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광학회사에 대한 내용은 자이스 문서 참고하십시오.
Carl Zeiss, 1816.9.11 ~ 1888.12.3
1. 개요
독일의 광학자이자 기업가. 오늘날 렌즈가 대량생산되는데 큰 기여를 한 인물로, 광학 회사 자이스 사의 설립자로도 유명하다.2. 생애
1816년 독일 연방의 바이마르에서 출생하였다. 기계공학 마이스터였던 프리드리히 쾨르너 수하에서 도제를 지낸 이후 독립하여 렌즈 회사를 차린다. 여담이지만 이 도제 과정이 보통 빡센 과정이 아닌데, 차이스는 이 과정에서 대학교도 다니면서 수학과 광학, 인류학(!)까지도 공부했다고 한다. 처음 출범할 무렵만 하더라도 공방 수준의 영세한 사업체였지만 1847년 해부 용도의 광학 현미경을 납품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이에 고무되어 각종 업그레이드를 진행한 뒤 1861년 튀링겐에서 열린 독일 공업 박람회에 자사의 제품을 제출한다. 대표적인 게 원래 차이스가 만들던 현미경은 단일 렌즈 구조였는데, 이를 복합 렌즈로 한 단계 진일보시킨 제품이었다. 차이스가 박람회에 출시한 현미경과 렌즈들은 극찬을 받으면서 독일 전역에 이름을 퍼뜨릴 수 있었고, 사업체도 급성장 할 수 있었다. 처음에 도제 두어명을 데리고 시작하던 사업체가 이 시점에 이르면 스무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판매량도 맨 처음에는 일년에 스무개 팔기도 힘들다가 이 시점에 이르면 몇 백 개씩 팔았다고 하니 그 성장세가 어땠는지 짐작이 간다. 여기에 이 시기 서서히 사회에 퍼져나가고 있던 카메라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덤이었다.한편 1872년부터 차이스는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데, 바로 기계공학 자체만으로는 렌즈의 품질을 올리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수학적 모델을 도입했던 것. 수학적 모델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차이스는 독일의 물리학자 겸 수학자 에른스트 아베(Ernst Abbe)와 함께 공동 연구를 진행하여 아베의 사인 조건이라는 가설을 얻게 된다. 이 가설이 현실에서 구현이 가능해지면 기존의 렌즈보다 훨씬 우수한 성능을 가진 렌즈를 생산해낼 수 있었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십년이 넘는 노력 끝에 마침내 아포크로마트라는 아베의 사인 조건을 현실 속에 구현한 렌즈를 1886년부터 생산해내기 시작했던 것.
이후 1888년에 차이스는 세상을 떠났으며 고향이었던 예나에 매장된다. 태어난 곳 자체는 바이마르지만, 도제, 학업, 사업을 모두 예나에서 진행했기 때문에 사실상 예나가 고향이다. [1]이후 자이스 사의 역사는 자이스/역사를 참고할 것. 여담이지만 오늘날 차이스 가문은 차이스 사의 운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차이스의 아들이 차이스 사후 경영자로 참가하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베 박사와 아베의 사인 조건을 현실에서 구현하는데 크게 기여한 독일의 화학자인 오토 쇼트 박사에게 사업 전권을 위임하고 은퇴해 버렸기 때문이다.
[1]
그 당시에도 둘 다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국 땅이었고 지금도 둘 다
튀링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