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유형문화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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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봉산동석불좌상 | 풍수원성당 | 원주비두리귀부및이수 |
천주교 원주교구 횡성지구 천주교 풍수원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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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 서원면 경강로유현1길 30 |
주보성인 | 예수 성심 |
주임신부 | 손용환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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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 서원면에 있는 성당이다.대한민국에서 서울 약현성당, 완주 되재성당(6.25 전쟁으로 파괴되어 나중에 다시 지음),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 이어 4번째로 지어진 성당으로, 강원특별자치도에서 세워진 최초의 성당이자 한국인 신부가 지은 최초의 성당이다.
2. 역사
풍수원성당은 1801년 신유박해 이후 1802년 또는 1803년 무렵 경기도 용인에서 신태보(베드로)를 중심으로 40여 명의 신자들이 8일 동안 피난처를 찾아 헤매다가 정착한 곳으로, 한국 천주교 최초의 교우촌이다.풍수원 교우촌에서는 성직자 없이 신앙생활을 영위해 왔다. 이후 1866년( 고종 3년, 병인년) 교회 대박해( 병인박해)와 1871년(고종 8년) 신미양요 때 신자들이 피난처를 찾아 헤매던 중, 산간벽지로서 산림이 울창하여 관헌들의 눈을 피하기에 알맞는 곳이라, 신자들을 모아 한 촌락을 이루어 일부는 화전으로, 일부는 토기점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조선교구 제8대 교구장 프랑스인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 대주교가 1888년 6월 20일 이곳에 본당을 설립하고, 초대 주임신부로 프랑스 출신 르메르(Le Merre)이 신부가 부임하여 정식으로 교회가 설립되었다. 당시 풍수원성당은 춘천시, 화천군, 양구군, 홍천군, 원주시, 양평군 등 12개 지역을 관할하였으며 당시 신자 수는 약 2,000명이었고 초가집 20여간을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그 후 고종 33년(1896년) 2대 주임으로 정규하(아우구스티노, 1893∼1943) 신부가 부임하여 성당을 직접 설계하였고, 중국인 기술자 진 베드로와 함께 현재의 성당(벽돌 연와조 120평)을 1905년에 착공하고 1907년에 준공하여, 1909년 낙성식을 가졌다.
3. 건축 정보
건축 양식은 고딕 양식으로, 앞면에는 돌출한 종탑부가 있으며 출입구는 무지개 모양으로 개방되어 있다. 지붕은 두꺼운 동판을 깔았고, 내부에는 기둥들이 줄을 지어 있다.4. 횡성 풍수원성당 구 사제관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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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성당 | 횡성 풍수원성당 구 사제관 | 구 조선식산은행 원주지점 |
1910년대에 지어진 건축물로, 원형이 비교적 잘 유지된 벽돌 건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재 제163호(2005년 4월 15일 지정)로 지정되었다.
1912년 착공, 1913년 10월 1일 준공한 것으로 1998년 전시관으로 개조하여 외벽이 원형을 유지한 상태에서 창호, 바닥, 지붕의 교체가 있었으며, 1997년 수리 후 현재는 유물전시관으로 사용 중이다.
5. 기타
- 풍수원성당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성체현양대회가 매년 개최된다. 제1회 성체현양대회가 1920년에 실시된 이래 한국 전쟁으로 인해 건너 뛴 3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개최되었으며, 2023년에는 풍수원성당의 100번째 성체현양대회가 강원도의 양대 교구인 춘천, 원주교구의 공동 주관 형식으로 개최되었다.
- 과거에는 성당 내부에 의자가 없었으나, 현재는 의자를 비치하여 앉을 자리를 갖추었다.
- 주변에 와인딩 코스로 좋은 고갯길이 많아, 주말에 수도권에서 오는 오토바이 동호인들이나 자전거 동호인들이 가끔 인증샷을 찍으러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밖에서 떠드는 소리나 배기음 때문에 미사에 방해되는 경우가 있어, 성당 마당에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입장할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