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94153e, #94153e 20%, #94153e 80%, #94153e); color: #FFFFFF;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FFFFFF> 초대 | 제2대 | 제3대 | |
대행 | 중종 | 와조제 | ||
추존 | ||||
장흥왕 | ||||
|
전레 추존 군주 長興王 | 장흥왕 |
||
{{{#FFFFFF 묘호}}} | 없음 | |
{{{#FFFFFF 시호}}} | 장흥왕(長興王) | |
{{{#FFFFFF 성씨}}} | 레(Lê, 黎/여) | |
{{{#FFFFFF 휘}}} | 막(覓) | |
{{{#FFFFFF 부친}}} | 레씨(黎氏) | |
{{{#FFFFFF 모후}}} | 불명 | |
{{{#FFFFFF 황후}}} | 등태후(鄧太后) | |
{{{#FFFFFF 왕자}}} | 대행황제(大行皇帝) | |
{{{#FFFFFF 생몰}}}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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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여멱(黎覓, 생몰년 미상)은 중국 오대십국시대 애주(爱州) 청련현(清莲縣)[1]사람으로, 베트남 전 레 왕조의 개국황제인 레호안의 친부이다.아내는 등씨(鄧氏)로, 그녀와 혼인하여 941년 7월 15일 레호안을 낳았으나 등씨는 레호안을 낳은 지 얼마 안되어 죽었고, 여멱도 곧 사망하였다. 졸지에 고아가 된 레호안은 그의 총명함을 눈여겨본 애주의 어떤 사람이 양자로 데려다 키웠다.
980년, 레호안이 황제로 즉위하자 친부인 여멱을 장흥왕(長興王)으로, 모후인 등씨를 황태후로 추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