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전 황실 여성 등장인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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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8223d><colcolor=#ffffff> 후궁여의전의 등장인물 진완인 완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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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진완인 (陈婉茵) | ||
배우 | 조희문[1] | ||
파벌 | 중립 → 여의파 | ||
거주지 | 종수궁 | ||
품계 | 격격 → 완(婉)답응 → 완상재 → 완귀인 → 완빈 → 완비 | ||
가족 | 남편 건륭제 애신각라 홍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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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드라마 여의전의 등장인물.2. 작중 행적
완귀비 진씨. 홍력의 잠저 시절 통방시녀를 거쳐 격격이 되었고, 즉위 후 완답응이 되었다. 겁이 많고 총애를 받는 것에 관심이 없다. 여영풍과 비슷하게 적을 만들거나 파벌에 붙지 않고 남들과 데면데면하게 지내며 조용히 산다. 그래도 여의파 후궁들과 친하게 지낸다. 록균이 황귀비로 진봉된 이후 죽었을 때도 “결국 언니도 이것을 피해갈 수 없군요. 이렇게 빨리 가버리면 나는 이제 궁에서 말을 나눌 사람이 없습니다”라며 슬퍼하였고 그 이후 여의와 해란과 친하게 지낸다. 여의가 죽었을 때도 “황후마마 이리 빨리 가시다니요.”라며 슬퍼하며연완이 목란위장에서 불순한 방법으로 총애를 되찾자 여의에게 “영비가 너무 멀리 와버렸군요. 황후마마 영비를 처리해야 합니다.”라고 간언했다.
성격이 유순하고 착하여 다른 후궁들로부터 좋은 말을 많이 듣는다. 심지어 랑화의 딸 경슬조차 홍력에게 가 완인을 칭찬했고, 연완은 자신의 모친에게 “완빈은 유순한 사람이니 그녀의 시녀들을 괴롭히지 마라.”고 충고할 정도.
원작에서는 여의 사후 해란이 건네준 위연완의 악행이 적혀있는 책을 읽고 홍력을 직접 찾아가 모든 것을 말한다. 해란이 놀랄 정도로 많은 것을 말해버린다. 곧 위연완의 50살 생일인데 죽은 여의가 49세였다고 말하자 홍력이 연완의 수명이 여의에게 도달할 거 같지 않다고 말한다. 결국 위연완이 죽는데 크게 일조를 했다. 위연완이 죽은 후 그 자식들을 양육하고, 유비 해란 사후 2년 뒤에 비의 자리에 오른다.
이때 유일하게 잠저 출신 후궁으로 남아있다.[2]
종수궁에 머무른다는 설정인데, 보통은 한 궁에 빈 이상의 후궁이 둘 이상 있을 수 없지만, 한 궁에서 빈이 한 명 더 생겨나면 다른 궁의 여건이 좋지 않을 경우 두 명이서 공동 궁주로 존재할 수 있었다. 이럴 때는 정전을 각각 나눠가지는 형태로 살았다.
3. 실제 역사에서
실제 역사의 완귀비 진씨는 총애를 별로 못 받아서 건륭 14년에 완빈으로 책봉되었다가 건륭 59년에야 겨우 완비가 되었다. 훗날 가경제가 가경 6년에 그녀를 귀비(완귀태비)로 올려주었고 이때 그녀의 나이가 86세였다. 가경 12년 92세의 나이로 훙서하였다. 비록 자식은 없었으나 건륭의 비빈들 중 가장 장수하였다. 당시 평균 수명이 30대 후반~40대 후반인 것을 감안하면 역사적으로도 천수를 누린 최후의 승리자이다.
[1]
삼국(드라마)에서
채부인역을 맡았던 배우다. 당시 드라마 팬들에게 평이 안 좋았던
초선과 달리 쓸데없이 채부인이 예쁘다는 반응이 많았다.
[2]
잠저 출신 후궁의 절반이 랑화가 황후일 때 죽고, 남은 절반은 여의가 황후일 때 죽는다. 해란과 완인을 제외하면 가장 오래된 후궁은 경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