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북한의 외교관.2. 생애
1941년 6월 4일, 황해남도에서 태어난 걸로 파악되고 있다. 국제관계대학 불어과를 졸업했다고 한다.1969년 부룬디 주재 3등 서기관으로 배치, 1974년에는 부르키나파소 주재 2등서기관으로 나타났으며 1978년 프랑스 주재 통상대표부 부대표로 배치되었다. 1984년 10월 9일, 북한과 코트디부아르(당시 북한은 상아해안공화국으로 호칭)의 수교가 이루어지면서 초대 코트디부아르 대사를 지냈다. 1986년 2월, 손창수에게 코트디부아르 대사 자리를 물려주고 스위스 대사로 이임하였다. 3월 7일, 스위스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봉정하였다.
1년 9개월 동안 재임하다가 1987년 12월 15일, 고별방문을 하고 귀국했다. 후임 스위스 대사로는 1988년 1월, 리수용이 리철의 이름으로 임명되었다. 귀국 후 외교부 유럽국(9국) 국장에 임명되었으며 1989년에 국제부 지도원을 거쳐 1995년 2월에 국제부 중국 담당 부부장에 임명되면서 갑자기 유럽, 프랑코포니 국가 담당에서 중국 담당으로 옮기게 되었다.
2000년 12월 13일, 주창준의 뒤를 이어 중국 대사에 임명되었다. 2003년 9월, 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2004년 4월, 김정일의 중국 방문, 2004년 7월, 김일철의 중국 방문, 2004년 10월, 김영남의 중국 방문 등을 수행했다. 2005년 3월, 박봉주의 중국 방문을 수행했고 2005년 10월, 후진타오의 방북 때 북한으로 가서 김정일을 수행했다. 이외에도 최태복, 김영일 등 고위 인사들의 방중 때 당연하지만 배석했다. 2009년 4월, 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춛뢰었고 2010년 4월 20일, 최병관이 후임 대사로 임명되면서 귀국했다. 귀국 후 2011년 5월, 조국전선 의장에 선출되었고 2012년 3월, 범민련 북측본부 의장에 선출되었다. 2012년 4월, 노수희의 방북 때 그를 맞이한 것도 최진수였다. 2014년 3월, 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며 2016년 7월, <조선반도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북·남·해외 제정당·단체·개별인사들의 연석회의 북측준비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어느새인가 조선-시리아 친선의원단 위원장에도 임명되었으며 2018년 10월 3일, 북한을 방문한 시리아 인민회의 부의장과 회담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고령이 문제였는지 2019년 3월, 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서 탈락하였으며 이후 동정보도는 없다.
3. 참고문헌
- 2017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서울: 통일부,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