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Tregedia de la puerta 12[1]Puerta 12 Tragedy
1968년 6월 23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엘 모누멘탈에서 열린 엘 수페르클라시코경기가 끝나고 일어난 대규모 압사 참사.
2. 사고 당시
당시 CA 보카 주니어스와 CA 리버 플레이트가 경기를 펼쳐졌다. 일요일이라 무려 8만여명에 달하는 관중들이 들어차 서로의 팀을 응원했다. 치열한 경기 끝에 두 팀 모두 점수를 획득하지 못하고 0-0으로 경기가 끝났다. 경기가 끝나자 사람들은 각자 가까운 출구로 향해 경기장에서 빠져나왔다. 그 중 12번 출구(Puerta 12)는 전구가 하나만 달린 어두운 출구였는데, 긴 복도를 걸어서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좁은 12번 출구로 모여들면서 병목현상이 일어났다. 병목현상이 일어나면서 점점 속도가 줄었고, 사람들이 서로에게 밀려 이동하는 군중 유체화 현상까지 일어난 가운데, 앞서 가던 줄에서 계단을 걷다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사람이 나왔다. 하지만 뒤에선 앞에 사람이 넘어졌다는 걸 모른채 계속 앞으로 이동했고, 그 결과 넘어진 사람 뒤에 있던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에게 밀려 넘어지면서 사람들이 출구에 쌓이는 군중 붕괴가 일어났다. 몇몇 사람들은 계단에서 구르며 떨어져 나왔고, 계속해서 사람이 뒤에서 몰려들자 출구가 아예 사람으로 막혀버렸다.
사고를 목격한 사람들이 구조를 돕고, 시신은 인근 경찰서로 옮겨졌다. 경찰서에선 가족을 찾으러 온 사람이 와 시신을 확인해야 했다.
결국 사고로 74명이 사망하고 150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상자 대다수는 보카 팬이었다. 사망자의 평균 연령대는 19살이었다. 이 사고는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간 축구 사건사고로 기록됐다.
3. 사고 이후
리버 플레이트 측의 감독 아메리코 디 비에트로(Americo Di Vietro)와 마르셀리노 카브레라(Marcelino Cabrera)는 사고 이후 부주의혐의로 수감되었으나 5달 후 둘다 풀려났다.아직까지 정확한 사고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문의 형태가 옆으로 여닫는 미닫이 형식이었는데, 일각에서는 처음부터 문이 잠겨있었고, 하필 복도 끝 계단 아래에 문이 있던지라 맨 처음 나간 사람은 이를 보지 못해 닫힌 문을 보고 위로 올라가다 사고가 커졌다 주장한다. 또 다른 쪽에선 문이 열려있긴 했는데, 60cm 가량만 열려있어 한 사람 씩 나갈 수 있었고, 사람들이 나가면서 문을 마저 열지 않아 사고가 커졌다 주장하고 있다.
1968년 수페르클라시코 시즌이 끝날 무렵,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AFA)에서 성금 10만 페소를 모아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4. 같이 보기
- 리마 축구 폭동(1964.05.24)
- 1971 아이브록스 참사(1971.01.02)
- 헤이젤 참사(1985.05.29)
- 힐스버러 참사(1989.04.15)
[1]
12번 출구의 참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