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5 17:17:34

통도사/산내 암자

통도사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 부속시설 성보박물관 산내 암자
파일:통도사 암자 지도.png
통도사 산내 암자 지도
1. 개요2. 암자 설명
2.1. 관음암2.2. 극락암
2.2.1. 극락암 칠성탱
2.2.1.1.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36호
2.2.2. 극락암 석조관음보살좌상
2.2.2.1.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83호
2.2.3. 극락암 아미타후불탱
2.2.3.1.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84호
2.2.4. 극락암 가경23년명 신중탱
2.2.4.1.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85호
2.2.5. 극락암 반자
2.2.5.1.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86호
2.2.6. 극락암 수세전
2.2.6.1.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2.3. 금수암2.4. 반야암2.5. 백련암
2.5.1. 백련암 석가모니후불탱
2.5.1.1.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17호
2.5.2. 백련암 용선접인도
2.5.2.1.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79호
2.6. 백운암2.7. 보타암2.8. 비로암
2.8.1. 비로암 탱화
2.8.1.1.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54호
2.9. 사명암
2.9.1. 사명암 감로탱
2.9.1.1.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15호
2.10. 서운암
2.10.1. 서운암 동궁어필
2.10.1.1.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40호
2.10.2. 서운암 훈유어필
2.10.2.1.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53호
2.10.3. 서운암 묘법연화경
2.10.3.1.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65호
2.11. 서축암2.12. 수도암2.13. 안양암
2.13.1. 안양암 북극전
2.13.1.1.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47호
2.13.2. 안양암 함평11년명 신중도
2.13.2.1.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66호
2.14. 옥련암2.15. 자장암
2.15.1. 자장암 마애아미타여래삼존상
2.15.1.1. 국가등록문화재 제617호
2.16. 축서암2.17. 취운암
2.17.1. 취운암 지장시왕탱
2.17.1.1.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64호
2.17.2. 취운전
2.17.2.1.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99호

1. 개요

통도사 안에는 열 개가 넘는 암자가 있다. 웬만한 암자들이 일반 절만큼 규모가 크다.

2. 암자 설명

현재 영축산 통도사 내에는 17개 산내 암자가 있다.

2.1. 관음암

1990년대 태응스님이 처음 세웠다.

2.2. 극락암

극락암 삽삼조사재 영상
경봉 정석 스님이 50년 넘게 지냈던 암자이다. 매년 음력 10월 31일에는 삽삼조사재가 열린다. 삽삼조사재는 마하 가섭부터 육조 혜능대사까지의 역대 조사 33명의 가르침을 새기고 추모하는 다례재이다. 석가모니 이후 가섭존자부터 보리 달마에 이르는 서천28조와 보리달마에서 육조 혜능에 이르는 중국의 동토 6조를 이어서 삽삼조사라 한다. 서천28조를 다 말하면 다음과 같다.
마하가섭(摩訶迦葉)·아난다(阿難陀)·상나화수(商那和修)·우바국다(優婆국多)·제다가(提多迦)·미차가(彌遮迦)·바수밀다(婆須蜜多)·불타난제(佛陀難提)·복태밀다(伏駄蜜多)·협존자(脇尊者)·부나야사(富那夜奢)·마명(馬鳴)·가비마라(迦毘摩羅)·용수(龍樹)·가나제바(迦那提婆)·라후라다(羅睺羅多)·승가난제(僧伽難提)·가야사다(伽倻舍多)·구마라다(鳩摩羅多)·사야다(闍夜多)·바수반두(婆藪槃豆)·마나라(摩拏羅)·학륵나(鶴勒那)·사자(師子)·바사사다(婆舍斯多)·불여밀다(不如蜜多)·반야다라(般若多羅)·보리달마.
그리고 동토 6조는 다음과 같다.
보리달마(菩提達磨)·신광혜가(神光慧可)·완공승찬·쌍봉도신(雙峰道信)·황매홍인(黃梅弘忍)·육조혜능(六祖慧能)

2.2.1. 극락암 칠성탱

파일:통도사 극락암 칠성탱 문화재청.jpg
<colbgcolor=#315288> 양산 통도사 극락암 칠성탱
2.2.1.1.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36호
화면의 중앙에 청색의 천공을 배경으로 하여 구름 속에 솟아오른 연화좌 위에 치성광여래가 앉아 있고, 좌우에 월광ㆍ일광보살이 시립하고 있으며, 본존의 두광 좌우에 太上老君과 開德眞君이 좌우대칭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9폭이 1조를 이룬 이 작품의 주조색은 주색ㆍ녹색ㆍ군청ㆍ황색ㆍ백색이며, 보관의 장식과 홀, 무릎 아래로 흘러내리는 장식, 성수의 머리 묶는 끈 장식 등에 금박을 사용하여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이 칠성탱은 주존으로 치성광여래탱 1위와 자미대제 삼태육성탱 1위, 칠원성군탱 7위를 포함하여 모두 9위의 완품이 갖추어진 수작에 속하는 칠성탱 작품이다.

조성화기를 보면 증명, 송주, 금어 등의 연화질 명렬은 없으며, 다만 왕실의 무사안녕과 수명장수를 축원하고 있다. 예부터 어전에서 이루어진 작품에는 감히 작가의 낙관은 할 수 없듯이 이러한 연유로 연화질의 명렬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2.2. 극락암 석조관음보살좌상

파일:통도사 극락암 석조관음보살좌상 문화재청.jpg
<colbgcolor=#315288> 양산 통도사 극락암 석조관음보살좌상
2.2.2.1.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83호
통도사 극락암 무량수전에 안치되어 있는 이 관음보살상은 양손을 모아 복전(腹前)에 두고 왼손바닥에는 현재 정병이 놓여 있다.

신체에 비해 두부가 매우 큰 반면 어깨폭은 좁다. 머리에 착용한 보관은 상단부가 팔엽형의 곡선을 이루며, 보관 전면과 측면에는 당초문이 장식되어 있다. 정부에는 보계가 솟아올라 있으며, 보계의 아래부분에는 금색띠를 둘러 마무리를 하였으며, 귀 볼을 거쳐 흘러내린 보발은 양쪽 어깨 위에서 둥근 원을 이루며 세 가닥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발제선을 따라 보관 아래에 노출된 머리카락은 갈래를 나눠 구분하고 머릿결은 마치 빗으로 빗은 듯 음각선으로 나타내었으나, 그 간격이 균일하지 못하다.

고개를 아래로 약간 숙인 얼굴은 길이에 비해 폭이 넓은 방형(面長:面幅=8.3:10.9cm)으로, 이마는 편평하고 넓게 처리하였고, 작고 가는 눈은 수평상으로 얕게 새겼으며, 낮은 코는 콧볼 좌우를 얕게 선각하였으나, 콧구멍은 별도로 표현하지 않았다.

입술 역시 얕게 새겼는데, 윗입술을 아랫입술보다 약간 두껍게 처리하였으며, 양쪽 끝이 살짝 올라가면서 약간 패여 미소를 머금은 듯하다. 무릎 위에 둔 양손은 오른손 위에 왼손을 겹친 상태로, 왼손 위에 작은 정병을 받치고 있다.

착의는 양어깨 위로 폭이 좁은 숄 형태의 천의를 걸쳤는데 배면은 완만한 U자 상의 이단(二段)으로 주름잡힌 상태이다. 양쪽 겨드랑이 아래로 흘러내린 천의 자락은 팔꿈치 아래로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다시 팔목 위를 거쳐 아래로 흘러내렸으며, 양쪽 어깨에 드리워진 천의의 끝자락은 살짝 외반된 상태이다. 팔목에 두른 천의 두께는 2cm 이상으로 꽤 두껍게 처리하였는데 조선후기 석조 재질에 보이는 현상이기도 하다.

가슴에는 꽃잎처럼 주름잡힌 승각기가 드러나 있다. 하반신을 감싼 군의는 양쪽 발 좌우로 2조의 의습선이 균일한 간격을 이루며 새겨져 있으나, 자연스럽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딱딱하게 처리된 상태이다.

보살상의 손발은 매우 작고 뭉퉁하게, 손톱은 얕게 음각하여 처리하였는데, 이 또한 조선후기 석조상에서 보이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2.2.3. 극락암 아미타후불탱

파일:통도사 극락암 아미타후불탱 문화재청.jpg
<colbgcolor=#315288> 양산 통도사 극락암 아미타후불탱
1821년 그려진 작품이다.
2.2.3.1.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84호
이 불화는 통도사 극락암 무량수각에 봉안된 아미타후불탱으로, 주색 바탕의 비단에 백색선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화면 중앙의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6대보살과 범천ㆍ제석천ㆍ사천왕ㆍ아난ㆍ가섭존자를, 화면 상단부에는 용왕ㆍ용녀ㆍ팔금강ㆍ4위의 신중상 증을 대칭적으로 배치한 군집구도이다.

원형의 두광과 신광을 갖춘 아미타여래는 중품 하생인을 취하고,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넓은 어깨와 당당한 가슴, 비교적 넓은 무릎너비로 안정적인 신체비율을 보인다.

6보살상의 좌우측으로 비파를 들고 있는 동방 지국천왕과 장검을 들고 있는 남방 증장천왕, 용과 여의보주를 쥔 서방 광목천왕, 보탑과 창을 든 북방 다문천왕이 갑옷과 천의를 입고 힘찬 기세로 서 있다.

서방 광목천왕의 수염은 담먹을 전체적으로 바르고 세필로 굵고 가는 먹선을 여러 차례 교차로 그은 후, 그 위에 백색선을 그었다. 남방 증장천왕의 수염은 녹청을 두껍게 바르고 먹선을 그었으며, 북방은 백색과 군청을 두텁게 바르고 그 위에 먹선으로 표현하였다. 다문천왕의 수염화기를 통해 도광원년(道光元年)(1821)에 조성하여 극락암에 봉안한 작품으로, 화원 계의(戒誼)·관보(琯甫)를 비롯하여 수명이 관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2.2.4. 극락암 가경23년명 신중탱

파일:통도사 극락암 가경23년명 신중탱 문화재청.jpg
<colbgcolor=#315288> 양산 통도사 극락암 가경23년명 신중탱
2.2.4.1.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85호
이 불화는 통도사 극락암의 신중탱으로 대자재천을 비롯하여 모두 18위의 천인이 묘사되어 있다.

화면의 상단 중앙에는 삼목팔비(三目八臂)의 대자재천을 중심으로 좌우에 범천ㆍ제석천 등 3위가 원형 두광을 갖추고 합장한 모습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자재천과 범천ㆍ제석천의 가장자리에 산개(傘蓋)를 든 동자상 1위, 당번을 든 동녀 2위가 그려져 있으며, 그 아래쪽 화면 가장자리에는 일궁ㆍ월궁천자가 시립하고 있다.

그리고 화면 하단 향좌측에는 주악천녀 4위와 합장형의 천녀상 1위를 배치하고, 반대쪽 향우측에는 위태천과 검을 쥔 신장상 2위, 사갈라용왕과 합장인물상들을 구름으로 구획지워 앞의 그룹들과 구분하고 있다.이 신중탱은 화기에 의해 가경(嘉慶)23년(1818)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도상 내용이 인물의 위치가 반대로 되어 있는 점만 다를 뿐, 경북 은해사 기기암에 봉안된 신중탱(1771년)과 거의 흡사하여, 동일계 초본을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2.2.5. 극락암 반자

파일:통도사 극락암 반자 문화재청.jpg
<colbgcolor=#315288> 양산 통도사 극락암 반자
2.2.5.1.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86호
현재 무량수전에 걸려 있는 이 청동반자는 직경 85.5~85.8cm 크기의 대형이다. 측면에 반원형의 고리 두 개가 붙어 있어 원래는 양쪽 고리로 고정시켰음을 알 수 있다.

전면 중앙에는 돋을새김의 태극원문 당좌가 있다. 당좌의 좌우에는 다섯 개의 도드라진 방형틀이 있으며, 그 안에 양각으로 願文을 새겼다.

당좌의 향우측에는「대황제폐하만만세(大皇帝陛下萬萬歲)」,「순비저하수제년(淳妣邸下壽齊年)」,「영친왕저하수제년(英親王邸下壽齊年)」을, 향좌측에는「황태자전하천천세(皇太子殿下千千歲)」,「황태자비전하수제년(皇太子妣殿下壽齊年)」 이라는 내용을 주조한 것으로 보아, 청동반자의 제작배경이 대한제국 시기 왕실의 수복과 안녕을 기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전면의 가장자리에는 음각선을 둘렀으며, 후면에는 직경 65.0cm 크기의 구멍이 뚫려 있다. 그리고 측면에는 돋을새김의 원형문을 2열씩 배열하고, 그 안에 옴자를 음각으로 새겨 총 44개의 옴자삽입 원형문을 균일한 간격으로 배치하고 있다.

2.2.6. 극락암 수세전

파일:통도사 극락암 수세전 문화재청.jpg
<colbgcolor=#315288> 양산 통도사 극락암 수세전
2.2.6.1.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통도사 극락암 수세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형태로 칠성탱화를 모신 전각이다. 초장 당시 칠성각으로 지어졌으나, 광무 7년(1903) 당시 양산 군수였던 안종설에 의해 대한제국 황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하여 건립된 불전이다.

초장연대는 도광 원년(1821)문화재자료 제384호인 아미타후불탱이 수세전에 봉안된 연도로 미루어 추정하나 현존 건물의 초장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는 명확하지 않다.

이 불전은 통도사 안양암 북극전과 비로암 북극전과 더불어 칠성신앙을 보여주는 불전 양식으로 그 독특함이 있고, 조선후기에서 근대 불전으로 가는 과도기적 특징을 일부 보여주고 있다.

2.3. 금수암

1986년 여산 스님이 처음 세웠다

2.4. 반야암

1999년 지안 스님이 처음 세웠다.

2.5. 백련암

백련암 관련 영상
암자 앞에 있는 수백년된 은행나무가 유명하다.

2.5.1. 백련암 석가모니후불탱

파일:통도사 백련암 석가모니후불탱 문화재청.jpg
<colbgcolor=#315288> 양산 통도사 백련암 석가모니후불탱
1863년 그려진 작품이다.
2.5.1.1.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17호
통도사에 보존되어 있는 석가모니후불탱인데, 탱화란 천이나 종이에 그림을 그려 액자나 족자 형태로 만들어지는 불화를 말한다.

비단 바탕에 채색하여 그린 이 탱화는, 주색바탕에 황색선묘로 도상을 표현하였으나, 황색선묘가 현재 칙칙하게 변색된 상태이다. 화면 상단 중앙에 본존인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가장 아래쪽에 협시보살상과 사천왕상이 좌우에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 바로 위쪽에는 8대보살상이 좌우 4구씩, 가장 위쪽에는 16나한상과 신장상이 좌우로 배치되어 있다.

화면의 아래쪽 부분 좌우측 양쪽에 있는 기록에 의하면 이 불화는 ‘동치 2계관’, 즉 조선 철종 14년(1863)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불교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학술적 자료이다.

2.5.2. 백련암 용선접인도

파일:통도사 백련암 용선접인도 문화재청.jpg
<colbgcolor=#315288> 양산 통도사 백련암 용선접인도
19세기 용선접인도이다.
2.5.2.1.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79호
양산 통도사 백련암 용선접인도(梁山 通度寺 白蓮庵 龍船接引圖)은 경상남도 양산시, 통도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탱화이다. 2014년 3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79호로 지정되었다.

통도사 백련암 용선접인도는 왕생자들이 아미타불의 인도에 따라 용선을 타고 극락왕생하는 모습을 한 화폭에 담은 작품으로 화면 구성은 아래쪽에 가로로 길게 용선이 그려져 있고, 그 한 가운데 돛을 배경으로 아미타삼존이 입상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용선접인의 장면이 묘사된 그림은 많지 않은데, 그 대부분도 벽화의 형태로 남아 있다.

백련암 용선접인도는 현존하는 용선접인도 중 걸괘형식의 탱화 형태이면서 제작 시기도 분명한 19세기 용선접인도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2.6. 백운암

유일하게 차로 갈 수 없는 암자이다. 백운암을 가려면 인근까지 차로 가서 이후에는 등산해야 한다. 이러한 백운암은 892년 조일대사(朝日大師)가 처음 세웠으며 이후의 기록은 자세히 전하지 않는다. 그러다 1810년 침허대사(沈虛大師)가 중창하였으며 1970년대 경봉스님의 후원으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2.7. 보타암

통도사 안 암자 중 유일한 비구니(여자 스님) 암자이다.

2.8. 비로암

1345년 영숙대사(靈淑大師)가 처음 세웠으며 1578년 숙관 태흠(肅寬 泰欽)이 중창하였다. 이후 임진왜란 때 불탔으며 여러 차례 건물을 다시 세우고 수리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그리고 근래에는 원명화상이 비로암을 중수하였다.

2.8.1. 비로암 탱화

파일:통도사 비로암 탱화 문화재청.jpg
<colbgcolor=#315288> 양산 통도사 비로암 탱화
2.8.1.1.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54호
비로암 대웅전, 북극전 등에 봉안되어 있는 8폭의 불화로서 비슷한 시기에 일괄 조성하여 조선말기의 불교회화사 변천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비단에 채색하였으며, 크기는 다양한데 각각의 크기와 제작연대는 다음과 같다.

1.후불(後佛)탱화:128x165, 1899년

2.신중(神衆)탱화:153x170, 1899년

3.독성(獨聖)탱화: 1899년

4.산신(山神)탱화: 1899년

5.지장(地藏)탱화:214x152 1904년

6.감로(甘露)탱화:134x166 1904년

7.칠성(七星)탱화:153x170 1904년

8.조왕(竈王)탱화: 1904년

2.9. 사명암

사명암 관련 영상
사명대사가 수행했다고 전해지는 암자이다.

2.9.1. 사명암 감로탱

파일:통도사 사명암 감로탱 문화재청.jpg
<colbgcolor=#315288> 양산 통도사 사명암 감로탱
2.9.1.1.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15호
통도사에 보존되어 있는 그림으로, 감로탱이라 함은 지옥에 빠진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해주는 장면을 그린 불화이다.

면소재 바탕에 채색하여 그린 이 탱화는, 폭을 상하로 엮어 이은 흔적이 있다. 화면은 크게 상하 2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면 상단 중앙에는 칠여래상이 연꽃 위에 서 있고, 그 아래에는 향로·촛대·꽃·과자가 차려진 제단이 설치되어 있다. 향우측에는 지장·관음을 비롯한 보살상 3구가 연꽃무늬 대좌 위에 서 있고, 이들을 구름이 에워싸고 있다. 보살상 아래쪽에는 성곽을 배경으로 왕과 군중들의 행차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반대편 향좌측에는 인로왕보살상이 있다. 인로왕보살 아래쪽에는 의식승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화면 하단 중앙에는 구름에 둘러싸인 거대한 아귀 1구를 중심으로 지옥 장면과 사당패의 줄타기 장면, 싸움·전쟁 등의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화면의 아래쪽 부분에 있는 기록에 의하면, 이 감로탱은 금어 환월·상림·성환 등이 참여하여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통도사 사명암 감로탱은 부분적으로 안료의 변색과 오염, 박락 등이 확인되나 조선시대 불교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학술적 자료로 평가된다.

2.10. 서운암

서운암 소개 영상[1]
현재 조계종의 종정인 중봉 성파스님이 머무르는 암자이다.

2.10.1. 서운암 동궁어필

파일:통도사 서운암 동궁어필 문화재청.jpg
<colbgcolor=#315288> 양산 통도사 서운암 동궁어필
2.10.1.1.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40호
「동궁어필」은 세자의 글씨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사도세자(思悼世子: 1735-1762)를 나타내는 것으로 사도세자의 글씨첩을 말한다. 동궁이란 왕세자를 칭하기도 하고 또는 세자가 거처하는 곳을 동궁이라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과 능허관만고의 내용을 대조해 볼 때, 「양산 통도사 서운암 동궁어필」은 사도세자가 자신이 지은 글을 직접 쓴 작품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므로 사도세자가 14세에 쓴 이른 시기의 친필 작품이라는 사실과 능허관만고에 수록되지 않은 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자료적 가치가 있으므로“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한다.

2.10.2. 서운암 훈유어필

파일:통도사 서운암 훈유어필 문화재청.jpg
<colbgcolor=#315288> 양산 통도사 서운암 훈유어필
2.10.2.1.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53호
「양산 통도사 서운암 훈유어필」은 영조 19년(1743) 3월 17일 관례를 치루는 사도세자를 위해 영조가 전달 그믐 2월 30일에 짓고 쓴 것이다. 즉 영조가 사도세자의 관례를 행할 때 세자에게 지어준 교훈과 경계의 글을 모은 탁본집이라 할 수 있다. 영조연간에 하사된 서첩은 녹색 구름무늬 비단(柳綠雲紋紗)으로 겉을 꾸미고 안쪽 탁본을 닥지로 돌려 회장(回裝)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양산 통도사 서운암 훈유어필 」도 영조 년간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자료는 탑첩의 형태로 구성된 영조가 사도세자의 관례를 행할 때 직접 지은 훈유어필로서 그 역사적 가치가 있다. 다만 제작 및 인출 연도가 불분명하고, 당시 훈유를 음각한 석판 22매가 국립고궁박물관에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한다

2.10.3. 서운암 묘법연화경

파일:통도사 서운암 묘법연화경 문화재청.jpg
<colbgcolor=#315288> 양산 통도사 서운암 묘법연화경
2.10.3.1.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65호
양산 통도사 서운암 묘법연화경(梁山 通度寺 瑞雲庵 妙法蓮華經)은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 서운암에 있는 묘법연화경이다.

「묘법연화경」은 법화사상의 핵심 경전으로 한국 불교계의 근본경전의 하나이다. 「양산 통도사 서운암 묘법연화경」은 1531년 영천의 공산본사에서 중각하였다는 간행기록과 인출 및 보관상태도 양호한 경전이며 1455년 금속활자인 을해자본 계열의 자료이다. 또한 「법화경」판본계통을 연구하는데 있어 귀중한 자료이므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한다.

2.11. 서축암

1996년 조계종 8대 종정이었던 월하 명근스님이 처음 세웠다.

2.12. 수도암

1372년 이관대사(爾觀大師)가 처음 세웠다.

2.13. 안양암

1295년 찬인대사(贊仁大師)가 처음 세웠으며 1865년 우담대사(雨潭大師)가 중창하였다. 1295년과 1865년 사이에는 기록이 없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없다. 그리고 1866년 북극전 내부에 칠성탱화를 봉안하였다.

2.13.1. 안양암 북극전

파일:통도사 안양암 북극전 문화재청.jpg
<colbgcolor=#315288> 양산 통도사 안양암 북극전
2.13.1.1.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47호
통도사는 합천 해인사, 승주 송광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사찰 중의 하나로 신라 선덕여왕 15년(646)에 자장율사가 지었다. 안양암은 통도사 8경 중의 하나인 안양 동대에 위치하며, 처음 세워진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려 충렬왕 21년(1295)에 찬인대사가 다시 지었고 조선 고종 2년(1865)에 보수 되었다고 한다.

법당은 보상암이라고도 불리우며,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되어있다.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으나 지붕을 받치는 공포의 모양으로 보아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조선 후기 양식의 건축물이다.

2.13.2. 안양암 함평11년명 신중도

파일:통도사 안양암 함풍11년명 신중도 문화재청.jpg
<colbgcolor=#315288> 양산 통도사 안양암 함평11년명 신중도
2.13.2.1.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66호
신중도는 대승불교에서 호법선신(護法善神)으로 봉안되어 신앙의 대상이 된 신중(神衆)을 알기 쉽게 그림으로 나타낸 예배용 불화이다.

이 신중도는 통도사 안양암 금당에 모셔져 있는 신중탱화로서, 비단 바탕에 채색하여 그렸으며, 크기는 전체 121㎝×128㎝이다.

상·하 2단으로 된 화면의 상단에는 연꽃가지 1개를 오른손에 들고 보관을 쓴 석가여래를 가운데 모시고 그 주위에 천상중을 배치하였다. 화면의 중앙에 해당하는 하단 가운데에는 날개 달린 투구를 쓴 동진보살을 모시고 그 주위에 신중상을 배치하였다.

화면에 적혀져 있는 기록에 의하면 이 신중도는 조선 철종 11년(1861)에 금어(金魚)인 의행(誼幸)·덕화(德化) 등이 참여하여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신중탱을 봉안하였던 곳을 대암(大菴, 큰절)이라 하고 있어, 이 신중도의 뛰어난 격과 통도사 소속 암자내에서 안양암의 위치가 일치함을 보여준다.

석가여래와 동진보살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보기 드문 신중도로 조선 후기 불교회화사와 사상사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2.14. 옥련암

1374년 쌍옥대사(雙玉大師)가 처음 세웠으며 1857년 호곡대사와 청진대사가 중건하였다.

2.15. 자장암

자장암 소개 영상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암자이다.

2.15.1. 자장암 마애아미타여래삼존상

2.15.1.1. 국가등록문화재 제617호
조각에 불화를 접목한 중요한 사례에 해당. 근대기의 출발점에 있는 불교 조각이며 인근에 조성된 근대기 회화성 짙은 마애불상의 제작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음.
19세기 유행한 불화의 초본을 바위에 옮긴 것처럼 불화의 시대적 특징이 잘 드러나 있으며 희소성의 가치가 있음.

2.16. 축서암

1711년 처음 세워졌다.

2.17. 취운암

1650년 우운 진희가 처음 세웠으며 율원이 있다.

2.17.1. 취운암 지장시왕탱

2.17.1.1.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64호
본 작품은 1896년에 조성된 세로 206.5cm, 가로 199.5cm로 비교적 큰 작품으로, 동호(東昊)·진철(震徹)이 제작에 관여하였음을 화기를 통해 알 수 있다. 현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지 못하나 19세기 지장시왕도상 연구에 그 자료적 가치가 있다.

2.17.2. 취운전

2.17.2.1.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99호
양산 통도사 취운전(梁山 通度寺 翠雲殿)은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에 있는 건축물이다. 2016년 12월 1일 경상남도의 유형문화재 제599호로 지정되었다.

취운전은 숙종 12년(1686년)에 초창되었고, 171년이 지난 철종 8년(1857)에 중수가 있었으며 근세에도 지속적으로 중수되어 오다가 2008년 완전 해체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8년 보수를 통해 기존의 주지실, 법당, 부엌, 전후 툇마루를 없애고 전부 법당으로 변경하여 삼존불단을 포함한 천불단을 조성하여 당초 공간구성에서는 완전 변경되었다. 다만, 건축물을 구성하는 축부재, 공포재, 가구구성재는 옛것 그대로 남아 있다.

따라서 문화재 판단기준이 되는 원형에 대한 근거는 매우 부족한 편이지만 건축형식면에서는 옛 모습 그대로이고 공간구성 변경에 대하여서는 '양산 통도사 취운암 주변 정비 및 기록화 보고서'를 통해 기록으로 남기고 있어 그 유래를 알 수 있다.

또한 2008년 이 건물을 해체보수 하면서 나온 '취운암중수상량문(翠雲庵重修上樑文)'을 통해 이 건물에 대한 창건 연대와 중수 기록을 정확히 알 수 있어 문화재적 가치를 높이고 있다.

그리고 이 건물은 불전의 장엄을 베풀기 위해 사용된 용, 봉황, 흰코끼리와 더불어 각 부재의 치목 등이 매우 훌륭하고, 특히 공포의 치목과 조각 수법이 우리나라 다른 불전에서는 볼 수 없는 매우 희귀한 수법으로 건축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판단된다.


[1] 영상 속 등장하는 스님은 2023년 기준 서운암 감원인 서송스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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