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공화국 타밀나두주의 도시 | ||
쿰바코남 TA : கும்பகோணம்[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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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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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행정구역 | 탄자우르 지구 | |
면적 | 42.95km² | |
인구 | 140,156명 (2011) | |
공용어 | 타밀어 | |
종교 |
힌두교 93.3% 이슬람교 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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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대 | UTC +5:30 (IST) | |
지역번호 | 0435 | |
우편번호 | 612 001 ~ 612 006 | |
차량번호 | TN 68 | |
웹사이트 | 쿰바코남 시정부 홈페이지 |
1. 개요
인도 동남부, 타밀나두주 중부에 위치한 도시. 2011년 기준 인구는 약 14만 명으로, 인구 기준 타밀나두주 내 25위권 소도시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도시로 꼽히며, 마두라이, 탄자우르, 칸치푸람 등과 함께 타밀나두의 대표적 역사 도시이다.티루치라팔리, 탄자우르 등과 더불어 남인도 서부 해안에 면한 서가츠 산맥에서 발원하여 카르나타카주 깊숙이 흘러내려가 타밀나두주 중앙부를 가로질러 인도 동남해안으로 흐르는 카위리강(காவிரி[Kāviri] ஆறு, Cauvery River)을 끼고 있다. 전통적으로 탄자우르는 각종 수공업이 발달한 곳이었으며 또한 타밀 지역에서 중요한 교육 도시 중 하나로 근세와 19세기까지도 번성한 곳이었지만, 오늘날 경제적으로는 그리 크게 융성하지 못한 곳으로 관광업과 어느 정도의 수공업이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2. 역사
쿰바코남 지역에 언제부터 인류가 살기 시작했는지는 확실히 파악하기 어려우나, 적어도 상감 시대(기원전 300년에서 기원후 300년 사이)부터 도시가 존재하였고, 이때 고대 촐라 왕조(전기 촐라)의 도읍 중 하나가 오늘날의 쿰바코남 지역에 있었음이 유력하다. 약 7세기 무렵 당시 타밀 지역을 지배한 팔라바 왕조와 판디아 왕조(중기 판디아) 산하 군소 세력이었던 촐라 영주의 도읍 중 하나이기도 했다.이후 쿰바코남이 주요 세력의 수도가 된 경우는 없었지만, 중세 촐라 제국의 발흥기인 9세기에 촐라의 수도와 가까운(8km 거리) 도시로 크게 번성하였다. 촐라 제국 시대 이후로 쿰바코남은 후기 판디아 왕조(판디아 제국), 비자야나가르 제국, 탄자우르 나야크국, 탄자우르 마라타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18세기 후반, 마이소르 왕국의 하이데르 알리와 티푸 술탄이 동남인도로 원정을 왔을 때 쿰바코남도 마이소르군에 약탈되고 불에 타 도시의 세가 크게 쇠하였다.
1799년 탄자우르 마라타 왕국은 쿰바코남을 영국 동인도 회사로 양도했고, 쿰바코남은 힌두교 교육 기관 및 영국식 근대 교육 기관이 다수 세워지며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까지 일명 '남인도의 케임브리지'로 불릴 정도로 마드라스 관구에서 중요한 교육 도시가 되었다. 1854년 쿰바코남에 세워진 영국식 교육 기관 아츠 칼리지(Government Arts College)는 수학, 철학, 역사학 등 근대 서양 학문과 함께 당대 타밀 르네상스로 새로 정리되기 시작한 타밀 문학 및 역사학 등을 타밀 엘리트에게 교육하는 교육 기관 중 하나로, 수학자 스리니바사 라마누잔 등 당대 유수의 인물들을 배출[2]하였다.
3. 사적
쿰바코남은 도시 전체에 퍼져 있는 다양한 사원으로, 도시마다 다양하고 특색 있는 사원을 보유한 타밀나두에서도 유명한 곳이다. 오늘날 쿰바코남에는 180곳 이상의 사원이 있으며, 가장 오래된 아디 쿰베수와라르 사원(ஆதி கும்பேசுவரர் கோயில், Adi Kumbeswarar Temple)은 7–9세기에 세워진 시바파 힌두교 사원으로 16세기에 개수되었다. 아이라와데수와라르 사원(ஐராவதேசுவரர் கோயில், Airavatesvara Temple)은 12세기 촐라 제국의 라자라자 2세가 지은 사원으로 탄자우르, 강가이콘다촐라푸람의 사원들과 함께 '촐라 시대의 대사원들'이라는 항목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사원이 많다 보니 독특한 사원들도 있는데, 인도 전체에서도 드문 브라흐마를 모시는 사원이라든가, 각종 천체( 태양,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등)에 대응하는 신을 모신 사원들[3]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