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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로동당의 전문부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39호실 朝鮮勞動黨 中央委員會 三十九號室 Office 39 of WP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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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40001,#222222><colcolor=white> 설립 | 1974년 |
연혁 | |
실장 | 신룡만 |
상위 조직 |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
주소 |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39호실 청사 (
평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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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earfix]
1. 개요
조선로동당의 중앙위원회 산하 전문부서.조선로동당의 외화벌이 기관으로, 공식적으로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국 소속이지만 사실 김씨왕조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조직이다. 돈만 된다면 무슨 짓이든 다하는 것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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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white> 국경 봉쇄로 사치품 수입 막혔다 …노동당 39호실의 생존 비법은? (2022년 1월 13일 공개분) |
북 39호실의 비밀! 비자금 핵심부서의 미스터리한 실체!! (2023년 8월 13일 방송분 / 608회) |
39호실의 시초는 1974년 김정일이 공식 후계자가 되면서 부터였다. 당시만 해도 북한 내에서 부자간 세습을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상당수의 핵심 간부들은 김정일을 무시했다. 특히 김정일은 제대로 된 군 경력도 전무한 미필이었고[3]군과 고위 간부들은 김정일을 남자답지 못한 애송이라고 깔보았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김정일은 자신의 후계체제를 구축하려면 주변의 간부들을 돈과 사치품으로 포섭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판단하였고 그 상황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39호실이다.
초기에는 39호실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고 취급하는 품목도 고급버섯, 금괴, 아연 정도였다. 그러나 마약, 무기밀매, 인력수출, 밀수, 보험사기 등으로 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품목이 확대되면서 39호실은 어느새 북한 내 외화를 독점해 관리할 만큼 위상이 커지게 되었다. 김정일이 총책임자였고 실질적 관리는 장성택, 전일춘 같은 측근들이 도맡았다.
39호실은 북한 전역과 해외에까지 걸쳐 산하에 각종 총국·지도국·무역회사·은행·기업소 등등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조직체를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범한 기업체도 많이 차리고, 합작사업도 진행하며, 외화상점과 해외 북한식당 운영에도 참여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모자라서 무기 밀수나 보험사기같은 불법적인 사업에도 많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 중에서 마약에 까지 손을 댔다가 역효과를 불러일으켜서 북한내에서 마약중독자를 양산시킨 사회적 악영향을 끼친 후폭풍을 일으킨 예도 있다.
2006년 미국 하원 정보위원회의 추산으로 총액 약 40억 달러, 연 수입 약 3~5억 달러 수준이다.
2016년 이탈리아로 망명한 전직 39호실 유럽자금총책 김명철을 조사한 CIA 보고서에 따르면, 김정은의 혁명자금 대부분은 39호실과 서기실 금고에 달러 현금으로 보관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외국인 명의의 계좌를 통해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분산하여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
2018년 초 거듭된 핵·미사일 개발, 각종 선심성 사업, 그리고 미국의 강화된 대북제재의 영향으로 자금이 거의 고갈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3. 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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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춘(全日春)(1941~)
전 39호실 실장. 함경북도 출신이며 김정일과 남산고중 동창으로 개인적으로 김정일이 그를 신임했다고 한다. 그는 1998년부터 39호실 부실장을 맡게 되었는데 돈의 계산이 아주 철저하고 깨끗했고 김정일의 자금을 전혀 탐내지도 않아 김정일이 그를 총애한 것으로 알려져 '김정일의 금고지기'라고 불리기도 했다. 2010년부터는 39호실장으로 승진했으며 2017년까지 직무를 맡아왔다. 현재는 고령의 나이로 은퇴했으며 방송에 모습을 비췄다. 전일춘의 외동딸과 사위인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 류현우는 2019년 탈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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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정호
전 39호실 고위 관리. 대흥총국 선박무역회사 사장, 대흥총국 무역관리국 국장, 금강 경제개발총회사 이사장, 중국 다롄주재 대흥총회사 지사장을 지냈다. 장성택 처형 이후, 중국에 나와있던 측근들도 체포되어 숙청되자 2014년 10월 가족을 데리고 중국에서 한국으로 탈북하였고, 북한의 협박과 위협이 계속 이어지자 이를 피해 2016년 3월에 미국으로 다시 망명하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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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철
전 39호실 대성지도국 유럽지국 총국장. 39호실의 '유럽자금총책'으로, 김정은의 비자금을 외국인 명의의 차명계좌 여러개로 분산하여 관리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현지처까지 두면서 신분을 철저히 세탁하여 김씨일가로부터 관리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2014년 9월 동생 김경철이 장성택과 엮어 처형되자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미국에 망명을 신청했으나 한국과의 관계를 염두에 둔 미국이 거부하였고, 김명철도 한국행을 원치 않아 2016년 4월 두 아들과 함께 이탈리아 시민권을 획득했다. 이 과정에서 김정은의 비자금 4,000억 원을 빼돌리고 망명했다고 전해진다. # # #
4. 이름의 기원?
이름의 기원이 불분명한 조직으로 세 가지 설이 존재한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 3층의 9호실에서 생겨났다는 설
- 조선로동당 3호 청사 9호실에서 생겨났다는 설
- 김정일이 3월 9일에 지시해서 이름이 39호실로 지어졌다는 설
일단 39호실의 9는 김정일에게 공급되던 물자를 뜻한다고 한다. #
[통합]
38호실과 통합한 것이다. 다만
2008년이라는 설이 있고
2014년이라는 설이 있다. 박영자(2017), '김정은 시대 조선노동당의 조직과 기능: 정권 안정화 전략을 중심으로', pp.165, 서울:통일연구원 참조.
링크
[분리]
38호실이 분리되어 나가서 '3경제위원회\'가 세워졌다는 설이 있다. 박영자(2017), '김정은 시대 조선노동당의 조직과 기능: 정권 안정화 전략을 중심으로', pp.165, 서울:통일연구원 참조.
링크
[3]
이 당시에 북한에서 모병제를 채택했기 때문에 군대를 가기 싫으면 안가도 되었지만, 군대를 가야 좋은직장을 배정받거나 조선로동당 입당에 유리했기 때문애 군대를 가는것이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인데다가 군대를 가지않으면 남자답지 못한 겁쟁이나 허약자라는 딱지가 붙어져 결혼하는데도 지장이 있었기 때문에 공부를 특출나게 잘하는게 아니라면 웬만하면 군입대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