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지역구 국회의원
서울특별시 제10대 국회의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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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철 민관식 |
이인근 |
김제만 |
조세형 정래혁 |
|
서대문 | 마포·용산 | 영등포 | ||
홍성우 |
김재광 오유방 |
박경원 노승환 |
박한상 강병규 |
|
관악 | 강서 | |||
정희섭 |
정운갑 이태섭 |
남재희 김영배 |
||
* 성동
양일동 사망 (1980.4.1.) * 동대문 송원영 사퇴 (1980.8.27.) * 도봉 고흥문 사퇴 (1980.8.27.) * 관악 김수한 사퇴 (1980.8.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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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대
제11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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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본 항목은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의 서울특별시 지역구 선거 결과를 정리하는 항목이다. 선거구는 가나다순이 아니라 지역 선거관리위원회가 설치된 순서로 한다. 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쓰는 공식 발표법이기 때문이다.2. 결과
정당 |
[[민주공화당| |
[[신민당(1967년)| |
|
무소속 | 합계 |
득표 수 | 819,107 | 1,578,279 | 278,971 | 402,338 | 3,078,695 |
득표율 | 26.61% | 51.26% | 9.06% | 13.07% | 100% |
당선자 | 9 | 11 | 1 | 1 | 22 |
1위 | 2 | 9 | 0 | 0 | 11 |
2위 | 7 | 2 | 1 | 1 | 11 |
-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서울의 중심부인 중구, 종로구, 동대문구, 성동구에서 1위를 차지한 민주공화당이었지만 그것이 야권의 분열로 인한 어부지리였음이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것이, 이번에는 신민당 후보 두 명이 엇비슷하게 표를 갈라먹은 틈새를 노린 강서구 한 곳에서만 1위를 했다. 그나마 지난 선거 때 신민당의 두 후보가 용산구와 마포구에서 각각 1위를 하면서 민주공화당 후보를 낙선시킨 제6선거구에서 예상외로 민주공화당이 선전해서 1위로 당선된 것을 위안으로 삼을 수 있겠다.
2.1. 서울특별시 제1선거구 (종로구·중구)
서울특별시 제1선거구 | |||
종로구, 중구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민관식(閔寬植) | 72,715 | 2위 |
[[민주공화당| |
29.18% | 당선 | |
2 | 정대철(鄭大哲) | 105,983 | 1위 |
[[신민당(1967년)| |
42.54% | 당선 | |
3 | 류택형(柳宅馨) | 4,938 | 4위 |
|
1.98% | 낙선 | |
4 | 오제도(吳制道) | 61,270 | 3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4.59% | 낙선 | |
5 | 최병훈(崔炳勳) | 1,943 | 6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0.77% | 낙선 | |
6 | 홍순철(洪淳喆) | 2,316 | 5위 |
[include(틀:무소속)] | 0.92%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352,519 |
투표율 71.28% |
투표 수 | 251,291 | ||
무효표 수 | 2,126 |
선거 벽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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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공화당| |
[[신민당(1967년)| |
무소속 | |
민관식 | 정대철 | 오제도 | |
결과 | 29.18%(당선) | 42.54%(당선) | 24.59% |
중구 | 29.15%(2위) | 43.44%(1위) | 24.03% |
종로구 | 29.21%(2위) | 41.85%(1위) | 25.02% |
- 지난 선거 때 야권 후보가 중구의 정일형(신민당)과 종로구의 김홍일(민주통일당)만 있었으면 두 사람이 각각 자기 지역에서 1위를 차지하며 당선되고 민주공화당 후보를 떨어트렸을텐데, 신민당이 종로구에 김홍일의 대항마로 권중돈을 내세우는 바람에 야권 후보끼리 표가 갈라져 민주공화당의 장기영이 두 지역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전체 1등으로 당선된 선거구.
- 이번엔 거꾸로 여권이 분열되어 민주공화당은 민관식을 공천하고 1977년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었으나 민주공화당 입당이 거부된 오제도가 친여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결과는 중구와 종로구 모두 신민당의 정대철이 40%가 넘는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하며 1등으로 당선되었고, 민주공화당의 민관식이 29%를 득표하며 2등으로 당선. 오제도는 낙선했지만 24~25%를 득표해서 민관식과 별 차이가 없었다.
2.2. 서울특별시 제2선거구 (동대문구)
서울특별시 제2선거구 | |||
동대문구 일원[1]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인근(李仁根) | 59,621 | 2위 |
[[민주공화당| |
18.25% | 당선 | |
2 | 송원영(宋元英) | 166,244 | 1위 |
[[신민당(1967년)| |
50.91% | 당선 | |
3 | 안균섭(安均燮) | 23,542 | 4위 |
|
7.20% | 낙선 | |
4 | 강상욱(姜尙郁) | 58,233 | 3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7.83% | 낙선 | |
5 | 박훈(朴勳) | 11,578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3.54% | 낙선 | |
6 | 한상무(韓相武) | 7,303 | 6위 |
[include(틀:무소속)] | 2.23%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478,759 |
투표율 83.25% |
투표 수 | 330,060 | ||
무효표 수 | 3,539 |
선거 벽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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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공화당| |
[[신민당(1967년)| |
무소속 | |
이인근 | 송원영 | 강상욱 | |
결과 | 18.26%(당선) | 50.91%(당선) | 17.83% |
동대문구(갑) | 19.14%(2등) | 52.03%(1등) | 15.90% |
동대문구(을) | 16.99% | 49.31%(1등) | 20.63%(2등) |
- 갑과 을 모두 신민당의 송원영이 49%가 넘는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하며 1등으로 당선되었고, 갑 지역에선 민주공화당의 이인근이, 을 지역에선 무소속의 강상욱이 2위를 차지하였다. 이인근이 1,400여 표 차이로 2등으로 당선.
- 민주공화당 공천으로 제8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동대문구(을)에서,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동대문구에서 1등으로 당선되었던 강상욱은 민주공화당의 공천을 받지 못 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번 선거에서 자신의 지역구였던 동대문구(을)에서조차 2등으로 밀려나며 전체 3등으로 낙선했다.
2.3. 서울특별시 제3선거구 (성동구)
서울특별시 제3선거구 | |||
성동구 일원[2]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민병기(閔丙岐) | 74,534 | 3위 |
[[민주공화당| |
29.16% | 낙선 | |
2 | 김제만(金濟萬) | 91,589 | 1위 |
[include(틀:신민당(1967년))] | 35.84% | 당선 | |
3 | 양일동(梁一東) | 78,647 | 2위 |
[include(틀:민주통일당)] | 30.77% | 당선 | |
4 | 김길웅(金吉雄) | 7,235 | 4위 |
[include(틀:무소속)] | 2.83% | 낙선 | |
5 | 김흥린(金興麟) | 3,539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58%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375,127 |
투표율 83.75% |
투표 수 | 257,946 | ||
무효표 수 | 2,402 |
선거 벽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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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민주공화당| |
[[신민당(1967년)| |
|
|
민병기 | 김제만 | 양일동 | |
결과 | 29.18% | 35.84%(당선) | 30.77%(당선) |
성동구(갑) | 30.96%(2등) | 35.21%(1등) | 29.83% |
성동구(을) | 27.27% | 36.50%(1등) | 31.78%(2등) |
- 1973년의 성동구(을) 지역이 강남구로 분리되고 나머지 성동구(갑) 지역을 다시 성동구(갑)과 성동구(을)로 나눈 선거구.
- 갑과 을 모두 신민당의 김제만이 35%가 넘는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하며 1등으로 당선되었고, 갑 지역에선 민주공화당의 민병기가, 을 지역에선 민주통일당의 양일동이 2위를 차지하였다. 양일동이 4,000표 차이로 2등으로 당선.
- 지난 선거에서 1등으로 당선되었던 민병기는 신민당 후보가 우세했던 지역을 강남구로 분리시키고 자신이 우세한 지역만 남겼음에도, 일부지역에서 2위에 그쳤을 뿐 신민당이 새로 공천한 후보와 지난 번에 자신이 제쳤던 민주통일당의 양일동에게도 밀려서 3위로 낙선했다.
2.4. 서울특별시 제4선거구 (성북구)
서울특별시 제4선거구 | |||
성북구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정래혁(丁來赫) | 71,408 | 2위 |
[[민주공화당| |
29.87% | 당선 | |
2 | 조세형(趙世衡) | 136,016 | 1위 |
[[신민당(1967년)| |
56.90% | 당선 | |
3 | 양택영(梁宅永) | 12,510 | 3위 |
|
5.23% | 낙선 | |
4 | 이수춘(李守春) | 3,655 | 6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52% | 낙선 | |
5 | 임태백(林太伯) | 7,030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94% | 낙선 | |
6 | 최호훈(崔昊熏) | 8,400 | 4위 |
[include(틀:무소속)] | 3.51%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347,983 |
투표율 83.25% |
투표 수 | 241,819 | ||
무효표 수 | 2,800 |
선거 벽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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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공화당| |
[[신민당(1967년)| |
|
정래혁 | 조세형 | |
결과 | 29.88%(당선) | 56.91%(당선) |
성북구(갑) | 30.23%(2등) | 56.68%(1등) |
성북구(을) | 29.40%(2등) | 57.21%(1등) |
- 지난 선거 때 정래혁이 갑 지역, 고흥문이 을 지역에서 각각 1등을 하며 고흥문이 1위, 정래혁이 2위로 당선되었다. 선거가 끝나고 불과 몇 달 뒤에 을 지역이 도봉구로 분구하면서 나머지 성북구 갑 지역에 갑과 을 두 선거관리위원회를 두었다.
- 이번 선거에선 민주공화당의 정래혁이 그대로 출마했고 신민당은 지난 번에 갑 지역에서 2등을 했던 서범석 대신 조세형을 공천했다. 지난 선거에서 정래혁이 1위를 기록했던 지역만으로 구성된 선거구였으나, 결과는 갑과 을 모두 신민당의 조세형이 56%가 넘는 득표율[3]로 1위를 차지하며 1등으로 당선되었고, 민주공화당의 정래혁이 29%를 득표하며 2등으로 당선되었다.
2.5. 서울특별시 제5선거구 (도봉구)
서울특별시 제5선거구 | |||
도봉구 일원[4]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신오철(申五澈) | 59,021 | 3위 |
[[민주공화당| |
21.23% | 낙선 | |
2 | 고흥문(高興門) | 113,566 | 1위 |
[[신민당(1967년)| |
40.86% | 당선 | |
3 | 조희철(曺喜澈) | 11,858 | 5위 |
|
4.26% | 낙선 | |
4 | 문창기(文昌基) | 3,057 | 7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09% | 낙선 | |
5 | 박경희(朴敬熙) | 14,811 | 4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5.32% | 낙선 | |
6 | 임창진(林昌鎭) | 4,541 | 6위 |
[include(틀:무소속)] | 1.63% | 낙선 | |
7 | 홍성우(洪性宇) | 71,066 | 2위 |
[include(틀:무소속)] | 25.57% | 당선 | |
계 | 선거인 수 | 410,722 |
투표율 82.24% |
투표 수 | 280,883 | ||
무효표 수 | 2,963 |
선거 벽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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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공화당| |
[[신민당(1967년)| |
무소속 | |
신오철 | 고흥문 | 홍성우 | |
결과 | 21.24% | 40.86%(당선) | 25.57%(당선) |
도봉구(갑) | 19.99% | 44.08%(1등) | 23.96%(2등) |
도봉구(을) | 23.22% | 35.76%(1등) | 28.13%(2등) |
- 지난 선거 때 신민당의 고흥문이 1등을 차지했던 성북구(을) 지역을 분구해서 새로 만든 선거구. 선거관리위원회 두 곳을 두었다.[5]
- 신민당의 고흥문이 그대로 출마했고, 민주공화당이 공천한 신오철과 민주공화당 공천에서 탈락하고 친여 무소속으로 출마한 홍성우[6]의 3파전[7]이 벌어졌다. 결과는 고흥문이 갑과 을 두 지역에서 모두 1등을 차지했고 홍성우가 2등으로 당선.
- 득표율의 차이를 보면 고흥문은 갑 지역에서, 신오철과 홍성우는 을 지역에서 표를 더 많이 받았고 아직 개발되지 않은 땅이 남아있는 도봉구에서 소지역주의가 작게나마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것이 도봉구의 전체적인 판세를 좌우하지는 못 했고, 갑 지역과 을 지역에서 득표율의 차이는 있지만 고흥문 > 홍성우 > 신오철의 순서로 지지를 받았다.
2.6. 서울특별시 제6선거구 (서대문구)
서울특별시 제6선거구 | |||
서대문구 일원[8]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오유방(吳有邦) | 91,988 | 2위 |
[[민주공화당| |
29.12% | 당선 | |
2 | 김재광(金在光) | 173,243 | 1위 |
[[신민당(1967년)| |
54.85% | 당선 | |
3 | 장정곤(張貞坤) | 23,101 | 3위 |
|
7.31% | 낙선 | |
4 | 곽용식(郭龍植) | 5,987 | 6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89% | 낙선 | |
5 | 민승(閔昇) | 12,968 | 4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4.19% | 낙선 | |
6 | 서대두(徐大斗) | 8,518 | 5위 |
[include(틀:무소속)] | 2.69%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472,474 |
투표율 85.64% |
투표 수 | 319,226 | ||
무효표 수 | 3,421 |
선거 벽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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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공화당| |
[[신민당(1967년)| |
|
오유방 | 김재광 | |
결과 | 29.13%(당선) | 54.86%(당선) |
서대문구(갑) | 29.73%(2등) | 56.86%(1등) |
서대문구(을) | 28.27%(2등) | 53.54%(1등) |
- 지난 선거에서 서울에서 유일하게 신민당 당선자가 없던 선거구였으나, 당시에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던 김재광이 신민당에 입당하여 신민당 공천으로 출마했다.
- 갑과 을 모두 신민당의 김재광이 1위를 차지하며 1등으로 당선되었고, 민주공화당의 오유방이 2등으로 당선되었다.
2.7. 서울특별시 제7선거구 (용산구·마포구)
서울특별시 제7선거구 | |||
용산구, 마포구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박경원(朴璟遠) | 114,444 | 1위 |
[[민주공화당| |
35.62% | 당선 | |
2 | 김원만(金元萬) | 84,207 | 3위 |
[[신민당(1967년)| |
26.21% | 낙선 | |
3 | 노승환(盧承煥) | 113,924 | 2위 |
[include(틀:신민당(1967년))] | 35.46% | 당선 | |
4 | 장세환(張世煥) | 8,682 | 4위 |
[include(틀:민주통일당)] | 2.7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465,446 |
투표율 81.10% |
투표 수 | 324,819 | ||
무효표 수 | 3,562 |
선거 벽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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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공화당| |
[[신민당(1967년)| |
||
박경원 | 노승환 | 김원만 | |
결과 | 35.62%(당선) | 35.46%(당선) | 26.21% |
용산구 | 36.21%(2등) | 23.22% | 37.76%(1등) |
마포구 | 35.20%(2등) | 44.35%(1등) | 17.82% |
- 신민당이 강서구와 함께 후보를 두 명 낸 선거구.
- 지난 선거 때엔 신민당 후보 두 명이 용산구와 마포구에서 각각 1위를 차지하면서 선거구 전체 1, 2위를 차지해 서울에서 유일하게 민주공화당 후보를 낙선시킨만큼 이번 선거 때 양당의 관심이 컸다. 지난 번의 신민당 후보 두 명이 모두 그대로 출마했고 지난 번처럼 각각 1위를 차지했으나, 공화당의 박경원 후보가 두 지역에서 모두 만만찮게 득표[9]하면서 각 지역에서는 2위를 차지했지만 선거구 전체에선 1위로 당선되었다. 이번 선거가 전체적으로 민주공화당의 실패로 평가되는 바람에 빛이 바랜 케이스.
2.8. 서울특별시 제8선거구 (영등포구)
서울특별시 제8선거구 | |||
영등포구 일원 [10]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강병규(姜秉奎) | 87,918 | 2위 |
[[민주공화당| |
25.32% | 당선 | |
2 | 박한상(朴漢相) | 187,495 | 1위 |
[[신민당(1967년)| |
54.01% | 당선 | |
3 | 김수일(金秀一) | 57,360 | 3위 |
|
16.52% | 낙선 | |
4 | 성진환(成進煥) | 14,368 | 6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4.13%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530,037 |
투표율 74.95% |
투표 수 | 352,883 | ||
무효표 수 | 5,742 |
선거 벽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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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공화당| |
[[신민당(1967년)| |
|
강병규 | 박한상 | |
결과 | 25.33%(당선) | 54.01%(당선) |
영등포구(갑) | 24.76%(2등) | 55.74%(1등) |
영등포구(을) | 25.76%(2등) | 53.01%(1등) |
영등포구(병) | 25.74%(2등) | 52.34%(1등) |
- 1970년대 공단이 발달하면서 인구가 급격히 늘어 관악구와 강서구를 분리하고도 선거관리위원회를 세 곳을 두어야 했던 선거구.
- 세 지역 모두 신민당의 박한상이 1위를 차지하며 1등으로 당선되었고, 민주공화당의 강병규 후보가 2등으로 당선되었다.
2.9. 서울특별시 제9선거구 (관악구)
서울특별시 제9선거구 | |||
관악구 일원[11]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정희섭(鄭熙燮) | 70,812 | 2위 |
[[민주공화당| |
20.49% | 당선 | |
2 | 김수한(金守漢) | 212,061 | 1위 |
[[신민당(1967년)| |
61.39% | 당선 | |
3 | 공창덕(孔昌德) | 38,525 | 3위 |
|
11.15% | 낙선 | |
4 | 김목호(金木鎬) | 12,678 | 4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3.67% | 낙선 | |
5 | 노기만(盧己萬) | 11,355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3.28%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526,456 |
투표율 79.46% |
투표 수 | 349,401 | ||
무효표 수 | 3,970 |
선거 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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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공화당| |
[[신민당(1967년)| |
|
정희섭 | 김수한 | |
결과 | 20.50%(당선) | 61.39%(당선) |
관악구(갑) | 20.18%(2등) | 61.75%(1등) |
관악구(을) | 20.80%(2등) | 61.06%(1등) |
- 영등포구에 속해있던 지역을 관악구로 분리하여 신설한 선거구. 선거관리 위원회를 두 곳을 두었다.
- 갑과 을 모두 신민당의 김수한이 1위를 차지하며 1등으로 당선되었고, 민주공화당의 정희섭 후보가 2등으로 당선되었다.
2.10. 서울특별시 제10선거구 (강남구)
서울특별시 제10선거구 | |||
강남구 일원[12]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태섭(李台燮) | 71,220 | 2위 |
[[민주공화당| |
29.27% | 당선 | |
2 | 정운갑(鄭雲甲) | 123,785 | 1위 |
[[신민당(1967년)| |
50.88% | 당선 | |
3 | 곽인식(郭寅植) | 11,376 | 4위 |
|
4.67% | 낙선 | |
4 | 이종민(李鍾敏) | 8,715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3.58% | 낙선 | |
5 | 조경철(趙慶哲) | 28,163 | 3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1.57%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375,374 |
투표율 86.75% |
투표 수 | 245,951 | ||
무효표 수 | 2,692 |
선거 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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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공화당| |
[[신민당(1967년)| |
|
이태섭 | 정운갑 | |
결과 | 29.28%(당선) | 50.89%(당선) |
강남구(갑) | 28.41%(2등) | 51.47%(1등) |
강남구(을) | 30.42%(2등) | 50.11%(1등) |
- 1973년의 성동구(을) 지역을 강남구로 분리하여 신설한 선거구. 선거관리위원회를 두 곳을 두었다.
- 1973년에 이 지역에서 1등, 성동구 전체에서 2등으로 당선됐던 신민당의 정운갑이 갑과 을 두 지역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1등으로 당선되었고, 민주공화당의 이태섭 후보가 2등으로 당선되었다.
2.11. 서울특별시 제11선거구 (강서구)
서울특별시 제11선거구 | |||
강서구 일원[13]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남재희(南載熙) | 45,426 | 1위 |
[[민주공화당| |
28.81% | 당선 | |
2 | 고병현(高炳鉉) | 34,707 | 3위 |
[[신민당(1967년)| |
22.01% | 낙선 | |
3 | 김영배(金令培) | 35,459 | 2위 |
[include(틀:신민당(1967년))] | 22.49% | 당선 | |
4 | 이태구(李泰九) | 8,432 | 5위 |
[include(틀:민주통일당)] | 5.34% | 낙선 | |
5 | 강인애(姜仁崖) | 16,928 | 4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0.73% | 낙선 | |
6 | 권중돈(權仲敦) | 7,538 | 6위 |
[include(틀:무소속)] | 4.78% | 낙선 | |
7 | 유온(劉溫) | 2,748 | 8위 |
[include(틀:무소속)] | 1.74% | 낙선 | |
8 | 이종화(李鍾和) | 6,395 | 7위 |
[include(틀:무소속)] | 4.05%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240,062 |
투표율 88.23% |
투표 수 | 159,516 | ||
무효표 수 | 1,883 |
선거 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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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공화당| |
[[신민당(1967년)| |
||
남재희 | 김영배 | 고병헌 | |
강서구 | 28.82%(당선) | 22.49%(당선) | 22.02% |
- 영등포구에서 강서구를 분리해서 생긴 선거구.
- 신민당이 후보를 두 명 낸 선거구이다.
- 신민당의 두 후보가 불과 700여 표 차로 접전을 벌이는 바람에 야당 표가 갈라져 민주공화당의 남재희 후보가 1위로 당선되면서 강서구는 서울특별시에서 유이하게 민주공화당 후보가 1등을 차지한 구가 되었다.
[1]
지금의
동대문구,
중랑구 일원
[2]
지금의
성동구,
광진구 일원
[3]
지난 선거 때 신민당이 복수공천한 고흥문과 서범석이 받았던 지지율을 조세형이 모두 흡수했다.
[4]
지금의
도봉구,
노원구,
강북구 일원
[5]
보통 이 경우에 새로 생긴 선거구는 번호가 뒤쪽에 자리하게 마련인데, 도봉구의 경우에는 성북구 바로 다음 번호를 받았다. 그래서 서대문구 이하 기존 선거구의 번호가 하나씩 뒤로 밀려났다.
[6]
영화배우에서 갓 은퇴하고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7]
전체 후보는 7명
[8]
지금의
서대문구,
은평구 일원
[9]
지난 총선엔 공화당 장성환 후보가 두 지역 모두 25%를 얻는 데 그쳤으나, 이번엔 35%로 상승했다.
[10]
현 영등포구, 구로구, 금천구 일대
[11]
지금의
관악구,
동작구,
서초구
방배동 일원
[12]
현 강남구, 서초구, 강동구, 송파구 일원
[13]
현 강서구, 양천구 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