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9 21:08:18

처음처럼(소주)

희석식 소주의 지역별 제조사 및 대표 제품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ff> 지역 제조사 대표 제품
<colbgcolor=#F6F6F6,#1F2023><colcolor=#6D9E3C> 수도권 하이트진로 참이슬
강원 롯데칠성음료 주류사업부 처음처럼
충북 시원한 청풍
맥키스컴퍼니 이제우린
대구, 경북 금복주 맛있는 참
부산 대선주조 C1· 대선
울산, 경남 무학 화이트· 좋은데이
전북 하이트진로 하이트소주
광주, 전남 보해양조 잎새주
제주 한라산 한라산 }}}}}}}}}
<colcolor=#fff>
처음처럼
파일:처음처럼 소주병.jpg
처음처럼 순 <colbgcolor=#FFFFFF,#191919> 16.0도
처음처럼 부드러운 16.5도
처음처럼 진 20.0도
1. 개요2. 특징
2.1. 도수
3. 파생 소주
3.1. 순하리 처음처럼3.2. 처음처럼x빠삐코3.3. 처음처럼 꿀주3.4. 새로
4. 역대 모델5. 역대 광고모델
5.1. 슬로건
6. 여담7. 논란
7.1. 친북/북측 세력 지원 유언비어

[clearfix]

1. 개요

파일:처음처럼_2021.png

롯데칠성음료의 주류사업부인 롯데주류에서 생산 중인 희석식 소주로, 2006년 처음 등장하였다.

2. 특징

원래 두산경월의 메인 소주는 2001년에 출시된 이었고, 녹차 성분까지 넣고 숙취가 적다고 홍보했지만 현실은 진로의 참이슬의 야성에 밀리던 형편이었다. 이후 두산에서 절치부심하여 도수를 내리고 출시한게 바로 이 제품.

수도권 대부분의 식당이나 주류판매업소에선 처음처럼과 참이슬을 각각 따로 구비하고 있으며, 수도권 기준으로는 보통 소주를 달라고 하면 참이슬과 처음처럼 중 무엇을 달라는건지 되묻는 편이다. 그 외에 대관령 기슭에서 채취한 물을 알칼리 환원과정을 거쳐 분리한 알칼리수를 통해 만들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2009년에 회사가 두산에서 롯데로 넘어가면서 부울경 지역을 공략했으나, 여전히 C1과의 판매량 차이는 넘사벽 수준이다. 지금도 부울경은 C1을 계승한 대선이나 좋은데이를 먹는 사람이 절대 다수다.

이후 처음처럼, 처음처럼 Cool, 처음처럼 Premium 세종류의 제품 브랜드를 일원화하여 처음처럼 부드러운, 처음처럼 순한, 처음처럼 진한 으로 통일해 출시했다.

다양한 휴대 모델을 출시하고 있다. 힙 플라스크 형태의 200ml 포켓 모델, 360ml 포켓, 얼려먹거나 차게 먹는 120ml의 파우치 모델 등등이 있다.

일본에서는 산토리에서 수입하여 원래 이름인 경월GREEN으로 발매 중이며, 도수는 25도와 20도 두가지다.

여전히 강원도의 소주라는 인식은 남아있어서인지 춘천, 강릉[1] 등은 이걸 꽤 선호하는 사람이 있다. 아예 강원대학교 쪽은 미리 주문하면 과 이름을 붙인 라벨을 준다. 이렇게 대학생 상대로 마케팅을 많이 하긴 하나 과나 사람별로 참이슬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어 다른 소주도 많이 팔리나, 그래도 강원도에서 처음처럼의 비중은 상당하다.

2.1. 도수

  • 첫 출시 당시 최소한의 선이라 불리던 20도를 넘긴 19.8도를 시도했다. 그런 이유로 참이슬 한병으로 취할 것을 처음처럼은 한병 반에서 두병을 마셔야 취한다고 할 정도로 순하다고 이야기 되었을 정도. 사실 0.2도 정도로는 그다지 큰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90% 이상은 기분 탓이지만 말이다.
  • 2009년 부울경 지방을 노리고 16.8도의 처음처럼 Cool[2]을 출시했다. 그 탓에 진로 측에서는 '소주의 마지노선을 넘었으니 저건 사실상 소주가 아니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3] 처음처럼 쿨은 진로 이즈 백과 더불어 수도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얼마 안되는 17도 미만의 소주가 되었다.
  • 2018년 6월 17도로 약간 낮아졌다. #
  • 2018년 12월 처음처럼 진한의 도수가 21도에서 20도로 낮아졌다.
  • 2019년 12월 경 처음처럼 부드러운이 16.9도로 떨어지며 2006년 좋은데이 출시 이후 13년 만에 전국구 메인스트림 소주가 16.9도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처음처럼 진한은 브랜드 이미지 정립을 위해 '진한처럼'으로 명칭을 바꿨다.[4]
  • 2021년 1월부터 처음처럼의 알코올 도수를 16.5도로 낮췄으며 부드러움을 강조하였다. 라벨 디자인도 대폭 변경하였는데, 산기슭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모티브로 디자인했으며, 반짝이는 은박을 사용해 음영을 강조함으로써 새로움을 더했다. 기존 ‘처음처럼 순한’과 ‘처음처럼 진한’도 순차적으로 리뉴얼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3. 파생 소주

3.1. 순하리 처음처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순하리 처음처럼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2. 처음처럼x빠삐코

롯데주류에서 빠삐코 아이스크림과 콜라보하여 2021년 11월에 한정판으로 출시한 소주.

타 리큐르 소주와 다르게 소주 특유의 알코올 향이 다소 강한 편으로 초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불호의 평가가 많다. 사람들은 초코 향만 나는 소주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3.3. 처음처럼 꿀주

2022년 4월 15일 출시된 맥주 향과 꿀 향을 느낄 수 있는 소주.

3.4. 새로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새로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2022년 10월에 '처음처럼 새로'로 출시되었다가, 1년 후인 2023년 10월부터는 "새로"라는 단독 상표로 바뀌었다.

4. 역대 모델

5. 역대 광고모델

연도 모델 비고
2006년 이영아
2007년 구혜선
2007년 이효리 5년 연속 모델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현아 구하라 효린
2013년 공석
2014년 조인성
2015년 신민아
2016년 수지 5년 연속 모델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제니 2년 연속 모델
2022년
2023년 한소희
2024년 김지원
  • 광고모델은 2006년 런칭 초기 탤런트 이영아를 시작으로 2007년 상반기에는 구혜선이 맡았다가 반년도 채 안되어 이효리로 교체되었는데, 전임자들과는 달리 무려 5년동안 광고모델을 맡았다. 덕분에 이효리가 한창 방송활동을 할 무렵에는 여기저기 음식점의 벽보로 자주 만날 수 있었으나 2012년 들어 회사측과 이효리 측이 서로의 이미지를 개선할 때가 되었다는 합의하에 광고시장에선 전지현의 엘라스틴에 이어서 이례적으로 결별광고를 촬영하여 내보내는 선례[5]를 남겼다. #
  • 2012년 11월 말 유튜브 처음처럼 채널에 이효리의 뒤를 이어 카라 구하라/ 포미닛 현아/ 씨스타 효린 세명이 등장하는 CF의 메이킹 영상이 올라오고 12월 1일 부로 유튜브에서만 CF 본편이 공개됐다. 현행법상 알콜도수 17도 이상의 주류는 TV광고가 전면 금지되어 있지만 17도 미만의 주류는 밤 10시 이후 TV광고가 가능하다. ‘처음처럼’의 알콜도수는 19.5도. 기준인 17도를 넘어선 탓에 소비자들은 ‘처음처럼’의 TV광고를 만나볼 수 없다. ‪#‬
    또한 이 광고는 서울시로부터 아이돌을 모델로 사용하는 것을 자제해달라는 권고를 받았다. 이 사항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때에는 수입 누락, 광고를 통해 얻은 부당한 수익을 국세청에서 세무조사 할 것이라는 강력한 규제 조건을 내걸었다. 결국 롯데 기업은 "국세청과 음주폐해 예방대책을 추진하고 있는 서울시 정책에 동참하고자 현재 홈페이지와 유튜브 등 온라인에 공개된 카라 구하라, 씨스타 효린, 포미닛 현아의 '처음처럼' 동영상을 21일까지 내린다"고 발표했다. ‪#‬
    이러한 상황으로 장기간 소주 광고 모델을 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는 해피송 시리즈를 주로 광고하고 있다. 노래를 부른 건 장미여관.
  • 2014년 조인성을 거쳐 가을부터 신민아가 모델로 활동하였으며, 2016년 10월부터는 수지가 모델로 활동 중이다. 서브 모델로는 이국주가 활동 중이다.
  • 2021년부터 제니가 모델로 활동하게 되었다. 도수를 16.5도로 낮춤과 동시에 라벨 디자인까지 전면 리뉴얼 캠페인을 펼칠 예정이라고 한다. 소주 본연의 맛은 살리면서 목넘김을 더욱 부드럽게 해 ‘처음처럼’의 대표속성인 ‘부드러움’을 더욱 강조하였다.

* 2023년 3월 3일부터 한소희[6] 모델로 활동하게 되었다.
  • 2024년 3월 26일에 배우 김지원이 차기모델로 낙점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5.1. 슬로건

  • 흔들어라! 더 부드러워진다 - 이효리 시절
  • 난 노는 물이 다르다 - 효린, 구하라, 현아 시절
  • 부드러운 소주의 처음 - 신민아 시절
  • 처음부터 끝까지 부드러운부드러운 소주 - 수지 시절
  • 성공을 마신다 빠끄! - 염따 시절[7]
  • 더 부드럽지만 더 소주다운 맛 - 제니 시절
  • 부드럽게 즐거움만 남긴다 - 한소희

6. 여담

  • '처음처럼' 글씨는 신영복 교수의 글씨이며, 롯데칠성음료에 따르면 초기, 소주를 출시했던 두산에서는 사례비를 제의했으나 신영복 교수가 완강히 거절했다고 한다. 이후 몇 번의 얘기 끝에[8] 사례비를 줘야 한다면 본인이 아닌 후학에 써달라 당부하며 성공회대학교에 1억원의 기부금이 들어갔다. 그런고로 성공회대학교의 비공식 교주(校酒)다.
  • 처음처럼이라는 이름을 지은 사람은 디자이너 손혜원[9]으로 이 사람은 참이슬의 이름도 지었으며 손혜원이 이름 지은 두 브랜드가 한국 소주 시장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된 셈이다.
  • 캐릭터도 존재했으며, 2009년에는 롯데 자이언츠의 마스코트로 투입되기도 했다. 그러나 1년만에 쓰고 흑역사! 당연히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 야구친구에서는 롯데 자이언츠 두산 베어스 간의 더비매치를 처음처럼이라 부르고 있다. 예전에 두산이 주류업을 경영했을 때 붙였던 소주 브랜드명이 '처음처럼'이었고, 그 두산주류를 2009년 롯데가 인수하면서 더비명이 붙게 된 것이다.
  • 2020년 4월, 염따와 콜라보를 하며 16.7도의 처음처럼 FLEX가 출시되었다. #

7. 논란

7.1. 친북/북측 세력 지원 유언비어

파일:soju_pc_img02.jpg

처음처럼 BI를 써준 신영복 교수가 과거 통일혁명당에 연루된 사건으로 인해 처음처럼의 일부 수익을 북측 세력에 지원한거 아니냐는 유언비어들도 있었으나 롯데주류(두산주류BG) 측은 이를 공식적으로 부인하며 "통혁당 사건으로 복역한 전력이 있는 신영복 교수님의 서체를 사용한 것이 연유가 된 것 같다" 며 "교수님께서는 사례비를 완강히 거절하며 본인보다 후학들을 위해 써줄 것을 당부해 성공회대학교 장학금 1억을 기부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면서 해당 1억원 장학금 기부 이외 어떠한 금전적 지출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롯데주류는 그러며, 내용을 잘 아는 경쟁업체들의 비방으로 추측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애초에 신영복 교수는 처음처럼의 글씨만 써준거고 롯데주류와는 아무 관련이 없으며 신영복 교수가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된 것은 사실이나 단순히 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 알고 연루된 것인지 북한과 관련된 걸 알고 연루된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10] 신영복 문서 참조.

[1] 전신인 경월이 이곳에서 시작한 기업이다. [2] 현 처음처럼 순 [3] 그리고 진로는 15.5도인 즐겨찾기라는 술을 출시했다.이즈 백도 16도. [4] 19년 12월부터 롯데주류가 고도주 시장을 겨냥해 알코올 도수 20도 '처음처럼 진한'과 25도 '처음처럼 25'를 '진한처럼'으로 통합했다. [5] 이효리의 그간의 활약상에 헌정한다는 뜻에서 "효리처럼"의 라벨이 씌워진 처음처럼을 한정판으로 판매했다. [6] 류준열과의 환승 연애 이슈라기보다 롯데칠성음료는 열애설이 나오기 전 계약이 만료됐다며 한소희와 계약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급변하는 시장 트랜드에 맞게 단기 모델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7] 스페셜 콜라보가 성사되어 나온 슬로건 [8] 두산 측이 양심이 있어 돈을 주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문제는 나중에 법이나 사회적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영복 교수는 좋은 의도로 사례비를 거절한 것이겠지만 경쟁사 측에 이가 알려진다면 두산이 신영복 교수에게 로고를 그려달라고 해놓고 돈을 떼먹었다는 말이 나오기 좋은 모양새기도 하다. [9] 후에 제20대 국회의원이 된다. [10] 1998년 '월간 말' 인터뷰에서 '전향서를 쓰긴 했지만 사상을 바꾼다거나 동지를 배신하는 일은 하지 않았으며, 통일혁명당에 가담한 것은 양심의 명령 때문이었고 향후로도 양심에 따라 통혁당 가담 때와 비슷한 생각으로 활동하겠다'는 의견을 밝혀 논란이 되었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85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85 ( 이전 역사)
문서의 r ( 이전 역사)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