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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쿠스미 코하루의 모닝구무스메 활동을 정리한 문서.모닝구 무스메 멤버로서 활동하다 그룹을 졸업하고 패션 모델이자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업프론트 그룹의 자회사인 저스트프로 소속이었으나, 2016년 11월 30일 자로 소속사와의 계약이 해지되었다.
실력에서 에이스는 결코 아니었으나 오디션에서부터 '미라클'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그룹의 비쥬얼 에이스로 활동했다. 데뷔 전 층쿠가 직접 쿠스미가 사는 니가타까지 찾아가서 픽업할 정도로 그룹의 에이스 포지션이였다.[1]
그러나 졸업 이후의 잘못된 처신으로 모닝구 팬들에게 크나큰 배신감을 안겼고, 결국 반쯤 흑역사 취급을 받게 되었다. 자세한 경위는 하단 라디오 대폭주 사건 항목 참조.
1.1. 모닝구 무스메 재적 당시
- 초등학교 6학년 때 여성 아이돌 그룹 모닝구 무스메의 오디션에 응모하여 프로듀서 층쿠♂로부터 "미라클급"이라는 평을 얻었다. 다만 이 미라클 급이라는 평은 당시 하락세이던 모닝구 무스메의 대중에 관심을 얻기 위한 측면이긴 했다. 당시 7기 오디션은 사상 처음으로 '해당자 없음'이란 결과가 나와, 재오디션을 실시한 상태였기 때문였고 후술할 개인적 실력 차이나 화제성에서 기존 멤버들과 현격한 차이가 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2] '모닝구무스메 오디션 2005'에 참가하여, 2005년 5월, 7기 멤버로 그룹에 12세의 나이로 가입(데뷔)하였다. 당시 쿠스미는 니가타에 살고 있었는데 이시카와 리카등 모닝구무스메 멤버들이 쿠스미의 학교까지 찾아가서 가입을 발표 하였다. 그 후 5일 뒤에 일본 무도관에서 첫 무대에 올랐다.
- 소속사의 엄청난 푸시와 솔로 성우 활동의 성공 덕분에 솔로 싱글들은 본체를 뛰어넘는 인기를 구사했다. 동년 발매된 본체의 ' 女に 幸あれ'가 5만장 팔릴 때 쿠스미가 부른 키라링☆레볼루션의 수록곡 발랄라이카는 7만 2천장이 팔리면서, 그 해 하로프로젝트의 전체 싱글 판매량 1위를 차지했을 정도다. 오리콘 첫등장 8위를 기록하였다. 어찌보면 데뷔 때 층쿠의 '미라클'이라는 평가는 결론적으로 성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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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들도 쿠스미를 두고 자유인 캐릭터로 평가한다. 말 그대로 자유분방! 일본어로는
마이페이스 느낌이다. 무표정할 때의 포스와 입 벌리고 특유의 하이톤으로 꺄꺄 할 때의 차이가 엄청나다!
1.2. 츠키시마 키라리
- 2006년 4월에 TV도쿄계의 애니메이션 키라링☆레볼루션의 주인공" 츠키시마 키라리"역으로 성우에 데뷔해, 7월에는"츠키시마 키라리 starring 쿠스미 코하루 (모닝구무스메.)"로서 자신의 첫 솔로 싱글 「 사랑☆일까」를 발매했다. 작곡은 오다 테츠로.10월에는 2번째 싱글 「 발랄라이카」를 발매해, 매상 7.2만매를 기록.오리콘 8위를 기록했다.
- 그후에도 '해피☆' 오리콘 2위(2007년), ' 찬스!'(2007년), '파판케이크'(2008년), '해피☆해피' 선데이!(2009년)를 더한 6매의 싱글, 그리고 「☆☆☆(삼성)」(2007년), 「키라링☆랜드」(2007년), 「키라링 겨울」(2008년)이라고 하는 3매의 앨범에 가세해 베스트 앨범에 해당하는 「베스트☆키라리」(2009년), 합계 4매의 앨범을 발매하기에 이르렀다
- 「모닝구무스메.」팬 뿐만 아니라 「반짝반짝☆레볼루션」을 애호하는 아이나 애니메이션 팬등으로부터의 인기를 획득했다.「작은 아이는 물론, 어머니나 고교생의 아이에게까지 역명으로 불리거나」하는 등, 자신의 지명도를 비약적으로 상승시키는 계기가 된 것이 이" 츠키시마 키라리"의 일련의 활동이었다.
1.3. 모닝구 무스메 졸업 후
- 2009년 9월 19일 모닝구무스메/하로프로를 졸업한다는 소식이 발표되었다. 졸업일은 12월 6일 공연이다. 졸업 발표부터 졸업까지 불과 3개월에 불과한데, 투어 도중에 쿠스미의 졸업 요구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졸업 후에는 모델로 활동할 계획이라고 한다. 성우로서 활동은 불명.
- 2009년 12월 6일 모닝구무스메 가을투어 "나인스마일"의 마지막 공연이 열린 도쿄후생연금회관에서 모닝구무스메 그리고 하로프로를 졸업했다.
- 2010년에는 야마자키 제빵 "훈와리 식빵"의 TV 광고에 출연. 당시 블로그를 오픈했었는데 팬들에게 페타(일본 아메바 블로그의 방문 흔적 남기기 기능)를 찍어주는 이벤트를 해준다던가 건강 오타쿠라는 컨셉을 잡아 미니 사진집도 찍어서 올려주는 등 나름대로 팬서비스를 해주기도 했었다.
- 이듬해 2011년에는 모닝구 무스메 OG인 나카자와 유코, 이이다 카오리, 아베 나츠미, 야스다 케이, 야구치 마리, 이시카와 리카, 요시자와 히토미, 오가와 마코토, 후지모토 미키 9명과 함께 새 그룹 드림 모닝구 무스메의 멤버가 되었다.
- 2011년에 발표한 본인의 에세이집 「17歳の転職(17세의 전직)」에서 "장래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는 시간이 없이 지나가는 날들이 많아져 지금의 생활의 의문을 느꼈고,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결심 했기 때문[3]"이라고 밝혔다. 해당 관련 기사 그러나 2013년 1월 아카시야 산마가 진행하는 MBS라디오 방송 '영타운 토요일'에서 쿠스미는 자신의 졸업 이유를 "모닝구 무스메를 17살에 탈퇴한 것은 '지금이라면 (아직) 되돌릴 수 있겠다", "아이돌은 남자들에게 아첨하는 것", "모닝구 무스메가 꿈이라니. 그건 거짓말이다" 등의 망언을 잇달아 발언하여 문제가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라디오 대폭주 사건에서 후술.
[1]
다만 데뷔 전부터 소속사와 프로듀서의 전폭적 푸시를 받았던 것에 비해 인성과 태도, 실력문제가 대두되면서 팬들로 부터 큰 비난을 받게 되었다.
[2]
이후에 해당자 없음이 발표된 모무스 오디션은 12기 미래소녀, 13기 신세기 오디션이 있다. 12기는 골든 오디션으로 재실시하여
오가타 하루나와
노나카 미키를 선발했으며, 13기 오디션은 재실시 대신 연수생을 투입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꾼다.
[3]
「忙し過ぎて、将来のことをゆっくり考える時間もなく、日々が過ぎてしまう」生活に疑問を感じ、「本当に自分のやりたいことをやろう」と決意したと明かし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