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0 07:35:32

제주의포구-보목포구


1. 보목포구(베개)2. 문헌정보1
2.1. 변천2.2. 구성2.3. 현황2.4. 참고문헌
3. 문헌정보2
3.1. 지형
4. 문헌정보3
4.1. 수산업4.2. 관광 서비스업과 자리돔 축제4.3. 참고문헌
5. 문헌정보4
5.1. 볼레낭개 / 벌레낭개5.2. 베게
6. 관련기사


1. 보목포구(베개)


파일:보목_photo_박동필.jpg }}} ||
<colbgcolor=#dd0129> 위치 서귀포시 보목동
연락처 064-739-0550(보목어촌계식당)
064-733-3508(보목동마을회관)
근처
랜드
마크
섶섬 / 제주올레길6코스
구두미포구(보목동)
제지기오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보목동 275-1)



올레길 6코스 / 섶섬-제지기오름

파일:보목스케치ok.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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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문헌정보1

2.1. 변천

  • ‘보목’은 지금의 서귀포시 송산동의 한 법정동인 보목동의 옛 이름이다. 서귀포시 보목동은 원래 네 개의 자연 마을로 되어 있다. 따라서 포구의 쓰임새도 구분될 수밖에 없었다. 각 동네마다 바다로 나가는 길목을 정하고 포구를 축조하여 ‘ㅅ.래개’ ‘구두미개’ ‘큰머리개’ ‘배개’라 하였다. 보목 포구는 ‘배개’를 두고 이른 말이다. 『남사록(南槎錄)』[1679~1680]은 보애목포(甫涯木浦)라고 하면서 병선을 붙일 수 있는 곳이라고 하였다. 「제주삼현도(濟州三顯圖)」는 지금의 ‘정술내’ 하류에 있다고 하였다. ‘배개’는 고깃배의 선착장으로 입지적인 조건이 좋아서 선박들이 정박하고 배를 매는 포구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2.2. 구성

  • 이 마을은 동서로 래개, 구두미개, 큰머리개, 배개로 모두 네 개의 포구를 거느리고 있다. ‘배개’는 ‘배개 도리통[물 웅덩이이름]’과 ‘배개 코지’ 사이 후미진 곳에 있다. 포구는 안캐와 중캐로 짜여져 있으며, 안캐는 상층, 중캐는 중층에 걸쳐 있다. 썰물에는 ‘배개 코지’에 배를 붙였다가 밀물을 타고 포구 안으로 배를 들여 맨다. ‘배개 코지’는 ‘배개’의 보조 포구로 볼 수 있다. 병선을 감출 수도 있었다.

2.3. 현황

  • 마을 포구 동편에는 제지기 오름이 있고, 포구 앞바다 1㎞ 지점에는 천연기념물 제18호로 지정된 섶섬이 있다. 바다가 아름다운 마을로 동경 126°37', 북위 33°14'이고 서귀포시 중심에서 동남쪽으로 4㎞에 자리 잡고 있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1981년 서귀포시제가 실시되면서 서귀동 일부와 동홍동·토평동의 일부를 합쳐 서귀포시 송산동에 포함되었다. 동으로는 지금 제주 방송국 서귀포 중계소가 있는 ‘세경물’을 경계로 하효동과 나뉘며, 북쪽으로는 신효동의 ‘소학남모루’와 토평동의 ‘모시물’, 서쪽으로는 ‘빌레통 분지’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보목 포구 일대는 자리돔으로 유명하다. 지역 특산 수산물인 자리돔을 주제로 매년 5~6월경 ‘보목 수산 일품 자리돔 큰잔치’라는 수산 관광 축제가 열리고 있다.

2.4. 참고문헌

좌승훈, 『포구』(나라출판, 1996)
고광민, 『제주도 포구연구』(각출판, 2004)
제주의 마을(http://www.jejuvill.net)
  • [출처] ‘디지털서귀포문화대전[1]

3. 문헌정보2

3.1. 지형

  • 지형
    • 보목마을은 제주의 최남단에 윛해 있으면서 남해로 돌출되어 있는 해안 마을로 동쪽으로는 높이 94.8m의 절오름이 큰 봉우리를 이루어 자리 잡고 앉았고, 해안선을 끼고는 만(灣)을 이루면서 베개포구, 둔부소, 엉캐물, 연대기, 큰개머리, 조근개, 동애기, 섬도코지, 구두미, 수루막, 누알, 성알, 쌈싸니코지, 소래개, 방석덕, 귀영여 바다에 이르기까지 오밀조밀한 포구가 형성되어 있어 일찍이 이 마을 사람들이 바다와 함께 살아온 생활 터전임을 알아보게 한다.
  • [출처] 『학교가 펴낸 우리 고장 이야기-서귀포시 Ⅰ 동(洞)지역』,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2014. p.324, 325

4. 문헌정보3

4.1. 수산업

  • 보목동은 해녀가 많고 보목포구가 있어 수산업이 발달하였다.
    보목동에는 총 30척의 어선이 있으며 이 중 1톤 미만의 어선이 17척, 1통 이상 5톤 미만의 어선이 10척, 5톤 이상 10톤 미만의 어선이 3척 있다. 보목동 어촌계의 주요 시설로는 어촌계 복지회관, 수산물 직매장, 잠수탈의장이 있다.
* [인터뷰] 포구는 보목리 사람들의 삶의 터전 click >> 토막글/보목포구인터뷰

4.2. 관광 서비스업과 자리돔 축제

  • 수산 일품 보목 자리돔 큰잔치 축제 : 2000년부터 시작된 서귀포시 보목동 지역의 특산 수산물인 자리돔과 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인 서귀포 보목리 섶섬의 아름다운 해안 풍경을 배경으로 어업인과 시민, 관광객이 함께 만들어 가는 수산관광축제이다. 해마다 자리돔 성수기인 5~6월에 보목항에서 열리는 축제는 보통 3일간의 축제기간동안 보목항에 자리돔 어시장이 형성되어 싱싱한 자리돔강회와 물회, 자리구이를 맛볼 수 있다. 주요 행사 내용으로는 테우모형 만들기, 테우타고 낚시하기, 테우젓기 시연, 자리돔잡기 시연, 자리돔 모형 양초만들기, 자리돔 가요제, 제지기오름 보물찾기, 자리돔 생태박물관 둘러보기, 자리돔 어탁교실, 자리젓 담그기 체험 등 다양한 놀이와 체험행사가 진행된다.

4.3. 참고문헌

  • [출처] 『학교가 펴낸 우리 고장 이야기-서귀포시 Ⅰ 동(洞)지역』,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2014. p.271

5. 문헌정보4

5.1. 볼레낭개 / 벌레낭개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보목동을 예로부터 ‘볼레낭개·벌레낭개’라 불러왔다. 이것은 이 마을의 개 이름을 ‘볼레낭개’라 부른 데서 연유한 것으로, 마을 이름을 그렇게 부르기도 했고, 보목동의 포구를 그렇게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실제 현지 조사를 하면 ‘볼레낭개·벌레낭개’라는 말에 바로 대응하는 개를 확인할 수가 없다. 보목동에는 제지기오름이라 부르는 오름이 있는데, 이 오름 남서쪽 바닷가에 보목동의 주 포구가 있는데, 이곳 일대는 민간에서 ‘베개(배개·베들인개: 요즘은 주로 보목 포구라고 부름.)’라 불러왔다. 사람에 따라서는 ‘베개왓 포구>베기왓 포구’로도 부른다. ‘베개왓>베기왓’은 ‘베개>베기’ 가까이에 있는 밭이라는 데서 붙인 것이다. 이 ‘베개’ 서쪽, 그러니까 제지기오름 서쪽으로 흐르는 정술내 하류 동쪽 일대는 ‘앞개’라 부른다. 정술내 하류 서쪽 바닷가에서 솟아나는 물은 ‘엉캐물·엉캣물’이라 부르는 것으로 보아, 이 앞쪽 바닷가는 ‘엉캐’라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이 ‘엉캐물’ 서쪽에 ‘큰개물, 큰개, 큰개머리·큰갯머리’라 부르는 지명들이 있으므로, ‘큰개’라는 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큰개’ 바로 서쪽 바닷가를 ‘족은개’라 부른다. 이 족은개로 통하는 길을 ‘족은갯질’이라 한다. 족은개’ 서쪽에 있는 동산은 ‘족은갯동산’이라 부른다. ‘큰개’ 서남쪽 바닷가에서 바다로 뻗어나간 코지(곶)가 있는데, 이것을 ‘섬도코지〔-또--〕’라고 부른다. 이 앞 바다에 있는 섶섬으로 갈 수 있는 도(어귀)로서 코지(곶)를 이루고 있다는 데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이상과 같이 지금 보목동 바닷가를 돌아다니면서 ‘볼레낭개’를 확인하려는데 어디서도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김상헌의 <남사록(南槎錄)>(1601~1602)에는 甫涯木浦(보애목포)로 표기되고,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의 ‘한라장촉(漢拏壯矚)’(1702)에는 甫木浦(보목포)로 표기되어 있다. 甫涯木(보애목)은 제줏말 ‘볼레낭’이나 ‘볼레남’을 한자 차용표기로 쓴 것이고, 甫木(보목)은 甫涯木(보애목)에서 涯(애)를 표기에서 생략해서 쓴 것이다. 浦(포)는 당연히 ‘개’의 한자 차용 표기이다. ‘볼레낭(볼레남)’은 표준어 ‘볼레나무(보리장나무)’에 대응하는 말이다. 표준어에서 ‘볼레나무’를 확인할 수 있지만, 근대국어에서는 ‘보리슈·보류슈’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이미 1601년에 甫涯木(보애목)으로 표기되었으니, 볼레나무에 대응하는 제줏말 ‘볼레남(볼레낭)’도 꽤 일찍부터 쓰였음을 알 수 있다.
    1709년의 <탐라지도(耽羅地圖)>를 보면, 볼레낭개연대 동남쪽 바닷가, 제지기오롬 서남쪽, 지금 정술내 하류에 甫木浦(보목포)라 표기하고, 이증의 <南槎日錄(남사일록)>을 보면, 볼레낭개연대를 ‘甫木浦西邊烟臺(보목포서변연대)’라 한 것으로 보아, 애초에는 정술내 하류 일대, 곧 동쪽의 ‘베개’에서부터 서쪽의 ‘큰개’ 일대까지를 ‘볼레낭개’라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인 1918년에 만든 현대식 1대 5만 지형도를 보면, 당시 보목리의 마을은 제지기오롬 서쪽, 지금 정술내 하류를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볼레낭개’도 당연히 정술내 하류 일대의 개를 일컬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 [출처] 『제주발전포럼 제 52호』 , 제주연구원, 2015 - 「제주의 고유 개〔浦·浦口〕」 오창명, p.70~

5.2. 베게

  • 베개’는 ‘배개도리통’과 ‘배개코지’ 사이 후미진 곳에 있다. 포구는 ‘안케’와 ‘중캐’로 짜여졌다. …썰물에는 ‘배개코지’에 배를 붙였다가 밀물을 타고 포구 안으로 배를 들여 맨다. ‘배개코지’는 ‘배개’의 보조포구인 셈이다. 兵船을 감출 수 있는 포구는 바로 이 곳이다. ‘배개’는 배를 붙일 수 있는 ‘개’浦口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甫木浦는 그 당시 甫木村(齊州三縣圖)이라는 마을 이름을 취한 포구의 이름이다. 이 포구는 지금의 西歸浦市 甫木洞에 있는 ‘배개’를 두고 이른 말이다.
  • [출처] 『제주도 포구연구』, 고광민, 각, 2004.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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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 보목 포구: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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