬러는 말년을 조용히 보내다가 1762년 8월 22일 브리즈에서 사망했다. 향년 74세. 그의 시신은 성 니콜라이 교회에 묻혔다.
게슬러는 시구트-스타니슬라프스키 백작부인 안나 엘레노어와 결혼해 12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 중 세 아들은 프로이센군에 복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