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07 12:35:41

최창용(독립운동가)

<colcolor=#fff><colbgcolor=#0047a0>
파일:최창용.jpg
출생 1895년 11월 29일
출생지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외가천리 49
사망 1974년 11월 12일 향년(78세)
사망지
묘소 주소
가족 가족관계
학력 학교명 (졸업 여부)
서훈 건국훈장 애국장 수훈/추서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2. 생애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사람이다. 1919년 4월 1일 양성면·원곡면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 이날 1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외가천리에 있는 원곡면사무소에 모여서 만세시위를 벌이고, 양성면으로 행진했다. 이들이 양성면에 도착할 무렵, 동항리에 있는 양성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여 돌아가던 양성면민 1천여 명과 합류하면서 시위 군중이 2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오후 10시경 양성 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숙직실을 불태웠다. 다시 양성우편소로 가서 기물과 건물을 파괴·방화하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점과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파괴했다. 또한 양성면사무소로 가서 서류와 기물을 파기하고, 시위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고 해산했다. 다음날 새벽 4시경 원곡면으로 되돌아온 그는 시위 군중과 함께 원곡면사 무소의 건물을 파괴·방화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건조물 소훼·소요 혐의로 징역 2년형(미결구류일수 500일 본형 산입) 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 독립유공자로 인정 받았을때의 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