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5 20:35:29

최봉엽

<colbgcolor=#0047a0> 출생 1894년 5월 16일
전라북도 옥구군 서수면
사망 1954년 3월 19일(59세)
전라북도 옥구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직업 독립운동가
상훈 건국포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3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최봉엽은 1894년 5월 16일 전라북도 옥구군 서수면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7년 10월 2일 옥국군 서수면에서 일본인 지주의 횡포에 대항하여 소작인의 권익을 보호할 목적으로 장태성(張台成)·박상호(朴相浩) 등의 주도로 옥구 농민조합 서수지부(瑞穗支部)가 결성될 때에 같이 참여하였다.

1927년 11월 25일 서수면 서수리 소재 주식회사 이엽사농장(二葉社農場)이 소작농민들에 대하여 수확량의 75%에 달하는 과도한 소작료를 요구하자 위 농민조합 지부의 간부들이 나서서 45%로 감액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거부되었고, 지부장 장태성이 농장의 일본인 지배인을 협박했다는 혐의로 일경에 붙잡혔다.

장태성이 군산(群山) 경찰서로 압송되는 도중 서수면 임피(臨陂) 경찰관출장소에서 일시 대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최봉엽은 박상호, 김행규(金杏奎) 등과 함께 500여 명의 농민들을 규합하여 동 출장소를 습격하고 장태성을 구출하였다. 이로 인해 조합원 80여 명과 함께 체포된 그는 1928년 2월 29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1928년 5월 2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구금자 탈취 및 소요혐의로 징역 8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옥구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4년 3월 1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최봉엽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6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