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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마르 (스웨덴) | ||
- 스웨덴어: Kalmar
1. 개요
스웨덴 남동부에 위치한 칼마르 주의 주도로 발트해와 인접한 항구도시이며, 욀란드(Öland) 섬과는 대교로 이어진다.2. 역사
전설에 따르면 노르웨이의 바이킹 왕 올라프 2세가 배를 타고 이곳에 당도했다고 한다. 11세기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며, 12세기에 마을의 기반이 세워졌다.덴마크의 여왕 마르그레테 1세는 이 도시에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의 귀족들을 불러모아 칼마르 연합(Kalmarunionen)을 창설했고, 그녀의 후계자인 포메른의 에리크는 1397년 6월 17일, 칼마르의 시립교회[1]에서 대관식을 치르며 3국의 왕으로 즉위했다. 당시 칼마르는 덴마크령 스칸디나비아 영토인 스코네, 블레킹에, 할란드와 인접한 국경도시이자 군사적 요충지로 수 차례 덴마크에게 피해를 받았다.
1557년,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1세 바사는 죽기 전 맏아들 에리크에게 스웨덴 태자 자리와 스몰란드 공작령을 주었고, 에리크 14세는 왕이 되기 전 칼마르 성(Kalmar Slott)과 스톡홀름을 왔다갔다했다. 이후 이복동생 요한이 칼마르를 접수한 후 칼마르 성을 현재의 르네상스 양식으로 바꾸었다.
1611~13년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4세가 일으킨 칼마르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1658년 로스킬레 조약이 체결되며 스코네, 블레킹에, 할란드가 스웨덴 영토로 편입되자 군사적인 요충지로서의 입지를 상실하였고, 1689년에는 칼 11세가 스웨덴 해군의 모항이 될 새로운 도시로 칼스크로나를 건설하면서 완전히 빛이 바랬다.
3. 현재
봄바디어와 볼보 공장이 빠져나가며 많이 침체된 상황. 지금은 9,000여명의 대학생들과 연구원들이 겨우 먹여살리는 소도시이다.4. 기타
1603년부터 1915년까지 존속했던 칼마르 교구의 중심지였다.동네에 자전거도로가 정말 많다.
볼거리는 칼마르 성이 유일하다. 다만 스웨덴에서는 몇 안되는 바사 왕조의 유산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성이고, 스웨덴 사람들도 많이 찾는 관광지이다.
[1]
1678년 파괴되어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