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12 22:14:28

조 존슨

조 존슨의 수상 이력 / 역대 등번호
{{{#!folding ▼
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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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rd :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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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셀틱스 등번호 31번
데릭 스트롱
(1994~1995)
조 존슨
(2001~2002)
미키 무어
(2003)
피닉스 선즈 등번호 2번
엘리엇 페리
(2000~2001)
조 존슨
(2002~2005)
팀 토마스
(2006)
애틀랜타 호크스 등번호 2번
앤서니 밀러
(2004)
조 존슨
(2005~2012)
제임스 누날리
(2014)
{{{#fff [[브루클린 네츠|브루클린 네츠]] 등번호 7번}}}
아몬 존슨
(2012)
조 존슨
(2012~2016)
제레미 린
(2016~2018)
마이애미 히트 등번호 2번
키스 애스킨스
(1990~1999)
조 존슨
(2016)
웨인 엘링턴
(2016~2019)
유타 재즈 등번호 6번
자말 틴슬리
(2011~2013)
조 존슨
(2016~2018)
레이존 터커
(2019~2020)
휴스턴 로키츠 등번호 7번
아이재아 캐넌
(2017)
조 존슨
(2018)
카멜로 앤서니
(2018~2019)
보스턴 셀틱스 등번호 55번
제프 티그
(2020~2021)
조 존슨
(2021~2022)
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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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존슨.jpg
조 마커스 존슨
Joe Marcus Johnson
출생 1981년 6월 29일 ([age(1981-06-29)]세)
아칸소주 리틀록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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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출신학교 아칸소 대학교
신장 201cm (6' 7")
체중 109kg (240 lbs)
윙스팬 206cm (6' 9")
포지션 슈팅 가드 / 스몰 포워드
드래프트 2001 NBA 드래프트 1라운드 10순위
보스턴 셀틱스 지명
소속 팀 보스턴 셀틱스 (2001~2002)
피닉스 선즈 (2002~2005)
애틀랜타 호크스 (2005~2012)
브루클린 네츠 (2012~2016)
마이애미 히트 (2016)
유타 재즈 (2016~2018)
휴스턴 로키츠 (2018)
보스턴 셀틱스 (2021~2022)
등번호 31번 - 보스턴
2번 - 피닉스 / 애틀랜타 / 마이애미
7번 - 브루클린 / 휴스턴
6번 - 유타
55번 - 보스턴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NBA 커리어
2.1. 루키 시즌2.2. 피닉스 선즈2.3. 애틀랜타 호크스2.4. 애틀랜타 이후
3. 플레이 스타일4. 조듣보?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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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Iso Joe

NBA의 농구선수. 전성기때는 탑클래스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활약을 하는 수준급 가드였으나 나이가 들면서 폼이 서서히 떨어져 결국 폭망한 선수. 묘하게 낮은 존재감때문에 '조듣보' 라는 별명이 있다.

존 존스하고는 상관없다

2. NBA 커리어

2.1. 루키 시즌

조 존슨은 아칸소 리틀록 태생으로 아칸소대학팀에서 2년을 뛴 뒤, NBA 드래프트에 참가해 10픽으로 보스턴 셀틱스에 뽑힌다. 보스턴에서는 20분 정도를 뛰면서 루키시즌의 절반을 소화하다가 피닉스 선즈로 트레이드되고 더 많은 롤을 받게 된다. 피닉스에서의 첫해 평균 성적으로 9.6 득점 4.1 리바운드 3.6 어시스트를 찍으며 블라디미르 라드마노비치와 동률로 올 루키 세컨드팀에 들어간다.

2.2. 피닉스 선즈

슈팅 가드 기준으로 좋은 체격을 가지고 센스도 있었던 존슨은 2003-04 시즌부터 피닉스의 주전자리를 꿰차게 된다. 이때 피닉스에는 인기스타인 앤퍼니 하더웨이가 있었기 때문에 페니의 팬들로부터 그의 자리를 빼앗는 놈이라고 까이기도 했다. 결국 페니는 무릎부상으로 기량을 잃은 뒤 회복에 실패했기 때문에 피닉스에서도 자리잡지 못하고 떠나고, 존슨이 욕을 먹는 일은 줄어들었다.

2004년에 댈러스 매버릭스에서 뛰던 스티브 내시가 친정으로 돌아오자 마이크 댄토니 감독이 지휘하고 내시가 이끄는 업템포 농구의 힘입어 선즈는 강팀으로 급부상하고 존슨도 런앤건 전술의 한 축이 되어 열심히 뛰었다. 62승 20패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둔 뒤 2005년 플레이오프에 나갔는데 댈러스와의 세미파이널 2차전에서 덩크 도중에 제리 스택하우스와 충돌하면서 안면으로 착지(…), 부상을 입어 샌안토니오 스퍼스와의 컨퍼런스 파이널 2차전까지 결장하게 된다. 남은 시리즈에서 보호마스크를 착용하고 뛰었지만 선즈는 스퍼스에게 1-4로 패하면서 탈락한다.

그는 더 주목받고 싶었지만 선즈에는 리더인 내시와 공격력에 몰빵한 득점 머신 아마레 스타더마이어가 있었고, 3옵션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선즈와 재계약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잠깐 그런 숀 메리언은?

당시 그와 선즈 빅3를 비교하면, 매리언은 05시즌 당시 19점, 존슨은 17점으로 더 높긴 했다. 다만 매리언은 존슨보다 몇년 선배로서 이미 올스타에 선정되는 등 완성된 선수라 득점이 더 높았던 것이고, 득점력이 뛰어나기보다는 다재다능한 선수라 (3점까지 가능하긴 했지만 슛폼 자체가 괴상하고 안정적이지 못해 한계가 있었다) 풀코트에서는 잘 뛰면서 속공득점을 잘해주지만 하프코트에선 그렇게까지 위력적이지 못했다. 존슨이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던 때 이미 득점수치가 비슷했으니 그대로 06시즌이 개막했다면 매리언보다는 높은 옵션이 됐을 것이다. [1]

반면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는 이미 리그 정상급 득점옵션, 그것도 확률높은 골밑공격수였고 존슨보다도 한살이 어리기에 앞으로 더 성장할 확률이 높아 제치기 힘든 라이벌이었다. 게다가 팀의 최고선수인 내시 역시 리딩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라 득점스탯은 낮았음에도 득점스킬 자체는 매우 뛰어났다. 무엇보다 선즈는 두 슈퍼스타가 있었기에 (마당쇠 스타일인 매리언은 제칠 수 있어도) 존슨이 아무리 성장해도 넘버3밖에 될 수 없었다.

실제로 애틀란타에서 슈퍼스타로 거듭난 존슨이지만, 내시나 아마레의 각 전성기 위상과 따로 비교해본다면 역력히 밀린다. 그런데 선즈에 있었다면 공격권을 나눠써야했기에 그나마도 성장하기 힘들었을 것.

사실 리딩중시 PG인 내시와 콤비였다면 오히려 득점에 도움이 되어 더 성장했을 수도 있으나 [2] 아마레의 존재가 너무나도 컸다.

2.3. 애틀랜타 호크스

조 존슨의 다음 팀은 애틀랜타 호크스. 5년 70M로 애틀랜타와 계약하면서[3] 소원대로 팀의 중심이 된다. 그러나 초기에는 포인트 가드 롤도 맡아야하면서 적응하는데 고생을 했고, 2006-07 시즌에는 평균 25.0 득점으로 커리어 하이를 찍었으며 부상을 당한 제이슨 키드 대신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참가도 하지만 혼자서는 애틀란타를 플레이오프로 올려놓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운동능력 쩌는 포워드인 조쉬 스미스,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잘생긴 빅맨 알 호포드, 새크라멘토 킹스에서 온 베테랑 가드 마이크 비비[4]등 조력자들이 많이 생겼고 애틀랜타는 다시 플레이오프에 계속 진출하는 저력있는 팀으로 변했다. 존슨은 애틀랜타의 에이스로서 6회 연속으로 올스타에 선발되며 전성기를 누렸다.

물론 애틀란타는 언제나 그랬듯이 플레이오프에 올라는 가지만 1라운드 또는 2라운드에서 떨어지는 일을 반복했고, 조 존슨의 계약 역시 끝나가면서 재계약 또는 이적을 할 시간이 다가왔다. 르브론 제임스를 비롯한 03년 드래프티들이 대거로 풀려나 FA 시장이 바글거리던 2010년, 애틀랜타는 다른 선수를 영입하는 대신 존슨과 재계약을 하는데 그 계약이 6년 120M 이라는 무지막지한 조건이었다는게 문제였다. 이로서 존슨은 리그에서 가장 연봉을 많이 받는 선수 중 하나[5]가 되는데, 재계약 이후 기량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2.4. 애틀랜타 이후

조 존슨은 그럭저럭 활약은 하지만 연봉을 하도 많이먹다 보니 가성비가 안좋았는데 마침 브루클린 네츠에서 데런 윌리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존슨을 영입하려고 하자 애틀랜타는 존슨을 트레이드로 네츠에 넘겨준다. 네츠의 라인업은 제법 강해보였으나 존슨은 이제 나이도 30을 넘겨서 애틀란타 시절보다 기복이 더 심해졌고, 팀의 전체적인 부진 때문에 에이버리 존슨 감독이 해임되는 사태가 일어난다.

P.J. 칼리시모가 감독대행을 맡고 데롱이의 폼이 살아나면서 네츠는 동부 4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1라운드에서 시카고 불스와 만난다. 시카고는 주전멤버 상당수가 부상으로 쓰러져 제대로 전력을 발휘하지도 못하는 상태였지만 존슨은 4차전에서 네이트 로빈슨과 클러치 대결을 벌인거 말고는 시원찮은 모습을 보였고, 결국 7차전에서 14번의 슛중 단 2골만을 넣는 지독한 삽질로 브루클린의 1차전 탈락에 한몫했다.

2014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는 평균 21.6득점에 야투율 51.8%이나 되는 절정의 슛감을 자랑하며 토론토 랩터스 격파의 일등공신으로 활약했다.

15-16시즌에는 초반 미미한 존재감과 대비되는 엄청난 연봉(거의 25M에 육박하며 코비 다음으로 높은 연봉이다.)으로 팀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 이런 조 존슨의 행보와 맞물려 브루클린은 개막후 6연패라는 개막장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결국 바이아웃 처리 되었고, 이후 마이애미와 계약했다고 한다.

마이애미 히트에 와서는 브루클린 시절보다 매우 발전된 모습을 보이면서 활약중. 2점, 3점 성공률이 모두 10% 이상 높아지며 eFG% .476, TS .512의 쓰레기 슈터에서 eFG% .596, TS .617의 고효율 득점원으로 변신했다. 2분 가량 줄어든 출전 시간에도 불구하고 평균득점은 1점 가량 높아진 것은 덤. 마이애미는 조 존슨이 그의 신장의 우위를 살릴 수 있도록 좀 더 인사이드에서 플레이하도록 하고 있는데, 생산성이 높아진 것은 이 때문인 듯. 브루클린 시절보다 골밑 - 10피트 안쪽의 슛 시도 비율이 늘고, 퍼리미터 - 3점 레인지의 슛 시도비율이 줄어들었다.

이후 유타 재즈와 약 2년 2200만 달러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클러치 귀신답게 클리퍼스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위닝 버저비터를 꽂아넣었다. 또 클리퍼스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는 4쿼터 클러치 해결사 본능을 보여주며 순수실력 1위 크리스 폴에게 악몽을 선사했고 팀이 7차전 끝에 클리퍼스를 업셋하는 것에 공헌하였다.

2017-18시즌은 부상으로 시즌 초반 출장하지 못했고, 그러던 도중 조지 힐의 클리블랜드 이적의 삼각 딜의 일부로 킹스로 트레이드되고 웨이브된 이후 휴스턴 로켓츠와 계약하였다.

시즌 마지막 경기 새크라맨토전에서 20k-5k-5k[6]를 달성하였다.

2019년 이후로는 빅 3 리그에서 3대 3 농구를 뛰었고, 2019년과 2021년 두 차례 빅 3 리그 MVP를 차지했다. 2019년에는 빅 3 파이널 우승도 맛보았다.

빅 3에서의 활약을 발판 삼아 2019년 10월 디트로이트와 계약했지만 경기를 뛰지 못하고 방출당하고 말았는데, 2021년 12월 NBA 팀들이 코로나의 확산으로 스쿼드가 휑해지자 보스턴과 10일 계약을 맺고 3년 반만에 NBA로 복귀했다. 12월 22일 클리블랜드와의 홈 경기에서 가비지 타임에 출장해 미들 슛 하나를 꽂아넣었다.

그 후, 다시한번 빅 3 리그에서 뛰다가 나이도 이제 40대 초반으로 접어들어 시즌 중반 은퇴하였다.

3. 플레이 스타일

가드 기준으로 반칙급의 신장과 떡대를 자랑하기 때문에 여러 포지션과 매치업이 가능하고 포스트업이 좋다. 공식 사이즈는 6-7이지만 6-8로 표기되는 선수들과 비슷하며 애틀란타 시절 신장이 6-9인 팀메이트인 포워드 조쉬 스미스나 언더사이즈 센터 알 호포드와 비교해도 별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다. 또한 큼직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볼핸들링이나 드리블이 정교하고 리딩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점프슛이 주무기인 테크니션 타입으로, 코트 어디서든 슛을 쏘는게 가능하다.



한 시즌에 위닝 샷을 여러번 넣는 클러치 강자이기도 하다. 지난 10년간 게임 위닝 버저비터를 기록한 횟수가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를 합쳐서 총 8번으로, 조 존슨 외에는 5번 넘게 기록한 선수도 없다.

다만 자신이 공을 잡는 아이솔레이션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서 오프 볼 무브는 아쉽고, 다른 헤비 볼핸들러와 함께 뛸 때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유형은 아니다. 또한 전방위 슈팅으로 게임을 풀어가는 편이라 골밑 닥돌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때문에 득점력에 비해 얻어내는 자유투 숫자가 적다.

키가 아깝게 리바운드 숫자 역시 슈팅 가드 중에서 특출나지 않으며, 수비력도 약하다.

4. 조듣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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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란타 시절 팀 동료인 조쉬 스미스로 이름이 잘못나온 조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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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파커로 개명한 이번에는 앤서니 파커로 이름이 잘못나온 조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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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내시와 장난치고 있는 라존 론도 조 존슨. 참고로 론도는 내시보다 키가 작다.

6회 연속 올스타에 선발된 전적이 있고, 클러치 능력도 뛰어난 선수라 인기가 있어야 하지만 특색없는 이미지와 이름에 전성기때 소속팀인 애틀란타 호크스가 투명라인이라 임팩트가 약하고, 거기에 해설자들이 이름을 헷갈려하거나 기사에 이름이 잘못 기재되는 일이 많아서 웃음거리가 됐다.

또한 플레이스타일 자체도 한국 팬들 사이에서 '가드계의 팀 던컨'이라고 불릴 정도로 효과적이지만 화려하지 않은 스타일인데다가, 본인의 성격 자체가 팬 서비스를 잘 하거나 언론에 나와서 임팩트 있는 말을 남길 정도로 "튀는" 성격이 아닌지라[7] 이래저래 존재감이 약하다. 차라리 던컨처럼 역대급 실력자라면 몰라도 잘하긴 하지만 리그를 주름잡는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심지어 이름조차 미국에서 가장 흔한 이름 중 하나인 "Joe"(흔하기도 하고 영어에서 "평범한 남자"을 뜻하는 관용어가 "average Joe"일 정도로 평범해 보이는 이름이다)에다가 마찬가지로 흔하고 특색없는 Johnson이 성일 정도니 도저히 눈에 띌 껀덕지가 없다. 그 결과 한국팬들은 그를 '조 듣보' 라고 놀리기 시작했고, 더 심해지면 신인이나 아예 게임 생성선수(…) 취급을 하기도 한다. 이걸 보고 있으면 과거 스타1 공식리그 시절의 이 생각난다.

2020년대에 이르러서는 밀워키 벅스 크리스 미들턴이 듣보의 의지를 이어가고 있다... 미듣보

5. 관련 문서



[1] 게다가 숀 매리언은 공격옵션이 다양해 득점을 만들어낸게 아니라 속공이나 골밑에서 받아먹는 비중이 컸다. 매리언은 특유의 폼 때문에 은퇴할때까지 점프슛에 약점이 있던 선수였고 1대1능력도 부족했다. 오히려 당시 피닉스는 내시가 에이스이자 리딩위주 포인트가드였기에 주득점원인 아마레를 가장 먼저 살려주고, 이게 막히면 내시 본인도 득점력이 좋았기에 직접 공격의 활로를 뚫거나 공격력이 뛰어난 존슨을 먼저 찾았다. 이 점에서 공격 3옵션에 가까운 선수는 존슨이었다. [2] 다만 존슨의 전성기는 온볼플레이어이기에 확신하긴 힘들다. 온볼 성향이 강하면 오히려 뛰어난 PG의 존재가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기에. [3] 정확하게는 사인&트레이드였고, 대가로 피닉스로 넘어간 것 중에 하나가 보리스 디아우. 애틀란타에선 슛없는 스윙맨으로 뛰며 '강철 손목'소리 들으며 빛을 못 보았으나, 피닉스에선 팀 사정상 주전 인사이더로 뛰게 되었는데, 오히려 포텐 폭발. 전설의 포지션 표기 'G-F-C'. 이해 MIP수상. [4] 아직 20대 후반이였다. [5] 2015년 기준으로 2위이다!! [6] 이 기록은 NBA에서 레전드라고 불리는 사람들만이 달성한 기록이다. [7] 아예 NBA 선수 명감의 "주목할 만한 말" 란에 "조 존슨은 주목할 만한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적혀있덤 적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