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12:25:53

투팍 아마루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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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팍 아마루 2세
Túpac Amaru II
파일:TupacAmaruII.jpg
<colbgcolor=#d91023> 본명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캉키
(José Gabriel Condorcanqui)
출생 1742년
사망 1781년 (향년 39세)

1. 개요2. 생애3. 평가

[clearfix]

1. 개요

18세기에 활동한 페루의 원주민 독립운동가.

본명은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캉키(José Gabriel Condorcanqui). 잉카 제국의 후신인 신잉카국의 마지막 황제이자 제18대 사파 잉카였던 투팍 아마루 1세(1545 ~ 1572)의 이름을 따 왔다.

2. 생애

원주민 유력자 출신이었으나 1780년 스페인의 식민통치에 대항하여 봉기해 페루 부왕 안토니오 데 아리아가를 처형하고 스스로 투팍 아마루 2세라는 이름을 칭하면서 잉카 제국의 부흥 및 아메리카 원주민, 메스티소, 흑인의 차별 철폐를 선언했다.

그러나 투팍 아마루 2세와 봉기군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전열을 정비한 스페인군에 진압되었다. 식민 당국은 투팍 아마루 2세를 거열형으로 처형하려고 했으나 잘 찢기지 않자[1] 교수척장분지형으로 다시 처형하고 가족들까지 모두 살해했다. 이렇게까지 잔인한 처형을 한 이유는 더 이상의 반란을 막겠다는 의지 표명이었다. 물론 후술된 것처럼 봉기는 그 뒤로도 여러 지역에서 일어났고, 스페인도 감시를 더욱 강화했으나...

하지만 페루를 포함한 스페인령 중남미 식민지의 독립운동은 이후에도 계속되어 50년도 지나지 않은 1820년대에 스페인은 쿠바, 푸에르토리코를 제외한 모든 중남미 식민지를 상실하게 되었으며 결국 남아 있었던 쿠바 푸에르토리코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스페인이 미국에 패전하면서 상실했다.

3. 평가

비록 공식적인 황제는 아니었으나 스페인의 폭압적인 식민지배에 맞선 독립운동가이기 때문에 오늘날 페루에서는 독립의 선구자, 민족의 영웅으로 높게 평가받고 있다.

여담으로 미국 래퍼 투팍의 이름은 이 사람에게서 유래한 것이다.

페루 민중가요 엘 콘도르 파사는 그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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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현세 화백의 만화에서는 투팍 아마루 2세의 힘이 너무 강한 탓에 아무리 말에게 채찍질을 해도 소용이 없자 결국 사지를 자르는 식으로 묘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