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함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장한순
성명 | 장한순(張漢順) |
생몰 | 1883년 ~ ? |
출생지 | 전라남도 함평군 대야면 송정리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장한순은 1883년생이며 전라남도 함평군 대야면 송정리 출신이다. 그는 1909년 음력 7월 함평군에서 의병을 일으킨 이강산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하여 일제 헌병의 밀정을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수행했다. 그러나 일본군이 남한 대토벌 작전을 단행하면서 의병 활동이 어려워지자 1909년 10월 초 동료 의병 30명과 함게 일본군에 자수했고, 1909년 12월 25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폭동 및 모살죄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1910년 2월 2일 공소를 취하해 옥고를 치렀다. 1912년 징역 12년으로 감형되었으며,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장한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2. 개성시 출신 독립운동가, 장한순
성명 | 장한순(張翰淳) |
이명 | 장호산(張湖山) |
생몰 | 1866년 ~ ? |
출생지 | 경기도 개성군 남산면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포장 |
장한순은 1866년생이며 경기도 개성군 남산면 출신이다. 그는 1910년 12월 이회영 일가와 함께 암록강을 건너 1911년 2월 초순경 유하현 삼원보 추가가에 도착했다. 그는 그곳에서 이회영 일가, 이상룡, 김동삼 등과 함께 호아무지를 개간하며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매진했다. 1911년에는 최초의 재만한인 자치기관인 경학사(耕學社)를 조직했으며, 1912년 통화현 합니하에서 흥강습소(新興講習所)를 설립하여 활동했다. 1922년 1월에는 무송현에서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 단장을 맡아 서간도와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집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송금했다. 그러나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장한순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