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95C2E4> 영국의 존 왕자 Prince John of the United Kingd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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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존 찰스 프랜시스 John Charles Francis |
출생 |
1905년
7월 12일 영국 잉글랜드 노퍽주 샌드링엄 요크 코티지 |
사망 |
1919년
1월 18일 (향년 13세) 영국 샌드링엄 우드 팜 |
아버지 | 조지 5세 |
어머니 | 테크의 메리 |
형제 | 에드워드 8세, 조지 6세, 메리, 헨리, 조지 |
종교 | 성공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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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과 인도 제국의 왕자. 조지 5세와 테크의 메리의 여섯째이자 5남이다.2. 작위
- 웨일스의 존 공자 전하 His Royal Highness Prince John of Wales (1905년 7월 12일 ~ 1910년 5월 6일)
- 존 왕자 전하 His Royal Highness The Prince John (1910년 5월 6일 ~ 1919년 1월 18일)
3. 생애
존 왕자는 할아버지 에드워드 7세의 재임기간에 1905년 7월 12일 오전 3시 5분에 잉글랜드 노퍽 주 샌드링엄 하우스 요크 코티지에서 웨일스 공 조지와 웨일스 공비 메리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1] 애칭은 조니(Johnny)였고 왕위 계승 서열은 출생 당시 아버지 조지 왕세자와 형들 에드워드 왕세손, 앨버트 왕자와 헨리 왕자, 그리고 조지 왕자에 이어서 6위였다.존의 어린 시절은 형들과 누나와 함께 샌드링엄 하우스 요크 코티지에서 유모 샬럿 빌[2]의 관리 아래에 지냈다. 자신의 자녀들에게 엄격했던 조지 5세는 막내에게만큼은 엄하지 못했는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조지 5세를 방문했을 때 '존을 제외한 모든 자녀들은 말을 잘 듣는다. 아이들 중 존만 아버지의 벌을 면하기 때문인 거 같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존은 1909년, 4살 때부터 건강 이상 증세를 보였다. 그리고 그 해 첫 뇌전증 발작을 일으켰으며 자폐증의 징후도 보였다고 한다.
1910년 5월 6일, 할아버지 에드워드 7세가 서거하자 아버지 조지 왕세자가 조지 5세로 즉위했다.
하지만 건강 상태가 점점 악화되기 시작했을 땐, 존은 아버지의 대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후엔 공무상 출장이 잦은 부모님과 군복무 중인 형제들도 거의 보지 못했다고 한다. 1916년에는 간질 발작이 점점 심해지자 샌드링엄에 있는 우드 팜으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랄라 유모의 보살핌 아래에 지내게 된다. 그러나 의사들은 존이 성인이 될 때까지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고, 더 이상의 교육도 힘들다고 판단되었다. 그때부터 존 왕자는 공개적으로 언급되는 일이 줄었고, 세간의 관심에서 점점 잊혀지게 된다. 그러나 어머니인 메리 왕비는 이전의 관행을 깨고 그 지역의 동네 아이들을 존의 놀이 친구로 데려오는 등, 나름대로의 신경을 썼다.[3]
1919년 1월 18일 오후 5시 30분 경에 존 왕자는 심한 발작 후 잠을 자다가 사망했다. 어머니 메리 왕비는 주변인에게 차라리 편안하고 고통 없는 곳으로 떠난 게, 아이에겐 더 낫지 않겠냐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맏형 에드워드 8세는 그의 죽음을 '유감스럽고 성가신 것'으로 여겨왔다고 한다. 그러나 존을 오랜 시간 보살펴 왔던 랄라 유모는 존의 죽음에 매우 상심했고 그를 잊지 못했다고 한다. 테크의 메리가 1953년에 사망한 후 11년이 지나고 랄라가 사망한 1964년 당시까지 랄라의 집안에 있는 벽난로 위에는 존의 사진과 'Nanny, I love you' 라고 적힌 편지가 올려져 있었다고.
4. 가족관계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존 왕자 (Prince Joh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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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5세 (George V) |
<colbgcolor=#ffffe4,#323300>
에드워드 7세 (Edward VI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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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센코부르크고타의 공자 앨버트 (Prince Albert of Saxe-Coburg and Goth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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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여왕 (Victor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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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알렉산드라 공주 (Princess Alexandra of Denma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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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안 9세 (Christian I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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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센카셀의 루이제 (Princess Louise of Hesse-Kass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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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의 메리 공녀 (Princess Mary of Tec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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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 공작 프란츠 (Francis, Duke of Tec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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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르템베르크의 공작 알렉산더 (Duke Alexander of Württembe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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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레데 여백작 레데이 클라우디아 ( Countess Claudine Rhédey von Kis-Rhéd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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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임브리지의 메리 애들레이드 공녀 (Princess Mary Adelaide of Cambrid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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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임브리지 공작 아돌푸스 왕자 (Prince Adolphus, Duke of Cambrid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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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센카셀의 아우구스타 (Princess Augusta of Hesse-Kassel) |
5. 여담
- 영국 왕실과 존이란 이름은 그닥 좋은 관계는 아니다. 그 이유는 존이란 이름을 가진 왕족들은 전부 생애가 그닥 좋지 못했다는 징크스가 있기 때문이다. 국왕으로써의 평이 정말 좋지 못했던 존 왕도 있고, 조지 5세의 남동생 알렉산더 존 왕자는 태어나고 하루 만에 사망했다. 조카손자며느리 다이애나 스펜서의 오빠인 존 스펜서도 알렉산더 존처럼 태어나고 10시간 만에 요절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 문서에 서술된 존 왕자도 뇌전증을 앓았으며 13세의 어린 나이에 요절했다. 그래서 존 왕자 이후로 윈저 왕조의 남아에겐 더 이상 존이라는 이름을 명명하지 않는다.
- 존 왕자는 사망 후 아버지 조지 5세의 요절한 남동생으로 자신의 숙부인 알렉산더 존의 옆에 묻혔다. 그것을 두고 할머니인 알렉산드라 왕대비는 '이제 그들의 사랑하는 두 명의 조니가 나란히 누워 있다' 고 했다고 한다.
- 영국 BBC에서 2003년 방영한 드라마 잃어버린 왕자(The Lost Prince)는 존 왕자의 일생을 주제로 해서 만든 드라마다.
[1]
존이 태어날 때 어머니 메리가 난산으로 매우 고생했다고 한다.
[2]
Charlotte Jane “Lala” Bill. 애칭 랄라. 원래 총괄 유모는 샬럿의 상관이였고, 샬럿은 그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이였다. 하지만 당시 공주와 왕자들의 양육을 맡은 총괄 보모가 아이들을 학대 수준으로 대한다는 걸 알자, 샬럿 빌은 그 사실을 왕자녀들의 부모인
조지 5세와
테크의 메리 부부에게 고발했다. 이후 그 총괄 보모가 해고된 뒤 샬럿 빌이 총괄 유모가 되었고, 조지 5세의 자녀들도 새로운 유모가 된 샬럿 빌을 잘 따랐다고 한다.
[3]
당시에는 장애인을 위한 교육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으며, 간질 환자에 대한 인식이 정말로 좋지 않았다. 뇌전증 발작을 멈추게 하는 것 역시 당시 의학으론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당시엔 왕족의 피가 서민의 피보다 깨끗하고 우월하다고 믿었던 시기인지라, 왕족 중 뇌전증 환자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큰 문제거리가 되었을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