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25 07:59:00

크누트 노르달

파일:Knut Nordahl.jpg
이름 크누트 에리크 알렉산데르 노르달
(Knut Erik Alexander Nordahl)
생년월일 1920년 1월 13일
사망년월일 1984년 10월 28일 (향년 64세)
국적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웨덴
출신지 회르네포르스
포지션 하프백
신체조건 186cm | 80kg
소속팀 IFK 노르셰핑 (1941-1949)
AS 로마 (1950-1952)
데게르포르스 IF (1952-1953)
국가대표 26경기 1골 (1945-1950)
가족관계 동생 군나르 노르달



1. 개요2. 생애
2.1. 선수 생활2.2. 이후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4. 뒷이야기5. 수상
5.1. 클럽5.2. 국가대표5.3.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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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웨덴의 전 축구 선수.

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노르달은 고향팀 회르네포르스 IF에서 센터 포워드로 선수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러나 노르달은 1941년에 IFK 노르셰핑으로 팀을 옮기면서 수비수가 되었고 1950년까지 노르셰핑에서 활약했다. 당시의 노르셰핑은 1942-43 시즌에 이미 알스벤스칸 우승을 차지했던 스웨덴의 강호였지만 동생 군나르 노르달이 1944년에 합류하고 알스벤스칸 4연패를 이뤄냈다.

노르달은 1950년, 수네 안데르손, 스티그 순드크비스트와 함께 AS 로마로 이적해서 이탈리아 무대에 진출했지만 로마는 노르달의 이적 첫 시즌에 세리에 B로 강등당했다. 로마는 다시 이듬해에 세리에 A에 복귀했지만 노르달은 다시 세리에 A에서 뛰지 않고 스웨덴으로 복귀했다.

2.1.2. 국가대표

노르달은 동생 군나르 노르달과 함께 1948 런던 올림픽에 출전했다. 크누트는 2경기에 출전해서 전경기에 출전했던 동생만큼 큰 활약을 보이진 못했지만 형제가 금메달을 목에 걸고 복귀할 수 있었다.

군나르는 1949년에 AC 밀란으로 떠나 계속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했다. 여기에 스웨덴 축구 협회의 당시 아마추어리즘 고수로 인해 FIFA 월드컵 출전 기록이 없었지만 크누트는 1950년 월드컵에 참가할 수 있었다.

크누트는 월드컵에서 결선 리그 첫 경기였던 브라질전까지 3경기를 뛰었다.

2.2. 이후

노르달은 1984년에 사망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노르달은 다양한 포지션에서 뛸 수 있는 매우 다재다능한 선수였으며 환상적인 슬라이딩 태클과 엄청난 힘, 탄탄한 패스 범위와 적절한 기술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스웨덴에서 더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쳐 좋은 득점 기록을 냈고 이탈리아에서는 주로 하프백으로 기용되었다.

4. 뒷이야기

  • 크누트 노르달은 1949년에 스웨덴의 골든볼인 골트불렌을 수상했는데 1947년에는 동생 군나르 노르달, 1948년에는 형 베르틸 노르달이 이미 수상했었다.

5. 수상

5.1. 클럽

5.2. 국가대표

5.3. 개인

  • 골트불렌 1회: 1949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