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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トウケイニセイ Tokei Nise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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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87년 5월 21일 | |
죽음 | 2013년 2월 18일 (26세) | |
성별 | 수컷 | |
털색 | 갈색 (鹿毛,카게) | |
아비 | 토케이 호프 (トウケイホープ) | |
어미 | 에이스 츠바키 (エースツバキ) | |
외조부 | 리폼 (Reform) | |
생산자 | 다나카 켄이치(田中堅一) | |
마주 | 오노데라 키쿠오(小野寺喜久男) | |
조교사 | 코니시 시게마사(모리오카 경마장) | |
성적 | 43전 39승(39-3-1-0) | |
총상금 | 3억 1577만엔 | |
주요 우승 |
지방 중상 |
미치노쿠 대상전(1993) 토호쿠 서러브레드 대상전(1993,1994,1995) 키타카미가와 대상전(1993,1994) 북일본 마일 챔피언십 남부배(1993, 1994) 토카상(1993,1994,1995) 시안모어 기념(1994,1995) 프렌들리 컵(1994,1995) |
상세 정보 | | JB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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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경주마로 중앙경마의 터프 클래식쪽에선 메지로 맥퀸을 필두로 한 메지로 3총사를 비롯해 아이네스 후진, 다이타쿠 헬리오스등의 숫말은 물론 아그네스 플로라, 다이이치 루비등의 암말도 골고루 활약하며 인기를 끌고있던 1990년 클래식 세대에 가려지긴 했지만 지방경마에선 절대적인 강함을 자랑하며 이와테의 마왕이라고까지 불렸던 더트의 초 강호이다. 1995년 'NAR 그랑프리 특별 표창마'이기도하다.2. 혈통
어미인 에이스 츠바키 역시 혈통은 그닥인데다 현역시절 성적도 중앙경마에서 1승(즉 미승리전 겨우 탈출하고 끝)이 전부인 말이라 목장에서 암말들을 정리할 때 다른 말들은 다 팔렸는데 안팔리고 남아있던 말이었다. 그런데도 혈통을 별로라도 성적은 괜찮았던 토케이 호프와 교배할 수 있었던 것은 암말 판매 소식은 들었는데 너무 늦게 찾아간 마주가, 말 산다고 왔는데 그냥 갈 순 없어서 할 수 없이 남아있던 말 중에 아무거나 한마리 싸게 받아온 것이었고 마침 토케이 호프의 교배 성적이 안좋아서 여유도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름 씨암말로는 괜찮았던지 토케이 니세이를 비롯해 지방경마에서 중상 우승을 거둔 산구가 3마리나 나왔다.
3. 생애
아비인 토케이 호프는 지방경마에서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혈통도 별로였고, 지방경마에서만 활약했던지라 인기가 없어서 종마가 되었지만 교배 기회는 거의 얻지 못했다. 이에 마주가 사방팔방을 알아보며 겨우 12마리와 교배하는데에 성공했지만 심장마비로 급사해 버리는 바람에 그 12마리가 낳은 산구가 남은 전부가 되어버렸다. 이 중 4두가 경주마로 출주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중 토케이 호프의 피를 이어 줄 숫말은 단 한마뿐이었기 때문에 '토케이 니세이(2세의 일본어)'라는 이름이 붙게 된다.2세의 이름을 받은 토케이 니세이는 2세 시즌의 9월에 데뷔전을 맞이해 쾌승을 올리지만, 직후 좌전지굴건염이 발생해서 할 수 없이 휴양에 들어가게 된다. 진영 측에서는 정성을 다 해 치료를 하지만 결국 완치에는 이르지 못했고 이후로도 레이스가 끝나면 바로 아이싱과 체력관리에 들어갈 정도로 세세하게 관리를 받으며 경주마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1년 반을 넘는 휴양기간을 끝낸 진영측에선 무리를 시키지 않기 위해 되도록 만만한 경기만 골라 나가게 되는데, 다리 문제만 빼면 경주마로서의 능력은 출중했던 토케이 니세이는 당연히 연승 행진을 이어가게 된다. 1992년 11월 22일 벌어진 서러브레드계 1급 경기에서 하루산 히코에게 패해 2착을 하기 전까지 무려 18연승을 달성하는데, 이는 2년 후 치어즈 팬시(チアズファンシー)가 19연승으로 갱신하기 전까진 일본 최다연승 기록이었을 정도. 하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말 그대로 만만한 하급대회에만 출전해 양학을 하는 정도였기에 토케이 니세이의 평가는 그렇게까지 높은 편은 아니었고 강호들이 모이는 중상경기에서도 결과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시 되고 있었다.
당시 지방경마, 특히 토케이 니세이가 속한 이와테 경마장에는 "이와테의 괴물"이라고 불리던 스위프트 세이다이[1]와 토케이 니세이의 마방 선배인 그레이트 호프라는 두 말이 쌍벽을 이루며 인기를 끌던 소위 'SG세대'의 시기였다. 하지만 89년생 말인 모리유 프린스(モリユウプリンス)란 말이 급격히 대두하며 시안 모어 기념 경기에선 이 SG 콤비를 압살하며 새로운 왕좌를 차지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토케이 니세이에게 있어 첫 중상경기인 미치노쿠 대상전에는 SG 콤비와 함께 모리유 프린스도 출전하는 상황이었기에 마생 처음으로 인기 1위를 내 주고 경기에 임하게 된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토케이 니세이는 한물 갔다는 평가를 듣던 SG콤비는 물론 신 왕자인 모리유 프린스마저 제치고 레코드 승리를 기록하며 단번에 이와테 최강의 자리에 올라서게 된다.
각부불안을 안고 있으면서도 진영 측의 철저한 관리와 가능한 한 무리가 가지 않도록 타 지방 원정은 최대한 자제하면서 경기를 뛴 결과 이후로도 연승을 이어갔고 이후로도 필생의 라이벌로 자리잡은 모리유 프린스에게 2번 패배한 것과 교류중상인 남부배에서 중앙 소속으로 지방의 교류중상에서 연승을 올리던 라이블리 마운트에게 패배한 총 3패를 제외하면 언제나 1번 인기에 완벽한 승리를 거두는 마생을 보내게 된다.
통산 성적은 43전 39승에 2착 3회 3착 1회라는, 연대율 95%를 넘어서는(특히 41회 연속 연대는 당대의 최고기록), 실로 '이와테의 마왕'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성적이었다.[2]
4. 은퇴 후
성적이 워낙 좋다보니 종마가 되긴 했는데, 혈통이 최우선시 되는 경마업계에서 보잘것 없는 혈통에 거의 이와테에서만 뛴 토케이 니세이의 전국 지명도는 대단히 낮았기 때문에 종마로서는 완벽하게 빛을 보지 못했다. 덕분에 일찌감치 종마도 은퇴해서 이와테의 목장에서 여생을 보내게 되는데, 이는 마주가 "우리 토케이 니세이를 잘 돌봐달라"며 사비를 들여 여생을 지원해 줬기 때문이라고 한다.하지만 2011년 일어난 토호쿠 대지진의 여파로 마주가 큰 피해를 입어 더 이상 지원이 불가능해 지자 주전기수였던 스가와라를 포함해 조교사 등이 발기해 '토케이 니세이 후원기금'을 모집해 겨우 살처분 되는 것을 면하게 된다. 이후 1년여가 지난 2012년 3월, 심부전으로 25세의 나이에 죽었다.
5. 기타
- 주전 기수였던 스가와라 이사오(菅原勲)는 메이세이 오페라의 기수도 맡았었는데, 토케이 니세이와 메이세이 오페라 중 어느쪽이 더 강하냐는 질문에 "오페라도 강해지긴 했는데, 토케이 니세이에 비하면 아직 멀었다. 전성기의 니세이가 두바이 월드컵에 나갔었다면 당연히 이겼을 정도라고 느꼈으니까"라며 단언하기도 했다. 덕분에 이 때까진 아직 "이와테에 그런 말이 있었다더라" 정도의 소문만 듣던 중앙경마 쪽 팬들이 "아니 메이세이 오페라보다 강한 말이 있었다고?"라며 토케이 니세이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고.
- 마일 챔피언십 남부배가 교류중상으로 지정되어 중앙경마 소속의 라이블리 마운트, 오이 경마장의 요시노 킹이라는 강호와 만나 처음으로 2착도 못 하는 패배(그래봤자 3착이었지만...)를 당했는데, 이 당시 미즈사와 경마장은 완전히 아쉬움의 도가니였다고 하며 위닝 런을 하는 라이블리 마운트에게 박수도 쳐주지 않을 정도로 냉랭했다고 한다. 관객들의 이런 반응에 각종 교류중상에서 쾌승을 올리며 지방 팬들에게도 영웅 취급을 받고있던 라이블리 마운트의 기수 이시바시 마모루는 "처음으로 힐(악역)이 된 기분이다"라며 혀를 내둘렀고, 토케이 니세이의 기수인 스가와라 이사오는 "토케이 니세이가 단 1살만이라도 어렸을 때 이 경기가 열렸더라면..."이라며(당시 토케이 니세이는 경기수명이 상대적으로 긴 더트마 중에서도 고령인 9세였다) 아쉬워 했다.[3]
- 1995년도의 NAR 그랑프리 특별 표창마 선정에선 자신에게 마지막 패배를 안긴 라이블리 마운트와 공동으로 수상되기도 했다.
- 이러한 공적으로, 은퇴 후 5년이 지난 2000년 부터 이와테 경마장에선 <도쿄 스포츠신문배 토케이 니세이 기념>이란 경기(M2 클래스, 더트 1600m)를 신설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 필생의 라이벌인 모리유 프린스와는 11번을 붙었서 8승 2패 1무를 기록했다. 하지만 남부배에서 라이블리 마운트가 우승했을 때 토케이 니세이는 3착, 모리유 프린스는 4착이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9승 2패라고 할 수 있을 듯.
6. 경주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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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 1988
그레이트 서 펜| 1989
다이코 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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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그레이트 호프| 1991
타케덴 파이터| 1992
타케덴 만게츠| 1993 · 1994
토케이 니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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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경마·지방경마 전국 교류 경주 지정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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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라이블리 마운트 | 1996
호쿠토 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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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트 그레이드제 도입, 통일 GI(현 JpnI) 지정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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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타이키 셜록| 1998
메이세이 오페라| 1999
니혼 필로 주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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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골드 티아라| 2001
아그네스 디지털| 2002 토호 엠퍼러| 2003
어드마이어 돈| 2004 · 2005
유토피아| 2006 ~ 2008
블루 콩코르드3연패| 2009
에스포와르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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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오로 마이스터| 2011
트랜센드| 2012 · 2013
에스포와르 시티| 2014 · 2015
베스트 워리어| 2016 · 2017
코파노 리키| 2018
르 방 스 레브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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