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채용석(蔡用錫) |
일본식 성명 | 히라오카 요오세쿠(平岡用錫), 히라오카 미츠노부(平岡三信) |
생몰 | 1920년 3월 10일 ~ 1988년 7월 22일 |
출생지 |
충청남도
천안군
풍세면 미죽리 (현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미죽리) |
사망지 | 서울특별시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채용석은 1920년 3월 10일 충청남도 천안군 풍세면(현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미죽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0년 일본 도쿄 시바구 다무라정의 신문 판매소에서 신문 배달을 했고, 흥아공학원(興亞工學院) 토목과에 입학해 공부를 병행했다. 이후 박인석(朴寅錫)· 현창석·정종락(鄭鍾樂) 등과 자주 모임을 갖고 조선인의 교육 문제, 민족 차별 등과 관련한 일본의 조선 식민지 지배의 부당성을 논하며 동지로서 유대감을 맺었다.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일본이 패망할 것을 예견하고 이때를 기회삼아 조선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조선 독립그룹을 결성했다. 우리조선 독립그룹은 요 건물 파괴, 식량 창고 방화, 수도 및 도로 파괴 등 일본의 혼란을 가중시키겠다는 목표 하에 각자의 활동 구역을 분담했다. 그는 도쿄 아자부구와 시바구 지역을 담당하여 계획을 추진했지만 경찰에 발각되어 1942년 3월 28일에 검거되었다.
이후 1943년 11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도쿄 지방재판소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8.15 해방 직후 석방되었다. 이후 서울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다 1988년 7월 22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채용석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88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