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04 08:57:51

태원(정안국)



太元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3. 기타

1. 개요

단공 2년(989년), (정안국) 왕자(王子)가 여진의 사신을 통하여 말과 새깃으로 장식된 명적을 바쳤다.
端拱二年, 其王子因女眞使附獻馬·雕羽鳴鏑.
순화 2년(991년), (정안국) 왕자(王子) 태원(太元)이 여진의 사신을 통해 표를 올렸는데, 그 뒤로는 다시 오지 아니하였다.
淳化二年, 其王子太元因女眞使上表, 其後不復至.
송사 외국열전 정안국

정안국의 왕자. 문헌통고에는 대원(大元)으로 기록되어 있다.

2. 생애

989년 정안국의 왕자가 여진족을 통해 송나라에 공물을 바치는데, 이 인물이 태원과 동일인인지는 알 수 없다.

991년 여진족의 사신을 통해 북송에 표를 올린 기록이 남아있고, 이는 정안국 열전에서 송과 마지막을 교섭한 기록이다. 다만 국왕이 아닌 왕자가 표를 올린 점을 볼 때, 당시 정안국은 요나라의 여진정벌(984년 ~ 985년) 때 큰 타격을 입어서 와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991년 이후 정안국 - 북송의 교섭이 중단된 것은 같은 해 2월 요나라가 압록강 하구에 성을 쌓은 것도 영향이 컸을 것이다.[1]

3. 기타

태원이 열만화 이후 정안국의 왕족인 오씨(烏氏)였는지 아니면 정안국의 와해 이후 새로 일어난 부흥운동 세력의 왕자라 성씨는 발해의 국성인 대(大=太)씨였고 이름만 원이었는지는 기록의 부재로 불분명하다. 다만 정안국 멸망 이후에 들어선 올야국에서도 여전히 오씨가 주도권을 차지했던 것으로 보아 오씨 왕족의 후계였을 가능성이 더 높은데, 이럴 경우 그의 전체 성명은 오태원(烏太元)이 된다.

[1] 二月 甲子, 建威寇・振化・來遠三城, 屯戍卒.”- 출처: 요사(遼史) 권13, 본기13, 성종 통화 9년(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