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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의 장성. 콜로브라트-크라코프스키 백작.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7년 전쟁에서 활약했다.2. 일생
프란츠는 1689년 12월 8일 열 명의 아이들 중 아홉번째로 태어났다. 그가 속한 콜로브라트 가문은 보헤미아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자랑하는 귀족 가문 중 하나였고, 아버지는 보헤미아의 궁정장관인 콜라브라트 백작 요한 프란츠이며, 어머니는 안키솔라 백작부인 엘레노라 클라우디아다. 1692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어떤 재산도 상속받지 못한 프란츠는 오스트리아 황궁의 시종으로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1709년, 프란츠는 제국군에 입대하여 오길비 보병대에서 근무했다. 그로부터 23년 후인 1732년 2월 26일, 그는 오길비 보병대 대령에 임명되어 1737년까지 지휘를 맡았다.1734년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의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된 그는 두각을 드러냈고, 그를 주목한 쾨니히세그 장군은 1737년 8월 1일 제17 보병 연대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이후 그는 사망할 때까지 32년간 이 연대의 지휘관을 맡았지만 전쟁 기간 중에는 거의 그의 연대와 함께 있지 않았다. 이듬해, 그는 쾨니히세그 장군의 후원 덕분에 소장으로 승진했고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초기인 1741년 11월 7일에 중장으로 승진했다. 1743년, 프란츠는 프랑스군이 점령한 아게르를 포위한 제국군을 지휘해 9월 9일에 공략했다.
1748년 11월 20일, 프란츠는 야전군 사령관으로 진급했다. 그 후 7년 전쟁 초기인 1757년 4월 30일, 그는 쾨니그랄츠 주변에 진을 치고 있던 제국군을 잠시 지휘했고 모라비아의 군사령관 직무를 맡았다. 1758년 5월 3일, 프란츠는 야전군 원수로 승격했고. 이후 오스트리아군의 여러 전투에 참가했다. 7년 전쟁이 끝난 후, 그는 브룬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1769년 10월 1일 사망했다. 향년 70세. 그는 성 요한과 몰타 기사단에 가입했고, 평생 결혼하지 않아 자식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