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4-16 04:04:17

정치문

<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동래 정씨[1]
출생 1891년 1월 18일[2]
경상도 예안현 북면 문평리
(현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신평리 문평마을)
사망 1959년 7월 1일[3]
묘소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신평리 성천마을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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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891년 1월 18일 경상도 예안현 북면 문평리(현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신평리 문평마을)에서 아버지 정도진(鄭道鎭, 1863 ~ 1895)과 어머니 아주 신씨 사이의 두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녹전면 신평리 성천마을로 이주했다.

그는 1919년 3월 17일 안동군 예안면 장날 이광호(李洸鎬), 이동봉(李東鳳) 등과 함께 예안면 장터에 모인 수많은 군중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그 뒤 1919년 3월 24일[4]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아 공소하여 1919년 4월 17일 같은 혐의에 대해 원심 판결이 취소되었으나 형기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후 상고까지 했지만 1919년 5월 19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면서 결국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은거하다가 1959년 7월 1일 별세했다.

1986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을 수여받았고,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1] 집의공파(執義公派)-보성공파(寶城公派) 30세 운(雲) 항렬. 족보명은 정운관(鄭雲官). [2] 동래정씨집의공파보 제3권 중계편 344쪽에는 1890년 6월 15일생으로 오기되어 있다. [3] 동래정씨집의공파보 제3권 중계편 344쪽에는 1953년 8월 18일생으로 오기되어 있다. [4] 형사사건부에 3월 25일로 기재된 부분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