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9-17 05:04:45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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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서문3. 샌델의 철학방식 비판4. 샌델의 공리주의 비판은 엉터리
4.1. 공리주의의 문제점들4.2. 샌델, 존 스튜어트 밀을 엉터리로 비판
5. 샌델, 자유지상주의를 밑동 빼고 비판
5.1. 자유지상주의의 문제점들
5.1.1. 노동-소유이론의 문제점5.1.2. 선착순-로크 단서의 문제점5.1.3. '자발성' 의 문제점5.1.4. 미래세대의 문제
6. 샌델의 자유주의 왜곡
6.1. 모계제 논리와 자유지상주의 비판
7. 샌델 사상의 문제점들8. 결론9. 비판

1. 개요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는 2012년 미지북스에서 출간된 도서로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을 비판하기 위해 이한 교수(이자 변호사)가 저술한 책이다.[1]

2. 서문

저자가 주장하기를 샌델의 정의론에는 체계적인 사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정의에 대한 이론가라기 보다는 '정의의 한계' 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에 가깝다.[2]

저자에 의하면 샌델은 자유주의 사상을 다양하게 비판하지만 그러한 비판들 대부분이 오해와 왜곡에 가까우며 제대로 된 비판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그러한 왜곡된 논변들이 샌델이 유명해지면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것이 위협적으로 생각되어 저자는 이 책을 저술하게 되었다.[3]

이책이 비판하는 내용에는 비단 《정의란 무엇인가》 말고도 《정의의 한계》와 《민주주의의 불만》등 샌델의 다른 책 내용들도 포함된다.[4]

3. 샌델의 철학방식 비판

저자에 의하면 샌델의 미덕 이론은 실질적으로 아무런 해결을 주지 못하는 문제를 '봉합' 하는 것에 가깝다. 애매한 이야기만 반복될 뿐 해답을 주지 못한다.[5]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샌델이 든 논증들은 순수한 목적이 아닌 마지막장에서 '미덕이 지배하는 공동체' 라는 종착점으로 가기 위해 샌델이 구성한 것이다,[6]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채 악덕이기 때문에 악덕이라고 하는 것 그것은 논리적으로 '선결문제의 오류'로 이루어진 순환방식인데, 샌델은 "미덕" 으로 사례를 분석하면서 노골적인 순환을 자주 이용한다. 이런 결함은 체계적인 판단의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며 정당화 작업이 애초에 불가능하다.[7]

저자는 샌델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으며 그의 논변은 원칙과 기준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채 단순한 직관적 판단에 근거하는 듯하다고 지적한다.[8]

저자가 주장하는 샌델의 논증방식
1. 미리 결론을 내리고 미덕이라는 이름 갖다 붙이기
2. 본질을 규정하고 그로부터 이탈하는 것은 타락이므로 허용하지 않기
3. 사안의 일면만 강조하여 곧바로 결론내리기[9]

4. 샌델의 공리주의 비판은 엉터리

저자가 주장하기를 샌델의 공리주의 비판은 이론을 체계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몇 가지 도덕적 직관만 들어 반박한다.[10]

공리주의자에게 옳음이란 '좋음을 최대한 많이 실현하는 것'이다. 공리주의자들이 부정하는 것은 개인의 권리가 아니라 자연권(natural right)이 존재하느냐의 여부이다. 공리주의자도 상황에 따라 특정 개인의 권리를 인정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11]

공리주의에서 개인은 효용을 담는 그릇으로 다루어진다. 인간은 궁극적 목적을 담는 그릇이다. 일단 많이 담기기만 하면 효용이 어떤 이유로 담겼는지, 어떤 방식으로 담겼는지, 어느 그릇에 얼마나 담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12]

만일 쾌락의 마법사가 있어서 이 사람에게 자원을 집중시키면 시킬수록 전체 효용은 체감되지 않고 오히려 극한의 쾌락을 맛볼 수 잇다면, 전 세계의 자원을 모두 이사람에게 몰아주는게 옳다.[13]

공리주의가 개인의 독립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샌델 자신을 향하게 된다. 미덕 이론도 공동체를 따라 공리주의처럼 목적에 맟춰 권리를 규정한다. 둘째로 좋음이 옳음에 우선한다는 샌델의 주장 역시 미덕이 비 체계적인 옳음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된다.[14]
개인은 공동체의 텔로스를 실현하는 미덕을 담는 그릇이 된다. 샌델의 목적론은 공리주의와 효용을 미덕과 탁월성으로 대체한다. 그리하여 개인의 권리는 공동체의 탁월성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의된다.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중에서[15]

샌델은 부의 극대화 이론과 공리주의를 혼동하고 있다. 공리주의는 효용을 최대화하고자 하는 이론이다. 효용은 돈과 다르다. 공리주의는 사실 '한계효용체감 법칙' 이라는 평등주의적 가치에 따라 사용될 수 있는 이론을 통해 체계화 된 이론이다. 가령 부자들에게 100만원은 개인적 행복에서 큰 의미가 없으지라도 가난한사람에게 100만원이 생기는 것은 개인적으로 큰 행복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평등주의적 기질은 공리주의가 가진 큰 설득력 중 하나이다. 이는 단순히 사회의 부를 최대한 많이 늘리자는 것과는 같지 않다.[16]

시민들은 정치 문제에서 실제적 문제에 직면하고 고민하고 선택해야 한다. 비용을 계산하는 것 자체가 도덕전 분노를 일으키고 공동체의 미덕을 타락시킨다는 주장은 스스로의 손과 발을 묶어두는 것에 다름아니다.[17]

4.1. 공리주의의 문제점들

1. 적응적 선호의 문제
사람들의 욕구는 늘 그대로 있지 않다. 사람들의 욕구, 선호는 환경에 적응한다. 공리주의는 선호가 어떤 연유로 생겼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이는 효용 계산의 객관성을 무너뜨리게 된다. 공리주의에서는 무엇이 좋은 삶인가? 라는 개인의 신념과 애착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리주의자에게 중요한것은 A선호를 가졌을 때보다 B선호를 가졌을 때 사회적으로 더 큰 효용이 생기느냐이다.[18]

2. 외부적 선호
효용의 관점에서 보면 외부적 선호와 내부적 선호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다른 사람의 처지가 불리해지면 좋겠다는 선호가 좌절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은, 자신이 유리해지면 좋겠다는 선호가 좌절 되었을때와 감정, 상실감 측면에서 차이가 없다. 외부적 선호를 제어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삶의 존중하는 선호는 억압되는 문제점이 생기게 된다.(85~88)[19]

3. 공지성 위반
공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 제도에 참여하고 있는 구성원들이 규칙이 어떻게 만들어지며 어떤 행위가 금지되고 허용되는지를 알고 있다는 것을 보장해 준다. 사회적 효용을 위해서 비밀주의, 속임수등을 사용할 수 있다면 이는 공지성에 큰 위협이 된다.[20]

4.2. 샌델, 존 스튜어트 밀을 엉터리로 비판

존 슈트어트 밀은 벤담의 공리주의가 지닌 도덕적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했던 사람이다. 밀에 따르면 세상에는 저급 쾌락과 고급 쾌락이 있으며 공리주의 사상은 질적으로 고급쾌락을 많이 실현하고자 해야한다. 어떤 것이 고급 쾌락인가? 두 가지 쾌락이 있을 때 의무감과 상관없이 그 둘을 모두 경험한 사람들 중 대다수가 어느 하나를 좋아한다면 그것이 더 바람직한 것이다.[21]

샌델은 자신의 학생들에게 <심슨가족>과 <햄릿>등의 여러 영상들을 보여 준 뒤에 <심슨가족>을 고른 예시를 들며 밀을 간단하게 반박한다. 그러나 이는 밀의 사상을 왜곡한 것이다.[22]

첫째, 밀은 사회적으로 고급으로 여겨진다고 해서 그게 꼭 질적으로 좋은 것이라고 하지 않았다. 둘째, 단순히 접하는 것과 깊게 배우면서 '진정으로' 경험하는 것은 다르다. 셋째, 고급 쾌락을 선택하라는 것은 살면서 꼭 그것만 하라는 것이 아니다.[23]

샌델은 여기에 대해서도 선결문제의 오류로 미덕을 개입시켜 논의 불분명하게 만든다.[24]

밀의 공리주의와 샌델의 미덕 이론의 유사점은 학자들에 의해서 지적되어 온바있다. 밀의 질적 공리주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쾌락주의와 굉장히 유사하기 때문이다.[25]

그런데 샌델과 밀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밀이 주장하는 사회적 조건과 샌델이 주장하는 조건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밀은 고급쾌락을 즐기기기 위해서는 '자유'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밀은 고상함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샌델은 이와 정반대로 생각한다. 자유와 다원주의는 현대 사회가 타락한 원인이다.[26]

5. 샌델, 자유지상주의를 밑동 빼고 비판

저자가 주장하기를 샌델의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 비판은 본래의 핵심과 쟁점에서 벗어나 있다. 그는 자유지상주의자들의 논지를 거의 그대로 놓아두는데 그것은 그가 자유지상주의자들의 논지를 현대 롤즈식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비판 논지로 사용하려 하기 때문이다.[27]

저자는 사실 자유지상주의는 무제한적인 자유를 주장하지 않기 때문에 소유권리론(entitlement theory)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적합하다고 주장한다.[28]

노직은 챔벌린 선수의 예시 등을 통해 배타적인 소유권리의 정당함을 주장한다.[29]

샌델은 다른 더 핵심이 되는 중요한 문제들이 있음에도 굳이 이상하게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자기소유개념 "내 신체는 내 것이다" 만을 반박하려고 한다. 저자가 주장하기를 이는 샌델이 공동체주의적 논변을 위해 "알고보면 내 신체는 내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의 신체를 넘어서는 공동체적 자아가 있는 것이다." 라는 결론을 향하게 하기 위해 의도한 것이다.[30]

5.1. 자유지상주의의 문제점들

5.1.1. 노동-소유이론의 문제점

그러나 내가 소유한 바를 내가 소유하지 않은 바와 섞음이, 왜 내가 소유하지 않은 바의 취득이라기 보다 내가 소유한 바의 상실이 아닌가? 내가 한 깡통의 토마토 쥬스를 소유하고 있어 이를 바다에 부어 그 입자들(내가 추적할 수 있도록 방사전이 쬐어진)이 바다 전체에 골고루 퍼지게 한다면, 나는 이 행위를 통해 바다를 소유하게 되는가? 아니면 바보 같이 나의 토마토 쥬스를 낭비한 것일까?
-로버트 노직,《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중에서-[31]

자유지상주의에서 주장하는 노동-소유이론은 실제로 자기소유가 노동을 통해 외부적 대상에 대한 소유로 어떻게, 그것이 얼마만큼, 정당한 방식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 면밀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32]

5.1.2. 선착순-로크 단서의 문제점

노직이 로크적 단서 '소유하기 위해선 타인을 위해 좋은 품질의 충분한 양을 남겨 두어야 한다.' 를 '내 소유가 타인의 처지를 악화시키지 말아야한다.' 로 해석하고 이러한 단서로 인해 자원이 한정적인 상태에서 소유가 제한 될 수 있는 것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저자가 주장하는 노직의 로크 단서의 전제들
1. 권리의 질서의 정당성은 물질적 측면에서만 평가된다
2. 타인의 처지의 기준은 비교 기준은 소유도 규제도 없는 상태이다.[33]

저자는 노직의 시도는 성공적이지 못하다고 평가한다. 첫째, 물질적 측면에서 처지가 나아지더라도 전체적으로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 둘째, 꼭 아무질서도 없는 상태를 비교기준으로 삼을 필요가 없다.[34]

5.1.3. '자발성' 의 문제점

노직에 의하면 한 행위가 비자발적인 행위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행위자의 선택이 타인의 행위에 의해 제한되어야 한다.
2. 제한을 가하는 타인의 행위가 자신의 권리 범위 밖에 있어야 한다.[35]

저자에 의하면 개인에게 외적 제한이 가해져도 소유권리에 근거한 것이라면 이는 비자발적인 것이 아니다. 절대적 소유권리에 의지하는 자발성이 다시 절대적 소유권리 개념에 의존한다 그런 논증으로는 절대적 소유의 도덕 불가침성을 납득할 수 없게 된다.[36]

5.1.4. 미래세대의 문제

기존질서가 부당해보인다면 새롭게 태어난 세대가 기존질서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전 세대에 있었던 일들로 이후 세대들에게 책임을 지운다면 시간적으로 나중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똑같이 자유로운 존재로 대우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사회협약은 매 세대에 대해 정당성을 가져야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전세대에 있어던 일들을 이유로 아래 세대에 대한 위 세대의 폭압일 뿐이다.[37]

6. 샌델의 자유주의 왜곡

저자에 의하면 샌델은 자유지상주의의 허점을 소개하는데 관심이 없다. 그의 관심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주인이라는 것을 비판하는 데 있다.[38]

저자가 주장하기를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자기소유개념에는 왜곡이 있다. 무제한적으로 장기, 신체매매가 허용되는 자유지상주의 세계에서 팔과 같은 신체를 팔고 뇌까지 팔았을 때 무언가를 소유하는 '나'는 어디에 남는가?[39]

'자기 결정(self-determination)'에 주목한다면 자기 결정의 능력과 권리를 보유함으로써 스스로 주인인 인간이 되려면 '타인들의 요구로부터 자유로운'삶의 사적영역이 필요한 것이다. 저자는 자유지상주의자들이 자기소유권과 절대적 소유의 소유권리론이 이것을 제대로 보장해 줄 수 있는지 의문을 품는다.[40]

샌델은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자기소유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비판하고 개인은 자유로운 주체가 아니라 공동체의 자아를 구성하는 부분으로서 미덕을 실행해야하는 존재로 규정하고자 한다. 시민적 미덕을 이유로 징병제를 옹호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41]

샌델은 이런 생각을 토대로 롤즈를 똑같이 비판하고자 한다. 샌델은 롤즈의 차등의 원칙은 공동체적 자아를 상정하지 않으면 작동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샌델은 롤즈가 '재능은 내것이나 네것이 아니고 모두의 것'이라고 주장하며 공동체 차원의 재능공유제를 상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42]

그런데 저자에 의하면 롤즈는 재능공유제를 주장하지 않았다. 롤즈는 단지 다른 사람이 다름사람들에 비해 재능이 있게 태어난다고 해서 도덕적인 자격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지적했을 뿐이다.[43]

롤즈의 차등원칙의 진정한 의미는 사람들이 사회적인 협력에 모든 사람들이 성실하게 협동한다고 가정하였을 때, 생산된 재화를 어떻게 분배하느냐를 두고 각자의 상충하는 요구들을 조정할 수 있는 정의의 원칙이다.[44]

샌델은 또한 롤즈나 드워킨 같은 학자들이 응분의 원리(-노력-)를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응분의 개념을 무시하며 개인의 권리를 소중하게 다루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무시하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롤즈는 응분의 개념을 인정하지만, 현실적으로 노력과 행운의 요소를 구별짓기 힘들기 때문에 통제할 수 있는 여건의 차이를 뺀 노력이 얼마만큼인지, 그것과 연결되는 보상이 무엇인지 분별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였을 뿐이다.[45]

6.1. 모계제 논리와 자유지상주의 비판

샌델은 대리모 계약 사례 또한 자기 결정의 원칙을 부인하는 논거로 사용한다. 그런데 저자에 의하면 대리모를 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두고 계약을 하는 것으로 주장하여 인간의 독립성을 토대로 인간 매매행위를 비판한다면 대리모를 문제를 비판할 수 있다. 여기서 저자는 논의에서 잠시 벗어나서 사례를 제시하는데, 미국의 정치 철학자 수전 오킨은 노직처럼 자기 소유권 원칙을 형식적으로 이해한다면 사실상 사회는 모계중심 노예제 사회가 된다고 논증했다.[46]

오킨의 모계제 논증
1.나는 나 자신을 소유한다.
2. 신체를 사용해서 무언가를 만들면 소유권이 생긴다.
3. 나의 어머니는 나를 만들었다.(남성의 정자를 동의하에 정당하게 취득했을 경우)
4. 그로므로 어머니는 나를 소유한다.
5. 그런데 내가 이미 어머니의 재산이라면, 나는 나 자신을 소유할 수 없다.
그렇다면?

6. 내가 나를 소유한다는 것은 참일 수 없다.

이 모순을 피하려면 형식적 자기 소유권 원칙을 포기하고 실질적 자기소유권 원칙을 제시하여야 한다. 샌델처럼 개인의 독립성과 자기 소유권을 모두 부인해야만 대리모 계약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47]

7. 샌델 사상의 문제점들

샌델의 논변의 기초가 되는 '목적론적 추론' 은 어떤 제도의 활동이나 의미에 대해 짐작해보는 것 정도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 자체로는 전혀 검증할 수 없다. 결국 그 목적이 어떤 판단과 원칙에 부합하는지를 제시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겨서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각자가 생각하는 목적은 전혀 다를 수 있다. 저자에 의하면 샌델의 목적론적 추론은 이런 갈등에 해결을 제시할 수 없다. 단지 '목적' 이라는 것에 대해서 서로 비생산적인 토론만이 반복된다.[48]

샌델은 형제애나 자비가 정의만큼 중요한 덕목이라고 주장하며 정의의 한계를 주장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단지 자비롭다고 해서 공동체의 운용에 반드시 정의가 필요 없을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49]

샌델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라서 정치의 주된 목적이 정치참여를 통해 시민의 미덕을 증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정치의 수단(정치 참여)와 목적(좋은 삶의 구현)이 뒤바뀌어 있다. 이는 정치를 인간의 다른 활동에 비해 특권적으로 만들지만 정치참여가 과연 다른 활동에 비해 '더 고급의' 좋은 삶을 살게 해주는지는 의문스럽다.[50]

또 어떤 활동의 '본질' 이 그것으로 인해 권리와 의무를 정하는 데 필수적이진 않다.[51]

샌델은 미덕이 그 자체로 권리나 공정성과 경쟁하는 별도의 가치인 것 처럼 다룬다. 그런데 저자에 의하면 미덕은 정치 공동체에서 '의무 부과'를 통해 의무와도 연결되며, 의무는 권리를 충실히 보장해야한다는 의미에서 권리론과도 연결된다. 미덕, 의무, 권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세가지를 대립되게 주장하는 것은 '범주의 오류'를 저지르는 것이다. 이는 단지 미덕의 언급에 의한 언어적 수사의 호소력을 이용하는 것이다.[52]

저자는 샌델이 미덕 이론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가 자유주의의 한계가 분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샌델은 자유주의를 추상적 개인주의와 가치 상대주의로 오해하고 있다. 그런데 저자에 의하면 진정한 자유주의는 그렇지 않다. 자유주의자들은 각자가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기본적 자유'들이 동등하게 보장되어야한다고 주장할 뿐이다.[53]

샌델은 롤즈의 원초적 상태가 추상적 개인을 전제한다고 주장한다. 롤즈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정의의 원칙을 도출하기 위한 사고실험의 도구로서 무지의 장막과 원초적 상태를 상정하고 있을 뿐이다.[54]

저자에 의하면 오히려 가치 상대주의에 가까운 것은 공동체주의이다. 가치 상대주의에 따르면 공동체에서 지정한 대로 사는 것이 굳이 나쁠 것이 없다.[55]

저자가 주장하기를 샌델의 공동체주의는 '국가 완전주의'에 가깝다. 국가가 좋은 삶을 규정하고 국민들이 그에 따라 살도록 만들어야 한다. 게다가 센댈은 공동체에 실체적인 도덕적 지위를 부가한다. 개인의 이상과 공동체가 충동하면 공동체가 우선한다. 샌델이 말하는 공동선의 정치란, 국가가 특정한 삶의 방식을 모두에게 부과하는 결국 오지랖의 정치이다.[56] [57]

8. 결론

저자에 의하면 샌델의 주장들은 오류로 점철된 수사들에 불과하다. 샌델은 무지한 독자들에게 아첨한다. 우리는 자유로운 시민들의 지위를 방해하려는 그와 같은 수사들을 가만히 두어서는 안된다. [58]

9. 비판

책 출간 후에 미지북스에서 저자와 인터뷰를 하였는데 해당 책에 대해 '미끄러운 비탈길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등의 비판들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인터뷰에서 저자가 답변하였다. # 참조.


[1] 이한은 필명이며 본명은 이민열이다. [2]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8 [3]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8~10 [4]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10 [5]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22~25 [6]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24 [7]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29~31 [8]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34~35 [9]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54 [10]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59 [11]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61~62 [12]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63 [13]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65 [14]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66~69 [15]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61~62 [16]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69~71 [17]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78~79 [18]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79~83 [19]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85~88 [20]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90~93 [21]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96~97 [22]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98 [23]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98~101 [24]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102 [25]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103~104 [26]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104~107 [27]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111~112 [28]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112 [29]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113~114 [30]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116~117 [31]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21 [32]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119~126 [33]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131~132 [34]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132~141 [35]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143~144 [36]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144~148 [37]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149~151 [38]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152 [39]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156~157 [40]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157~163 [41]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163~172 [42]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183~186 [43]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188 [44]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202 [45]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203~210 [46]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173~174 [47]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174~175 [48]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214~219 [49]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220~224 [50]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224~233 [51]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238 [52]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239~246 [53]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253~260 [54]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260~265 [55]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268 [56] 실제로 책에 오지랖 정치라고 되어있다. [57]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268~272 [58] 이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미지북스. 2012. p.293~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