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5 10:44:35

존 챈셀러

<colcolor=#fff><colbgcolor=#000> NBC Nightly News 앵커
존 챈셀러
John Chancellor
파일:john chancellor.jpg
출생 1927년  7월 14일
미합중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사망 1996년 7월 12일 (향년 68세)
미합중국 뉴저지주 프린스턴
직업 저널리스트, 앵커
학력 일리노이 대학교 어배너-섐페인 캠퍼스
배우자 코니 챈셀러(Connie Chancellor)
바버라 업쇼(Barbara Upshaw)
자녀 3명
악력 NBC 기자
NBC 해외특파원
투데이쇼 진행자
NBC Nightly News 앵커
Huntley-Brinkley Report 특파원
NBC Nightly News 해설위원

1. 개요2. 방송 생활
2.1. 초기2.2. NBC Nightly News 시절
2.2.1. 선거 지도의 창시자
2.3. 말년과 죽음
3. 여담

1. 개요

파일:external/images.c-spanvideo.org/height.630.no_border.width.1200.jpg [1]

Jhon chancellor(1927~1996).

존 챈셀러는 1970년부터 1985년까지 NBC Nightly News의 앵커였다. NBC Nightly News가 시작한 1970년 부터 활동했던 원로앵커로 1970년부터 1979년까지는 데이비드 브링클리(David brinkely)와 공동진행하는 방식이었지만 1980년 이후 프랭크 맥기, 로저 머드와 삼중진행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2. 방송 생활

2.1. 초기

처음에는 시카고 선 타임즈라는 신문사의 기자가 되기 위해 시카고 지역 텔레비전 방송사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NBC Nightly News의 전신인 Huntley-brinkley report의 특파원으로 근무하며 전국 텔레비전 방송국으로 자리를 옮겼다. 1957년, 존 챈셀러는 리틀 록 중앙 고등학교에서 흑인소녀 엘리자베스 엑포드(Elizabath Eckford)의 입학을 백인폭도들이 무단으로 막아선 사건[2]을 취재했는데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챈셀러를 따라다니며 화를 내었다. 하지만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취재를 멈추지 않아 이 사건이 세상에 보도되었다. 이를 통해 챈셀러가 상당히 반인종차별주의자였고 직업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다는것을 알수 있는 대목이다. 1961년에는 데이비드 개러웨이를 대신하여 NBC의 투데이쇼 앵커가 되었는데 프랭크 블레어, 에드윈 뉴먼과 삼중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챈셀러는 투데이쇼에서 정치 리포터로도 일했다. 챈셀러의 투데이쇼 생활은 오래 가지 않았는데 1962년 투데이쇼와의 계약을 해지하며 투데이쇼를 떠났다. 또한 이때 NBC와의 계약도 해지하여 잠깐동안 공백기를 가졌다.

2.2. NBC Nightly News 시절

1968년, 챈셀러는 기나긴 공백기를 거치고 다시 NBC로 복귀하였다. 이후 약 2년간 Huntley-brinkley report의 특파원으로 다시 근무하였고 1970년에 챗 헌틀리가 은퇴하고 Huntley-brinkley report가 NBC Nightly News로 재편되자 데이비드 브링클리, 프랭크 맥기( 뉴욕)와 함께 앵커 듀오가 되었다. Nightly News경력은 챈셀러에게 그의 경력의 결정적인 포인트가 되었다. 당시 나이틀리 뉴스는 기본적으로 브링클리는 워싱턴에서, 챈셀러와 맥기는 뉴욕에서 진행하는 체제였는데 뉴욕에서는 맥기와 챈셀러가 번갈아가면서 진행을 맡았고 브링클리가 워싱턴 D.C.에서 진행을 하지 못할 경우에는 챈셀러가 그 빈자리를 대신했다. 이때 까지만 해도 주중앵커, 주말앵커의 구분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365일 이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후 주중앵커와 주말앵커에 구분이 생기자 챈셀러는 NBC 뉴스 본부에서 주중진행을 맡았다. 브링클리는 이후 ABC로 이적하여 월드 뉴스 투나잇의 앵커가 되었다. 결국 1980년부터는 챈셀러와 로저 머드가 공동진행 하는 것으로 굳어진다. 챈셀러는 1982년까지 진행을 맡은 뒤 은퇴하여 저널리스트가 되었다.

2.2.1. 선거 지도의 창시자

1976년 대선을 앞두고 있을 무렵, 챈셀러는 1976대선 선거 보도 방송에 쓰일 획기적인 도구를 고민하고 있었다. 이때 생각해낸 도구가 전자 지도였는데 선거방송 스튜디오 뒷편에다가 대형 플라스틱 선거전자지도를 부착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 공화당 후보 제럴드 포드승리한 주는 파란색으로 민주당 후보, 지미 카터가 승리한 주는 빨간색으로 점등하는 방식이었다. 챈셀러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공화당은 영국 보수당과 묶고 민주당은 영국 노동당으로 묶어 공화당은 파란색, 민주당은 빨간색으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2000년 대선 까지 쓰이다가 이후 바뀌었다. 이후 이렇게 고안해낸 전자지도를 NBC의 발명가 및 엔지니어였던 고든 매닝(Gordon Manning)에게 부탁했고 성공적으로 만들어진뒤 스튜디오에 부착되어 1984년 미국 대선때 까지 성공적으로 방송에 쓰이게 되었다. 현재 이 지도 자체는 폐기 되었으나 이와 비슷한 시스템이 전세계 곳곳에서 사용중이니 참으로 큰 발명이 아닌가 싶다. 이 지도에 대해 다룬 LA타임즈의 글

2.3. 말년과 죽음

1982년 나이틀리 뉴스 앵커 에서 하차한 챈셀러는 1996년 사망할때까지 NBC에 사설논평을 제공했고 1993년에는 자신을 문단가로 정의하기도 했다. 또한 1992년에 그는 텔레비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후 그는 위험한 약속 이라는 책을 저술하였고 평범한 저널리스트로 살아가다가 1995년 NBC에서 은퇴했다. 이후 1996년, 69세 생일 2일 전에 미국 프린스턴에서 위암으로 사망하였다.

3. 여담

3명의 자식이 있었다.


[1] 생전의 그가 NBC Nightly News를 진행하는 모습 [2] 그 유명한 리틀록 사건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