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31 14:36:37

페미니즘 번역론


1. 개요2. 상세3. 사건사고
3.1. 한강과 페미니즘 번역론자 사이의 분쟁
3.1.1. 페미니즘 번역론에 대한 한강의 인용 불허가3.1.2.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1. 개요

페미니즘 번역론은 윤선경 외대 교수의 주장에 의하면 원본이 페미니즘 책이 아닌데도 원본을 무시하고 페미니즘 형식에 맞춰 개조하는 번역을 의미한다. 이들에 의하면 원본=남성, 번역=여성이며 번역은 여성처럼 의존적이고 나약하고, 열등하게 보는 관점에 반대하며, 번역을 원본에 충실해선 안 되며 가부장제 권력에 저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 상세

윤선경의 주장하는 페미니즘 번역론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한국외대에서 ‘번역과 젠더’를 강의하는 윤 교수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번역은 순수하고 중립적인 텍스트가 아니라 권력에 봉사할 수도 저항할 수도 있는 정치적인 공간”이라며 “1980년대 캐나다 퀘벡에서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태동한 ‘페미니즘 번역’은 성차별주의와 여성혐오에 반대하면서 가부장적 언어에 억압된 여성의 목소리를 일깨우고자 번역을 원본의 베껴 쓰기로 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겨레, “<채식주의자> 영어판 번역 논란, 페미니즘 관점서 새로 봐야” 국제학술지 <젠더학 저널> 논문 등재 윤선경 교수 “번역은 권력에 저항할 수도 있는 정치적 공간”, 2021-01-21 11:32,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979755.html
“한국 번역은 영미권 문화 사대주의…원본의 신성성 깨야”
(...)

최근 ‘채식주의자’를 페미니스트 번역의 관점에서 해석한 논문을 게재했다. 페미니스트 번역이 무엇인가.
페미니즘 번역은 캐나다 퀘백에서 1980년대에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번역 방식이다. 처음에는 불어로 제작된 페미니즘 책의 내용을 훼손 없이 영어로 번역하기 위해 시작됐는데 이후 가부장제, 여혐 등에 대해 반대하는 번역 방식으로 발전했다. 급진적 번역의 경우에는 원본이 페미니즘 책이 아닌데 이를 페미니즘 형식에 맞춰 바꾸기도 한다. 쉽게 말해 남자는 원본처럼 권력이 있고 중요하지만, 번역은 여성처럼 의존적이고 나약하고, 열등하게 보는 관점에 반대하는게 페미니즘 번역이다. 여성과 번역의 동일시, 번역의 충실성에 대한 반대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흔한 예로, 번역을 설명할 때 여성을 빗대어 설명하는데, 좋은 도착어로 번역이 되면 ‘예쁜 번역’이라고 한다. 이러한 관점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다.
대학저널, [ IN-ter-VIEW ] 한국외대 윤선경 교수 “한강은 채식주의자의 작가, 데보라 스미스는 The Vegetarian의 작가”
한국외국어대학교는 21일 윤선경 영어통번역학부 교수의 논문 '데보라 스미스의 불충실성: 페미니스트 번역으로서의 <채식주의자>(Deborah Smith's Infidelity: The Vegetarian as Feminist Translation)'가 국제저명학술지 '젠더학 저널'에 출판했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번역은 종종 직역 또는 단어 대 단어 번역을 의미하며, 번역은 번역가의 해석 없이 단순히 언어만의 문제, 텍스트를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옮기는 문제로 환원되는 경향이 있다.

윤 교수는 논문에서 스미스의 번역을 분석하면서 번역이 원본의 베껴쓰기가 아닌 창조적인 글쓰기임을 보여주며 번역의 개념을 확장하고 원본과 번역의 오래된 서열에 이의를 제기했다.
(...)
논문은 또 번역이 정치적인 글쓰기로서 페미니즘에 공헌할 수 있다는 점도 보여준다. 윤 교수는 번역은 순수하고 중립적인 텍스트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특히 스미스의 번역은 가부장제 권력에 저항하는 페미니즘 번역이라고 분석했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가부장제로 고통받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이 논문에 담긴 윤선경 교수의 메시지는 특히 시의적절하며, 번역과 젠더 정치학을 연결시켜 번역의 지평을 넓히고, 원본과 번역, 남성과 여성 사이의 서열을 무너뜨리는 전복적인 번역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유의미한 연구라는 평을 받고 있다.
권라영, "채식주의자 英번역은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페미니즘 번역", 2021-01-21, KPI뉴스 https://www.kpinews.kr/newsView/179546946360101

3. 사건사고

3.1. 한강과 페미니즘 번역론자 사이의 분쟁

3.1.1. 페미니즘 번역론에 대한 한강의 인용 불허가

윤선경 교수는 채식주의자를 근거로 페미니즘 번역론을 논문까지 게재하며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이 모든 것은 윤선경 교수 개인의 생각이며 원작을 훼손한 궤변임이 드러났다. 이후 <K문학의 탄생>을 출판할 때 한강 작가는 윤선경 교수의 본문 인용을 거부했다. 한강은 윤선경의 '페미니즘 번역론'을 용납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난해 8월 < 채식주의자> 영어번역 비평 글을 출판하는 마무리 단계에서 한강이 본문인용 허락에 회의적이라는 뜻밖의 소식을 편집자에게서 전해 들었다. 작가가 나의 텍스트 해석이 자신의 의도와 다르고 나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한국어 원본에서 인혜가 남편과 여동생의 정사를 알고 나서도, 남편을 이해하고 자책하려 드는 답답한 순간을 가부장제에 순응하는 모습이라고 해석한 반면, 작가는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했다. 그럼, 저자의 의도와 다른 해석은 잘못된 것인가. 나는 편집자로부터 논문수정을 권고받고 촉박한 시간 속에서 노심초사하며 수정해서 제출했지만, 끝내 거부되었다. 결국 인쇄소 가기 직전 나의 글만 들어내고, <K 문학의 탄생>은 출간됐다.
윤선경, 원작가 ‘한강’ 개입, 한국문학 번역과 세계화에 도움이 될까 (경향신문), 2024.01.09
저작권에 의해 인용을 거부당한 윤선경은 경향신문에 기고까지 하며 2024년에 "한국문학 번역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 한국문학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애쓰는 번역가들에게 참담한 소식이 되는 건 아닐까 우려", " 한국문학의 위상에 누가 될 것이다"라고 강변했다.
둘째, 원작가의 개입은 과연 한국문학 번역과 세계화에 도움이 되는가. 랜스 휴슨에 따르면 번역비평은 번역가의 선택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평가해 새로운 번역을 준비시킨다고 한다. 그러므로 원작가가 번역비평을 인정하지 않는 이 사건은 한국문학 번역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더군다나 척박한 환경에서도 한국문학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애쓰는 번역가들에게 참담한 소식이 되는 건 아닐까 우려스럽다. 번역으로 세계에 가장 많이 이름을 알린 작가의 개입이어서 더욱 당황스럽다.

게다가 < 채식주의자> 영어번역이 오역에도 유의미한 페미니즘 텍스트라고 주장하는 글의 출간에 끼어들어, 원작가가 직접 오역논쟁에 동참하는 형국이 됐다. 오역논쟁으로 작가나 번역가가 겪었을 고초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작가가 공적인 번역비평 담론에 개입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 어떤 경우라도 번역비평에 대한 원작가의 관여는 부적절하다.

이제 우리는 유명 작가가 본문인용을 불허해 비평에 개입하고 번역비판에 동참하는 불행한 선례를 갖게 됐다. 이와 유사한 일이 또다시 발생한다면, 학문공동체의 비평 시스템은 위축되고 많은 사람들이 공들여 쌓아온 한국문학의 위상에 누가 될 것이다. 이 기고문은 우려의 글로서 쓴 것이며, 공론장에서 상식적인 여론을 환기시키기를 바란다.
윤선경, 원작가 ‘한강’ 개입, 한국문학 번역과 세계화에 도움이 될까 (경향신문), 2024.01.09

하지만 그로부터 9개월 후 한강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윤선경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3.1.2.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자 이후 윤선경 교수는 기고문을 고작 오마이뉴스에 투고했다. 이전에는 한겨레에 소개되거나 경향신문에 투고했었는데, 투고하는 언론의 차이가 심각하게 하락했다. 오마이뉴스 기고한 글에서는 한강에게 항의했던 태도도 삭제했을 뿐 아니라 '페미니즘 번역론'이라는 프레임을 삭제한 채 '두 언어, 문화의 차이', 두 언어 글쓰기 관행의 차이', '한국은 영미권에 비해 원본중심주의, 직역의 풍토'라는 합리적인 표현으로 수정한 채 기고문을 게재했다.(...)
그러나 나는 유일하게 그의 번역이 한국어 원본의 주제의식, 페미니즘을 잘 살리고 부각시켰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썼다. 그래서 데보라 스미스의 평판은 오랜 무명에서 한국문학을 구원한 영웅이냐, 한국문학을 배신한 반역자이냐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었다.

이러한 논란은 한국에서 통용되는 번역의 개념 및 위상과 관련이 깊다. 한국은 영미권에 비해 원본중심주의, 직역의 풍토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학번역을 얘기할 때, 오역을 했는지 안 했는지, 충실한지 아닌지, 정확한지 아닌지에 초점을 맞춘다.

두 언어, 문화가 다르고 두 언어 글쓰기 관행이 다를 진데, 한국어에서 좋은 글쓰기의 기준이 다른 언어에서는 통하지 않을 수 있음을 간과한다. 우리의 감동이 그들의 감동이 아닐 수 있음을 놓친다.

기억해야 할 것은 해외 심사위원들과 독자들은 원본과 번역을 비교해서 읽지 않으며, 번역을 하나의 시로, 소설로, 작품으로 읽는다는 사실이다. 오로지 그들의 언어로.
윤선경, <채식주의자>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은 재평가 받아야 한다 한강을 세계가 주목하는 데 기여... 번역비평 오역 논쟁에서 벗어나 번역가에게 문학적 자율성 허용해야, 오마이뉴스, 24.10.24,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72427
보다시피 윤선경이 최소 2021년부터 논문까지 투고하며 지속적으로 주장했던 소위 페미니즘 번역론 개념이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오마이뉴스 기고글에는 단 한건도 등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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