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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 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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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리스 프레드릭 "텍스" 윈터
Morice Fredrick "Tex" Winter
출생 1922년 2월 25일
텍사스 주 웰링턴
사망 2018년 10월 10일 (향년 96세)
캔자스 주 맨해튼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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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컴튼 주니어 칼리지
오리건 주립대학교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스태프 경력 캔자스 주립대학교 어시스턴트 코치 (1947~1951)
마케트 대학교 감독 (1951~1953)
캔자스 주립대학교 감독 (1953~1968)
워싱턴 대학교 감독 (1968~1971)
휴스턴 로케츠 감독 (1971~1973)
노스웨스턴 대학교 감독 (1973~1978)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롱 비치 캠퍼스 감독 (1978~1983)
시카고 불스 어시스턴트 코치 (1985~1998)
LA 레이커스 어시스턴트 코치 (1999~2004)
LA 레이커스 고문 (2005~2009)

1. 개요2. 일생3. 코칭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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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코치) 1992(코치) 1993(코치)
1996(코치) 1997(코치) 1998(코치)
2000(코치) 2001(코치) 2002(코치)

1. 개요

미국의 농구인으로, 지도자로서는 1990년대 NBA 농구판에 일대 혁신을 가져다 준 트라이앵글 오펜스의 전도사로 손꼽힌다.

2.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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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C 재학 시절의 모습.

1922년에 텍사스 주 웰링턴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에 생계를 위해 온갖 잡일을 해 오다가 어느 날, 한 농구 캠프에서 피트 뉴웰의 볼보이로 일하면서 농구에 관심을 끌게 되었다. 고교 졸업 이후 1940년에 컴튼 커뮤니티 칼리지에 입학한 뒤 오레곤 주립대학교를 다니다가 1943년에 3년간 미합중국 해군에서 복무한 뒤 1946년에 USC에 입학해 농구 선수로 활약하며 스승인 샘 베리(1892~1950) 감독에게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전수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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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트대 감독 시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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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당시의 모습.

1947년에 대학을 졸업한 윈터는 캔자스 주립대학교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이곳에서 잭 가드너(1910~2000) 감독을 3년 동안 보좌하다 1951년, 스물아홉의 나이로 마케트 대학교로 옮겨 처음으로 감독이 되어 2년을 지냈는데, 이는 대학농구 역사상 역대 최연소 기록이었다. 이후 1953년에 캔자스 주립대학교의 감독으로 돌아와 스승에게 이어받은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팀에 적용시켜 감독생활 15년 동안 통산 261승 118패에 빅 8 컨퍼런스 정규시즌 우승 8회, NCAA 토너먼트 진출 6회, 파이널 포 진출 2회를 기록해 찬사를 받았다. 이러한 공로로 윈터는 1958년에 UPI가 선정한 대학농구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받았다. 또 그는 1962년에 자신의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집대성한 <트리플 포스트 오펜스>란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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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대 시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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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비치 스테잇 시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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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동반자 필 잭슨 감독과 함께.

캔자스 스테잇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한 그는 워싱턴대를 거쳐 휴스턴 로케츠의 감독에 부임해 처음 NBA 무대에 데뷔했으나, 자신의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뿌리내리지 못해 휴스턴에 있는 동안 51승 78패를 기록해 금세 쫓겨났다. 이후 1983년까지 노스웨스턴 대학교와 롱비치 스테잇을 거쳤으며, 특히 롱비치 스테잇에선 마이클 와일리와 크레익 호지스 등을 주축으로 1979/80 시즌에 NIT로 진출시켰다. 1985년에 제리 크라우스의 부름을 받아 시카고 불스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들어왔다.

그러나 1989년에 필 잭슨이 오기 전만 해도 자신이 보좌했던 스탠 알벡이나 덕 콜린스 감독은 그의 '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탐탁지 않아했다. 움직임이 너무 복잡해 페이스가 빠른 NBA에는 안 맞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콜린스 감독은 마이클 조던의 재능을 활용하는데 집중했는데, 윈터가 고안한 전술이 조던에게는 부자연스러워 보이기만 했다. 콜린스 감독은 조던이 동료와 공을 나누길 바랬지만 동시에 의구심도 갖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트라이앵글 오펜스 항목에 나와 있지만 이는 공과 선수들이 계속 움직이며 팀원들끼리 공격기회를 공정하게 나눠갖는 전술이었다. 여기서 이 전술이 그동안 대학에서만 쓰이고 그 어떤 NBA팀에서도 쓰이지 않은 이유를 볼 수 있는데 NBA에서는 스타들과 롤플레이어간의 공격력이 천지차이이기 때문이다. 콜린스가 감독하던 88-89시즌의 경우 포인트가드진은 다른 팀에서 벤치 멤버급이던 샘 빈센트와 존 팩슨이 있었는데, 둘 다 못 미더운 모습을 보이자 결국 조던을 PG로 올려야했다. 포워드진의 그랜트와 피펜은 이제 막 주전으로 올라온 셈이고, 그나마 그랜트는 공격기술이 거의 없는 블루컬러 워커. 센터로서 갓 합류한 빌 카트라이트는 공격력을 거의 잃었다. 이런 선수들과 조던이 동일하게 공격권을 나눠갖는가는게 말이 안된다는 것. 실제로 당시 더블/트리플 팀에 시달리던 조던은 수비를 거의 받지 않던 다른 동료들을 제치고 팀내 야투율 1위에 올랐다. 그러나 필 잭슨은 공을 돌리고 다른 선수들에게도 수비가 몰린다면 조던에게 몰리던 수비가 다소 헐거워질 수 있다고 봤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또한 어차피 조던이 팀 내에서 비교불가로 압도적인 공격수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적 적은 공격기회로도 고득점은 올릴 수 있었으며, 트라이앵글만 주구장창 하는건 아니었기에 (비중은 줄었지만) 조던의 아이솔레이션 역시 주공격전술이었다. 실제로 조던은 트라이앵글 도입 후 시카고에서 은퇴할 때까지 풀시즌을 뛴 매년 득점왕에 올랐으며, 트라이앵글이 무너졌을 때 그의 1대1은 불스에 필수적인 전술이었다.

그러나 크라우스의 생각은 달랐다. 그러던 콜린스가 1988/89 시즌이 끝나고 해고된 뒤 '팀'을 중시한 필 잭슨 코치가 감독으로 승진하자 윈터는 즉각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도입하고 조던을 설득해 이를 운영토록 하여 팀이 1991~93, 1996~98년에 두 차례 3번 연속으로 팀이 우승하는 데 공헌을 했다.

1998년에 필 잭슨이 불스를 떠나자 자신도 따라서 떠나 1년을 쉬다가 1999년에 LA 레이커스의 코치가 되어 필 잭슨을 따라가 팀에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적용시켜 1999/2000 시즌부터 세 시즌 연속으로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데 공헌했고, 2004년에 필 잭슨 감독이 잠정 은퇴하자 자신도 은퇴하여 지도자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2005년에 잭슨이 복귀하자 고문으로 따라 복귀하여 2009년까지 원정은 따라가지 않는 대신 주요 선수들에게 전술을 가르치며 종횡무진 활동했다.


2011년에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다만 낭독은 아들이 대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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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세 생신을 맞던 2014년의 모습.

이런 윈터 역시 세월은 이길 수 없는 법. 2009년 캔자스 주립대 농구인 모임에서 암 증세를 호소하기 시작해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고, 말년에 치매 증세를 앓는 바람에 부인과 아들의 간호를 받으며 조용히 집에서 보내다 2018년 10월 10일, 96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

3. 코칭 스타일


텍스 윈터는 그의 저서 <트리플 포스트 오펜스>에서 오펜스 방법 설명을 위해 '바람직한 공격을 위한 일곱가지 원칙'을 언급했는데, 그는 이에 덧붙여 일곱가지 원칙 없이는 좋은 공격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 1. 디펜스를 돌파해야 한다
    각 선수의 능력은 가지각색이다. 선수는 자신이 확실한 슛을 할 수 있다고 느낄 때만 슛을 할 수 있다. 선수들은 확률이 높은 슛, 좋은 슛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또 트라이앵글 오펜스에선 어떤 것보다 골밑 슛이 강조되며, 특히 포스트 플레이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제1선의 프레스를 돌파한 뒤, 거기서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이행한다.
  • 2. 농구는 풀 코트 게임이다.
    속공할 때의 스피드로 기술을 연마할 필요가 있다. 자신에게 맞는 스피드를 찾아 이를 천천히 증가시키는 역할을 해내야 한다. 농구 기술의 변형은 수비로부터 시작한다는 걸 깨닫고 계속 달리는 걸 연습하여야 한다. 여기서 공격은 수비 때의 리바운드, 인터셉트 등을 계기로 시작되는데, 처음엔 속공을 노리고 그 뒤 트라이앵글 오펜스로 이행한다. 이 공격법에선 선수가 어느 위치에 있든 즉시 이행 가능하다.
  • 3. 18~20피트(약 6m 전후)의 면적을 확보한다. 다른 선수가 움직일 수 있는 적절한 행동 영역을 만들 것
    공격은 공간 확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공간이 좁으면 수비가 확대될 위험이 있다. 자기 팀에서 마크당하지 않은 선수 발견 시 정확한 패스로 볼을 연결시킨다. 여기서 행동 영역이란, 선수가 자기 기능을 충분히 활용 가능한 공간을 말하는데, 적절한 공간 확보는 스카티 피펜과 같이 안으로 파고드는 능력이 있는 선수로 하여금 베이스 라인을 돌파할 수 있게 해 준다.
  • 4. 선수와 볼의 움직임에 일관성있는 목적을 갖게 한다
    선수는 다섯이고 볼은 하나다. 선수들은 경기 중 8할 이상은 공을 갖고 있지 않는다. 그러니 선수는 수비를 떼버리고 자유롭게 되도록 계속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어떤 선수든 항상 공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 5. 슛을 쏜 다음에는 강력한 리바운드 태세를 갖추되, 수비와의 균형을 고려하여야 한다
    이는 '위치'에 관한 사항이다. 처음엔 센터 플레이어가 자리를 잡는 것과 동시에 다른 선수들도 2대 2 공격자세를 취한다. 포워드나 그 위치에 있는 선수는 골과의 각도가 45도인, 그러니까 패스와 커트 인 플레이를 노릴 위치를 잡아야 한다. 그런 식으로 윙 사이드(볼 위치 반대편)의 파워 포워드가 강한 리바운드를 할 자리를 확보하게 한다.
  • 6. 볼을 가진 선수가 어떤 선수에게라도 패스할 수 있게 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이걸 바탕으로 공격이 수비를 압도하여야 한다.
    누구라도 득점은 가능하다. 선수들은 언제라도 득점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상대 팀이 공격을 예측 못하도록 하여 수비를 무너뜨릴 기회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 선수가 움직일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해 둔다.
  • 7. 모든 선수의 능력을 활용하되 베스트 슛터는 확실한 슛을 쏘게 한다.
    리바운더에겐 리바운드를, 베스트 드라이버에겐 드라이브 인을 할 기회를 준다. 이미 정해진 세트 플레이로 선수들의 재능을 제한하기보다는, 틀에 박히지 않는 플레이를 할 기회를 준다. 코치의 임무 중 하나는 선수의 소질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며, BJ 암스트롱 같은 케이스의 경우 그가 상대의 수비를 흐뜨러트리는 능력을 활용해야 할 것이다.

이를 종합해 보면, 트라이앵글 오펜스는 선수에게 맞추어 게임을 운영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