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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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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 · 후지 · 파호로 · 사안석 완안소란 · 진규 · 허고
110권 「양운익등전(楊雲翼等傳)」 111권 「고리갑석륜등전(古里甲石倫等傳)」
양운익 · 조병문 · 한옥 · 풍벽 · 이헌보 · 뇌연 · 정진 고리갑석륜 · 완안와가 · 살합련 · 강신 · 오림답호토 · 완안사열 · 흘석렬아오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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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안합달 · 이랄포가 완안새불 · 완안백살 · 적잔합희 백화 · 사묘애실 · 석말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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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권 「순리전(循吏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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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복 · 무도 · 흘석렬덕 · 장특립 · 왕호
129권 「혹리·영행전(酷吏佞幸傳)」
고염산 · 포찰합주 · 소이 · 장중가 · 이통 · 마흠 · 고회정 · 소유 · 서지국
130권 「열녀전(列女傳)」
사리질 · 강주주 · 완안아로진 · 풍묘진 · 포찰명수 · 섭순영 · 장봉노
131권 「환관·방기전(宦官方技傳)」
양충 · 송규 · 반수항 · 유완소 · 장종정 · 이경사 · 기천석 · 장원소 · 마귀중 · 무정 · 이무 · 호덕신
132권 「역신전(逆臣傳)」
병덕 · 당괄변 · 오대 · 대흥국 · 도단아리출호 · 복산사공 · 도단정 · 이노승 · 완안원의 · 흘석렬집중
133권 「반신전(叛臣傳)」
장각 · 야율여도 · 이랄와간
134·135권 「외국열전(外國列傳)」
서하 · 고려 , 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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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국지(大金國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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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82647><colcolor=#ece5b6>
금 초대 황제
태조 | 太祖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Wanggiyan_Aguda.jpg
출생 1068년 8월 1일
여진 회령부 회령현 완안부
(現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아청구)
사망 1123년 9월 19일 (향년 55세)
상경 회령부 행궁
(現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아청구)
능묘 예릉(睿陵)
재위기간 완안부 추장
1113년 10월 ~ 1115년 1월 28일
초대 황제
1115년 1월 28일 ~ 1123년 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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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82647><colcolor=#ece5b6> 성씨 완안(完顔)
중국식 : 민(旻)
여진식 : 아골타(阿骨打)
부모 부황 세조
모후 익간황후
형제자매 11남 중 2남
배우자 성목황후, 흠헌황후, 광의황후, 선헌황후
자녀 16남 3녀
신장 8척[1]
묘호 태조(太祖)
존호 대성황제(大聖皇帝)
시호 응건흥운소덕정공인명장효대성무원황제
(應乾興運昭德定功仁明莊孝大聖武元皇帝)
연호 수국(收國, 1115년 ~ 1116년)
천보(天輔, 1117년 ~ 1123년)
}}}}}}}}} ||
파일:태조(금) 동상.jpg
태조 동상

1. 개요2. 생애3. 여담4. 대중매체에서5.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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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금나라의 초대 황제. 여진족- 만주족 계통 정복왕조의 첫 문을 연 인물. 묘호는 태조(太祖). 원래 그의 이름은 온얀 아쿠타(Won-{g}ian Akutta)이며 중국어로는 완안아골타(完顔阿骨打, 완옌아구다)이다. '아골타'(阿骨打)는 여진어 '아쿠타'(Akutta)를 음차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 '아구타' : 여진어 발음에서 변형된 것.
  • '아구다' :중국어 발음.
  • '아골타' : 한국식 한자음 그대로 읽은 것.

등으로 알려져 있다.

2. 생애

완안핵리발(完顔劾里鉢)의 차남으로 키는 8척 장신이었다. 당시 송나라 척 단위인 31.68㎝로 계산하면 253㎝가 되지만 금나라 척의 단위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사실 확인은 불명이다. 형인 오아속(烏雅束)이 1113년에 죽는데 오아속은 고려의 윤관 장군이 동북 지역을 원정할 때 여진족의 추장이 바로 그였다. 그때 아골타도 형을 따라서 고려군과 맞서 싸우기도 했다. 완안오아속은 금나라 건국의 기틀을 실질적으로 다진 인물이다. 《삼국지가로 치면 손책 포지션. 형이 죽자 동생인 아골타가 완안부 여진의 수장이 되었다. 아골타는 요나라 지배하의 여진족을 모아 큰 세력을 얻은 뒤 요나라에 선전포고를 했다. 아골타가 요나라에 반기를 든 것은 동아시아 역사에서 반복되는 양태였다.

요사》에 의하면, 아골타는 대를 잇기 전인 1112년 요나라의 암군인 천조제가 관례에 따라 여진의 추장들을 초청해 베푼 연회 석상에서 정면으로 황제의 명을 거부한 적이 있었다. 아골타는 이 연회에서 요나라의 퇴조와 황제의 지도력 부재를 목격한 것이다. 자신이 추장에 오른 후에는 국상을 요나라에 통보하지 않았고, 이에 대해 요나라의 문책이 있자 반기를 들었다.

아골타는 1114년 요나라를 상대로 선전포고한 후 여러 차례의 전투에서 연전연승했고, 1114년부터 납림하(拉林河)와 출하점(出河店)에서 요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에 다급해진 요나라는 고려에 아골타가 이끄는 여진군에 대한 협공을 요청했으나 고려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완안아골타는 연속으로 요군을 영강주에서 격파했고, 또 뒤이어 여러 주·현을 점령했으며, 급기야는 개원(開原)·농안(農安) 지방의 숙여진과 요동(遼東)지방의 발해인을 회유하여 1115년 황제로 즉위하고, 국호를 대금(大金), 연호를 수국(收國)이라 했다.

그렇게 여진족은 스스로 금나라를 세웠고, 황제가 된 아골타는 여세를 몰아 요동 지역의 황룡부(黃龍府)를 함락시켰다. 이에 요나라는 다시 한 번 고려에 원병해줄 것을 요청했다. 고려 조정은 요나라와의 특별한 관계를 고려해 원군을 보내자는 출병론자와 김부식 등 다른 나라들의 문제에 끼어들어 분쟁에 휘말리는 것은 나라의 앞날을 위태롭게 하는 위험한 일이므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출병 불가론자 간의 의견이 대립했지만 결국 출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같은 시기에 아골타는 고려에 사신을 보내 금나라가 곧 요나라를 정복할 것임을 알렸다.

이에 고려 조정은 요나라가 멸망의 위기에 있다고 판단, 더 이상 요의 연호를 쓰지 않고 60갑자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요나라의 황제인 천조제(天祚帝) 야율연희(耶律延禧)는 무려 70만 명의 대군을 편성하여 금나라를 공격했지만 도리어 호보답강 대전에서 대패를 당했다. 완안아골타는 그렇게 대승을 거두며 요나라를 물리쳤고, 그 기세를 몰아서 요동을 공격했다.

한편 송나라는 신흥 세력으로 급부상 중이던 금나라를 활용해 요나라에 빼앗긴 연운 16주의 회수를 계획했다. 휘종은 1116년 고려에서 온 사신 이자량을 특별히 대우한 후 비밀리에
다음에 올 때는 금나라 사람 몇을 데리고 와 달라.

고 청했는데, 송 휘종의 의도를 알아차린 이자량은
여진은 사람 얼굴에 짐승의 마음을 가졌고, 오랑캐 중에서도 가장 욕심 많고 추악하니 상국과는 통하는 것이 불가합니다.

고 했다. 여진족과 부대꼈던 경험을 나름 조언이라고 흘린 거였는데, 송나라 신료들은 고려가 송나라와 금나라 사이의 통교를 방해하는 것이라고 오해하고 금나라와 직접 접촉할 것을 건의했다. 송 휘종은 해로를 이용해 금나라 측에 요나라 협공을 제의하면서 다음 조건을 제시했다.
1. 송나라는 요나라에 제공하고 있는 세폐를 금나라에 제공한다.
1. 요나라 협공에 있어 금나라는 만리장성을 넘어 하북에 들어오지 않는다(연운의 반환을 의미).
1. 금나라는 요나라와 화평 협약을 맺지 않는다.

아골타도 이에 응하면서(해상의 맹) 송나라와 금나라 양국의 군대는 1121년 요나라를 협공했다.

금군은 요군을 격파하고 파죽지세로 진격해 1120년 요나라의 수도인 상경임황부(上京臨潢府)를, 1121년 말에는 중경대정부(中京大定府)를 함락했다. 상경임황부가 함락될 때 요나라 황족이었던 야율대석은 서성으로 도주해 중앙아시아의 이리간(발하쉬 호) 부근에 카라 키타이를 세워 1227년까지 약 100년 간 거란의 명맥을 유지했다. 카라 키타이는 훗날 칭기즈 칸의 몽골 제국에 의해 멸망했다. 한편 강남에서 일어난 방랍의 대란으로 인해 출병하지 못했던 송군은 그 해에 겨우 북방에 출병하여 요나라의 천조제가 있는 연경을 공격했다. 송군은 요군에 연전연패를 당하고, 승리할 수가 없게 되자 지휘관 동관은 금나라에 원군을 요청했다. 해상의 맹약에 의해 금나라는 장성 이남에 출병하지 않기로 약속했지만, 송나라의 요청에 의해 출병하여 순식간에 연경을 함락시켰다. 이 결과 맹약대로 연운 16주 가운데 연경 이남의 6주는 송나라에 할양되었지만, 금군은 연운 이북을 약탈하고 연운 16주의 백성들도 금나라로 이주시켰다.

그러나 이런 이유 때문에 이곳에서는 세금을 거둘 수가 없었다는 점에서 훗날 금나라의 멸망을 불러왔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어쨌든 금나라는 출병하는 대가로 군량미 20만 석·은자 20만 냥· 비단 30만 필 등을 북송에 요구했고, 송나라는 울며 겨자먹기로 조건을 수락해야 했다. 완안아골타는 요나라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고 회령부로 돌아오는 길에 1123년 병사했고, 동생 완안오걸매가 금 태종으로 즉위한 이후 금나라는 중원의 새로운 패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3. 여담

  • 고려 제20대 임금 신종의 처음 이름이 "민(旼)"으로 아골타의 한자 이름과 같았다. 당시 고려는 금나라를 상국으로 대하고 있었는데도 왕자의 이름을 금 태조와 같게 한 것이다. 즉 피휘를 대놓고 무시한 것이었다.
  • 《고려사》의 기록에 따르면 제16대 예종의 재위기 때 아골타가 형제의 맹약을 제의하는 조서를 보낸 적이 있었다고 한다.
    계축 금(金)의 임금 아골타(阿骨打)가 아지(阿只) 등 5인을 보내 서한을 보내 이르기를, “형인 대여진금국(大女眞金國) 황제는 아우인 고려국왕에게 문서를 보냅니다. 우리는 할아버지 때부터 한쪽 지방에 끼어 있으면서 거란을 대국(大國)이라고 하고 고려를 부모의 나라[父母之邦]라고 하면서 조심스럽게 섬겨왔습니다. 그런데 거란이 무도하여 우리 강역을 유린하고 나의 인민을 노예로 삼았으며, 아무 명분 없이 누차 군사를 일으켜왔습니다. 나는 부득이하게 그에 항거하였는데, 하늘의 도움을 얻어 그들을 섬멸하게 되었습니다. 생각하건대 왕은 우리와의 화친을 허락하고 형제의 관계를 맺어 대대로 무궁한 우호관계를 이루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아울러 좋은 말 1필도 보냈다.

    (癸丑 金主阿骨打遣阿只等五人, 寄書曰, “兄大女眞金國皇帝, 致書于弟高麗國王. 自我祖考, 介在一方, 謂契丹爲大國, 高麗爲父母之邦, 小心事之. 契丹無道, 陵轢我疆域, 奴隷我人民, 屢加無名之師. 我不得已拒之, 蒙天之祐, 獲殄滅之. 惟王許我和親, 結爲兄弟, 以成世世無窮之好.” 仍遺良馬一匹.)


    - 고려사 예종 12년 1117년 03월 25일 (음)
그 선조이신 태사(大史) 오고랄(烏古剌)은 평주(平州)의 산수(山水)가 빼어난 기운을 주었네. 짐짓 우리를 일컬어 부모의 나라[父母鄕]라고 하고,금나라 사람들의 시에 이르기를, ‘연지(燕地)는 신선이 사는 곳[神仙窟], 삼한(三韓)은 부모의 나라[父母鄕].’라고 하였으니, 대개 근본을 잊지 않은 것이다., 형제관계를 맺어 사신을 통하였네.신이 일찍이 식목집사(式目執事)가 되어 도감(都監)의 문서를 열람하였는데, 우연히 금국의 조서 2통을 얻었다. 그 서두에 모두 이르기를, ‘대금국(大金國) 황제가 고려황제(高麗國皇帝)에게 글을 부친다. 운운.’이라 하였으니, 이것이 형제관계를 맺은 증거이다.
(其先大史烏古剌, 山水平州鍾秀氣. 故應謂我父母鄕,金人詩云, ‘燕地神仙窟, 三韓父母鄕.’ 蓋不忘本也., 結爲兄弟通信使.臣嘗爲式目執事, 閱都監文書, 偶得金國詔書二通. 其序皆云, ‘大金國皇帝, 寄書于高麗國皇帝云云.’ 此結兄弟之訂也.)

- 제왕운기 권상 金祖名旻姓完顔 (금(金) 태조는 이름이 민(旻)이고 성은 완안(完顔)이니)
예종은 그 제의를 무시했고 2년 뒤 완안아골타를 '너(彼)'라고 부른 국서를 보냈는데 이번엔 아골타가 무시했다고 한다.
정축 중서주사(中書主事) 조순거(曹舜擧)을 보내 금(金)에 예빙(禮聘)하였으나, 보낸 서신에 ‘하물며 저 근원이 우리 땅에서 시작되었다.’라는 구절이 있자 금 임금이 거부하고 받지 않았다.
(丁丑 遣中書主事曺舜擧, 聘于金, 其書有‘况彼源發乎吾土’之語, 金主拒不受.)

- 고려사 예종 14년 1119년 08월 03일 (음)

4. 대중매체에서

  • 소설 《 묵향》에서는 장인걸의 도움으로 금나라를 세우고 그를 형제처럼 믿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상당히 비중있게 나오지만 묵향이 금나라에 쳐들어가 설친 여파로 장면도 안 나온 채 살해당했다고 언급된다.
  • < 고우영 십팔사략>에 등장. 천조제가 여진 땅을 방문했을 때 춤을 추라는 명령을 어긴 장면에서 나이 묘사 오류가 있다. 실제 아골타는 천조제보다 7살 연상이었으나 해당 장면에서는 중년 정도로 나온 천조제와 달리 젊은 추장으로 묘사되었다.
  • 일본 상업지 작가인 완얀아구다의 필명은 금태조에게서 따왔다. 심지어 이 작가의 홈페이지 이름도 여진족. 일본에서는 완얀아구다의 홈페이지가 북방 민족 관련 역사 홈페이지로 오해받는 일이 있다고 한다. 대체 왜 필명을 금태조에게서 따왔는지는 알 수 없다.

5. 같이 보기



[1] 출처 《금사》에 키(身高)가 8척(八尺)이라 나온다. 당시 송시대에는 1척이 31.68cm 정도였다고는 하지만 워낙 비현실적인 키가 나와서 금의 척단위가 달랐을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