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11 16:15:24

풍신뇌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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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여러 버전들3. 대중매체에서

1. 개요

[ruby(風神雷神図, ruby=ふうじんらいじんず)]

전설상의 풍신 뇌신을 묘사한 병풍 그림. 오른쪽이 풍신, 왼쪽이 뇌신이다. 일본 근세 회화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각각 풍신과 뇌신을 그린 2폭짜리 병풍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17세기 전반 다와라야 소타츠가 남긴 것이 대표작인데, 후대에 다른 화가들이 모방하여 그렸다.

풍신과 뇌신을 함께 묘사한 미술은 중국에서 처음 시작되었으며, 11~12세기경에는 일본에도 나타났다. 한국에는 뇌신을 그린 회화는 여럿 남아 있지만 풍신과 함께 있는 작품은 드물다. 흥천사 감로도는 1930년대 그려진 우리나라 불화인데, 일본의 풍신뇌신도에 영향을 받은 풍신과 뇌신이 그려져 있다.

2. 여러 버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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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부터 소타츠, 고린, 호이츠의 작품
  • 다와라야 소타츠(俵屋宗達): 풍신과 뇌신의 그림은 예전부터 많았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는 풍신뇌신도를 처음 그린 것은 다와라야 소타츠다. 소타츠는 교토 묘코지(妙光寺)의 의뢰를 받아 그렸는데, 나중에 묘코지 주지가 겐닌지(建仁寺)로 옮기면서 그림도 가져갔다. 지금은 겐닌지에서 교토국립박물관에 기탁해 보관 중. 소타츠는 기타노텐만구에 있던 기타노텐진엔기에마키(北野天神縁起絵巻)[1]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금박을 입힌 배경에 역동적인 포즈의 신들이 긴장감 있는 구도로 그려진 걸작으로 국보 미술품 43호이다. 부채꼴 모양의 구도는 소타츠가 직물 공장에서 부채 도안을 하던 것의 영향으로 본다.
  • 오가타 고린(尾形光琳): 에도 시대를 풍미한 미술 유파인 린파(琳派)의 창시자. 고린은 소타츠의 그림이 묘코지에 있던 시절 이 그림을 접한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의 가치를 단번에 알아본 고린은 절을 밥먹듯 드나들며 그림에 빠져들었다. 결국 고린은 자기 버전의 풍신뇌신도를 그리게 되는데, 그래도 후대의 평은 '원작 만한 속편 없다'. 고린의 그림은 소타츠의 것과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배경의 강렬한 금색이 줄어들고 신들의 인상이 부드러워졌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사카이 호이츠(酒井抱一): 사카이 호이츠는 소타츠의 그림은 보지 못하고 고린의 작품을 모방해 그렸다.[2] 호이츠의 풍신뇌신도는 모방이 거듭된 결과 원래 그림과는 디테일에서 더 많은 차이를 보인다. 고린의 작품보다 분위기가 더 온화하고 친근해진 것이 특징.

오늘날 풍신뇌신도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타츠의 작품을 떠올린다. 오마주 패러디 역시 이 버전 대상이 많다. 험상궂은 풍신과 뇌신 역시 모에화 피하지 못했으며[3], 쌍벽을 이루는 캐릭터들을 등장시킨 새로운 버전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 ## ###

슈퍼 마리오 시리즈 30주년을 맞아 마리오 버전으로 그려진 적이 있다. 기사

요즘은 ICOCA에도 등장.

동물의 숲 시리즈에서도 '혼란스러운 명화'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왼쪽과 오른쪽 두 개로 나뉘어있다. 가품도 존재하는데, 가품은 풍신과 뇌신의 몸 색상이 반대로 되어 뇌신 쪽이 검은색, 풍신 쪽이 흰색으로 나온다.

3. 대중매체에서



[1] 기타노텐만구의 유래와 전해져 오는 이야기 등을 그린 화첩. [2] 사카이 호이츠는 오가타 고린의 작품에 심취해 고린 사후 100주기를 기념하고 고린의 작품을 모은 화첩을 만드는가 하면, 그의 묘비까지 세워주었다. 오가타 고린이 그린 풍신뇌신도 병풍 뒷면에 심혈을 기울여 자신의 역작 풍우초화도(風雨草花図)를 남겼을 정도. [3] 나리타 국제공항 제2터미널 면세점에 있는 1:1 사이즈 피규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