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공자가 춘추를 쓸 때 사용한 필법을 말한다. 명분에 따라 용어를 구분하는 것을 의미한다. 포폄(褒貶)이라고도 말한다. 경학자들은 춘추필법이 미언대의(微言大義)로 이루어졌다고 여겼다. 사람이 죽은 것을 명분에 따라 '시弑'와 '살殺'로 나누어 표현한 것이 그 예이다. 다른 나라를 쳐들어갔을 때도 ‘침(侵)’, ‘벌(伐)’, ‘입(入)’, ‘취(取)’ 등의 표현을 구분해 사용했다.2. 상세
노은공(魯隱公)이 대부 공자 휘(翬)에게 죽임을 당하자 공자 휘가 군주를 시해(弑害)고 표현했다.환공(桓公)이 제후(齊侯)에게 살해당한 것을 “훙(薨)하였다.”고 써서 은휘하였다.
진 문공이 천토(踐土)에서 회맹을 한 것은 실제로는 제후(諸侯)가 주(周)나라의 천자(天子)를 부른 것이지만 <춘추>에서는 그 사실을 피해서, “천자가 하양(河陽)으로 사냥을 갔다.”라고 기록하였다. 이는 천자가 신하의 부름에 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서 직서하지 못하고 은휘를 한 것이다.
<춘추>에서 "정백이 단을 언에서 무찔렀다(鄭伯克段于鄢)"라고 했는데 이는 정 장공이 아우 공숙단이 반란을 꾀하자 진압한 것을 나타낸다. "정백" 이라고 작위로써 왕을 칭한 것을 아우를 훈계하지 않고 악한 마음이 자라도록 방치하여 죄를 범하면 주살하려던 것이 그의 본심이었음을 풍자한 것이다. 동생이라고 하지 않은 것은 공숙단이 순종하지 않고 동생 노릇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찔렀다"고 말한 것은 형제간의 싸움이 두 나라 간의 싸움처럼 격했기에 풍자한 것이다.(춘추좌전 노 은공 원년 기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