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전성걸(全聖杰) |
이명 | 전우영(全佑英), 전영집(全英集) |
생몰 | 1893년 3월 19일 ~ 1973년 5월 14일 |
출생지 | 평안남도 안주군 안주읍 건인동 |
사망지 | 서울특별시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전성걸은 1893년 3월 19일 평안남도 안주군 안주읍 건인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개신교 신자로, 1919년 당시 무역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1919년 3월 1일, 그는 김화식(金化湜)·김희주(金禧柱)·김병제(金炳濟)·김병건(金炳乾)· 전예순· 박의송·김영원(金榮元)·이인택(李仁宅) 등과 함께 안주읍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그는 교회의 간부급 청년들과 함께 김찬성의 집에서 만나 거사일자를 서울과 같이 3월 1일로 결정하여 독립선언서를 복사하는 등 사전준비를 진행하였다.3월 1일 오후 5시 읍내 서문앞에 많은 군중이 모이자, 그는 청년대표들과 함께 이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나누어 준 뒤, 군중과 함께 건인리·청교리로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시위군중은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며 일본 헌병대를 에워싸고 구속인사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이때 일본 헌병대에서는 처음에는 당황하여 방관만 하였으나, 배포된 독립선언서를 발견하고 즉시 주동자의 검거작업에 나섰다. 결국 체포된 그는 1919년 6월 5일 고등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서울로 상경해 목회 활동에 전념하다 1973년 5월 1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전성걸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2019년 5월 3일, 피우진 국가보훈처 처장은 전성걸의 후손인 전충희씨가 거주하는 시드니를 찾아가 독립유공자 명패를 다는 행사를 가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